연재 순서
①담배 연기 찌든 경기장 더 이상 안돼
②"욕설 쏟아지는데…아이랑 다시는 안 올 거에요"
③불법 반입에 투척까지, 위험에 노출된 경기장
④잠실구장 먹다 남은 음식까지 10톤 쓰레기…안내방송, 분리수거도 효과 없어
⑤악성 게시글, 보이지 않는 살인 흉기

프로스포츠의 인기가 날로 뜨거워지고 있지만,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관중석 안팎의 꼴불견 행태는 좀처럼 개선되지 않고 있다. 스포츠한국에서는 경기장 흡연 문제부터 과도한 욕설, 쓰레기 문제 등 볼썽사나운 경기장의 어두운 민낯을 집중 조명해 본다. 이번 캠페인이 올바른 관중 문화 조성의 첫 걸음이 되기를 바란다. / 편집자 주

(좌측 상단부터 시계방향으로) 잠실구장, 인천 SK행복드림구장, 고척 스카이돔, 대전 한화생명 이글스파크 출입구. 2015년 SAFE 캠페인이 실시된 이후 반입 금지 품목에 대한 검사가 보다 철저히 이뤄지고 있다. 사진=박대웅 기자
[스포츠한국 박대웅 기자] “상상도 못할 방법으로 숨기는 관중들이 있습니다.”

1997년 당시 해태 김응용 감독은 심판에게 항의를 하던 중 관중석에서 날아온 참외에 뒤통수를 맞았다. 1999년 롯데 외국인 타자였던 호세는 홈런을 치고 그라운드를 돌던 중 뜨거운 컵라면 국물 세례를 받기도 했다.

이러한 사례가 흔했던 1980~90년대에 비해 프로스포츠를 관전하는 팬들의 의식은 놀랄 만큼 성장했다. 하지만 일부라고 하기에는 여전히 많은 경기장 오물 투척 관련 사고들이 심심치 않게 발생하고 있다.

당장 올해만 하더라도 이대호가 부산 홈경기가 끝난 뒤 퇴근길에 팬이 던진 치킨 박스를 맞았다. 6월 청주에서는 관중 난입에 이어 외야에서 오물이 그라운드로 투척됐다. 7월21일에도 잠실 라이벌전 경기 막판 음식물이 외야로 날아들었다. 관중들이 작심할 경우 훨씬 더 위험한 물건이 투척될 여지도 충분하다.

구장 환경에 따라 조금씩 기준은 다르지만 캔맥주, 소주 등 안전사고를 일으킬 가능성이 높은 물건들은 반입을 금지시키고 있다. 사진=박대웅 기자
▶경기장 출입구는 눈치싸움 중

KBO는 지난 2015시즌부터 안전하고 쾌적한 야구장 환경을 조성하고 성숙한 관람 문화 정착을 돕기 위해 ‘SAFE 캠페인’을 도입했다.

선수와 관람객의 안전을 위협할 수 있는 주류 및 캔·병·1리터 초과 페트 음료의 경기장 내 반입을 제한하는 것이 ‘SAFE 캠페인’의 가장 핵심적인 내용이다.

KBO의 경기장 안전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주류는 경기장 입장 시 일회용컵에 옮길 경우, 미개봉 상태의 1리터 이하 페트 용기에 담긴 경우 반입이 허용될 수 있다. 6도 이하의 저도 주류 역시 문제는 없다.

하지만 여러 구장을 돌아본 결과 반입 금지 물품을 숨기고 입장하는 관중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좌석에서 캔맥주 또는 6도를 훌쩍 넘어가는 소주를 마시는 이들이 발견되기도 했다.

많은 관중이 붐비는 잠실구장의 경우 1, 3루 출입구에서 입장하는 관중들에게 술을 일회용 용기에 옮겨 담도록 요청했지만 권고 수준이었으며 소지품 검사가 꼼꼼하게 이뤄지지도 않았다. 당연히 불법 반입된 물품들이 쉽게 눈에 띄었다.

가방 내부까지 철저하게 확인한 뒤 통과 여부를 결정하는 구장들도 상당수 있었다. 하지만 꼼꼼한 검사를 뚫고 금지 물품을 기어이 반입하거나 직원과 실랑이가 일어나는 등 SAFE 캠페인에 협조하지 않는 관중들을 찾아볼 수도 있었다.

고척 스카이돔 안내 요원은 “모든 관중들을 대상으로 검사하고 있는데 자주 적발해내는 편이다. 몇몇 관중들은 ‘왜 반입이 안 되느냐’며 따지기도 하고 ‘그냥 통과시켜 달라’며 막무가내 태도를 취하기도 한다. 그런 부분에서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털어놨다.

인천 SK행복드림구장 안내 요원은 “한 출입구에서 소주 20병 이상을 회수하기도 한다. 가끔은 단속을 뚫고 경기장 내부로 뛰어가는 분들도 있다. 인상착의를 무전으로 전달해 잡아냈다”고 설명했다.

출입구부터 꼼꼼하게 검사를 실시하고 있는 구장조차도 캔맥주는 물론 소주팩 반입을 철저히 차단하기는 어렵다. 사진=박대웅 기자
▶수단과 방법 가리지 않는 비양심

경호원들은 관중들이 반입 금지 물품을 교묘하게 숨기고 입장하는 경우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고 한다.

페트병에 소주를 담아 물처럼 위장하는 것은 초보 단계. 페트병을 흔들었을 때 소주와 물의 반응 차이가 뚜렷해 대부분 적발된다고 한다.

페트에 넣어오는 소주는 물과 손쉽게 구분 가능하다. 잔거품이 오래 유지되는 우측 페트에 소주가 담겨 있다. 사진=박대웅 기자
하지만 바지 안, 양말 속, 여성 핸드백 등에 소주 팩을 넣어 반입하는 관중들은 사실상 적발이 어렵다. 이러한 경우에는 경호원들이 주기적으로 구장 내부를 돌면서 소주를 수거하거나 캔맥주를 일회용 용기에 담도록 권장하는 수준이다.

울산과 사직구장을 담당하고 있는 경호원은 “요즘 머리를 잘 굴리는 분들은 피자 판 안에 피자가 아닌 소주 팩 조각을 넣어서 오시는 분도 있다. 치킨이 포장 용기 안에 술을 넣어 오시는 분들도 있었다”며 혀를 내둘렀다.

또한 잠실구장 내 관중석에서 한 야구 팬의 소주 반입을 적발해낸 경호원은 “맥주컵에 흰 액체를 섞는 것을 발견했다. 일반적으로 맥주에 물을 섞지는 않기 때문에 소주임을 곧장 알 수 있었다”며 “소주와 맥주를 섞는 팬들을 종종 발견하는 편이다. 문제는 이미 구장 밖에서부터 섞어 들어올 경우 단속이 실질적으로 불가능하고, 섞는 모습을 순간 포착해내지 못할 경우 발뺌을 하는 분들이 많다는 점이다”고 고충을 털어놨다.

대전 한화생명 이글스파크 경호원은 “다른 관중들에게 불편을 줄 수 있는 행위, 마찰을 빚을 수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제재를 하려고 한다”고 밝히면서도 “관람객들 입장에서는 즐기기 위해 경기장에 오셨기 때문에 강한 통제를 한다는 것 자체가 서로 얼굴을 붉힐 수 있는 일이다”며 단순한 반입만으로는 강력한 제재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인천 SK행복드림구장 경호원은 “술을 많이 드시는 분들은 꼭 문제가 생긴다. 경호원들이 자제해줄 것을 요청해도 이에 따르지 않고 반발하면서 문제가 더욱 복잡해진다. 특히 20대 초반의 여성 아르바이트생이 맥주를 일회용 용기에 옮겨줄 것을 요청했는데 기분이 나쁘다며 맥주를 몸에 뿌린 일도 있었다. 참 안타까운 일이다”며 관중들의 적극적인 협조를 부탁했다.

캔맥주를 구매자가 일회용 용기에 직접 옮겨 담도록 하는 구장들도 있다. 하지만 철저한 관리 및 검사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캔맥주가 관중석에 반입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사진=박대웅 기자
▶SAFE 캠페인이 보완해야 할 점

경기장 출입구에서 캔 반입을 막고 있지만 정작 구장 내 편의점에서는 버젓이 캔맥주를 팔고 있다는 점은 문제가 될 수 있는 부분이다. 관중들이 출입구에서 캔맥주 반입을 막는 구단 직원들에게 항의하는 가장 보편적 내용이기도 하다.

물론 대부분의 구장에서는 판매자가 직접 캔맥주를 일회용 용기에 옮긴 뒤 구매자에게 전달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었다.

그러나 별도의 테이블을 구석에 마련해 구매자가 옮겨 담도록 하는 구장도 일부 있었으며, 이에 대한 감시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캔 반입의 우려가 있었다.

구장 입구에서 수거된 반입 금지 물품들. 사진=박대웅 기자
실제 캔맥주를 관중석에 반입한 한 관중은 “구장 안 매점에서 구입한 캔맥주다”고 운을 뗀 뒤 “매점 직원이 직접 옮겨주지는 않았고 캔맥주와 함께 일회용 용기를 같이 받았다”고 언급했다.

그는 이어 “SAFE 캠페인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용기에 미리 담아 놓을 경우 금방 냉기가 식거나 김이 빠져서 옮겨 담지 않고 있었다”는 설명을 보탰다.

모 구단 담당자가 보내온 식품 판매 및 관리 규정에 따르면 셀프 테이블을 설치해 관람객 스스로 캔을 종이컵에 옮기도록 조치하는 것이 불법은 아니다. 관중석 캔 반입이 이뤄지지 않도록 적극 관리해야한다는 항목이 삽입돼 있지만 어디까지나 권장 사항이다.

모 구장의 기타 식품 판매 및 관리 규정의 일부 내용
그러나 그 빈틈을 파고드는 관중들도 있기 때문에 관리가 좀 더 꼼꼼하게 이뤄질 필요는 있다.

캔맥주 판매가 구장 내에서 이뤄진다는 점 외에도 SAFE 캠페인이 가지고 있는 모순은 더 있다. 캔맥주 반입은 막고 있지만 보온병, 라면 국물 등 투척 시 캔맥주 이상으로 위험할 수 있는 물품들에 대한 반입은 정작 자유롭기 때문이다.

여러 경호원들도 SAFE 캠페인이 현장 실태를 정확하게 반영하지 못한 점이 있다고 지적한 뒤 규정 자체를 좀 더 손 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KBO 관계자는 “보는 관점의 차이인 것 같다. 사실 강하게 제지하는 구단도 있고, 그렇지 않은 구단도 있는데 KBO 쪽에서 권고를 할 수는 있어도 강제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니다. 메이저리그의 사례를 참고할 수도 있지만 국내 야구 팬들의 정서 역시 고려하지 않을 수는 없다. SAFE 캠페인은 쉽게 말해 ‘어느 정도까지의 선은 지켜달라’는 지침으로 볼 필요가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특히 KBO 관계자는 “SAFE 캠페인의 핵심 취지는 결국 모두의 안전한 관람이다”며 야구 팬들의 적극적인 협조를 부탁하면서 “매년 의견을 수렴해 가이드라인을 현실적인 부분에 맞게 서서히 수정하는 방안도 고려해보겠다”는 입장을 전했다.

또한 어느덧 4년 차를 맞이하고 있는 SAFE 캠페인의 홍보 상황에 대해서는 “올해부터는 티켓 뒷면에 안전 관련 문구가 통일된 형태로 나가고 있다. 또한 티켓 예매 시에도 (캠페인 내용에 따를 것을) 동의하는 버튼을 누르도록 하고 있으며 홈페이지에 공지사항으로도 문구를 띄운다. 이 밖에 홍보 영상을 만들어 SNS나 구장 전광판 등에서 상영하고 있다”고 밝혔다.

KBO 관계자는 이어 “이번 기회를 통해 좀 더 생산적이고 팬들의 이해도를 높일 수 있는 홍보 방안을 마련해보겠다. 관중들이 캠페인 내용을 몰라서 반입 금지 물품을 가져오는 일이 줄어들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팬들께서도 안전한 관람 문화를 정착하기 위해 가이드라인을 만들었으니 너그럽게 이해해주셨으면 좋겠다”고 재차 강조했다.

프로축구연맹도 안전한 관람을 위한 가이드라인을 마련해놓고 있지만 규제는 훨씬 더 허술한 편이다. 사진=김명석 기자
▶축구장 안전 불감증은 더욱 심각

프로야구의 경우 SAFE 캠페인 도입 이후 단속이 비교적 철저하게 이뤄지는 편이지만 프로축구는 조금 더 갈 길이 멀다.

몇몇 구장을 확인한 결과 관중석 테이블에 소주병이 버젓이 올라와 있는 것을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매점에서 캔맥주를 일회용 용기에 옮기지 않고 그대로 판매하고 있었으며, 캔과 유리병은 물론 얼린 생수병 등도 모두 반입 가능했다. 안내 요원은 반입 금지 물품과 관련된 질문을 들은 뒤 금시초문이라는 반응까지 보였다.

하지만 K리그 역시 안전가이드라인과 대회요강에 의해 반입을 금지하는 물품들을 정해놨다. 대회 요강 제37조(경기장 안전과 질서유지)에 따르면 홈 클럽은 모든 관중 및 관계자가 퇴장할 때까지 안전 및 질서 유지에 대한 의무와 책임이 있으며, 경기장 안전 및 절서를 어지럽히는 관중에 대해 입장을 제한하고 강제 퇴장시키는 조치를 취할 수 있다.

또한 대회 요강 제38조(홈경기 관리책임자, 홈경기 안전책임자 선정 및 경기장 안전요강)에는 반입금지물 및 금지행위에 대해서도 명시해놓았는데 전반적인 내용은 KBO리그의 안전가이드라인 및 SAFE 캠페인과 별다른 차이가 없다.

올해 4월8일 포항 스틸야드에는 한 관중이 맥주캔을 경기장 내로 투척한 뒤 도주하는 사건이 발생했고, 인천 유나이티드는 지난해 7월8일 대구전, 8월20일 포항전에서 맥주캔 투척 사건이 연달아 쏟아져 프로축구연맹으로부터 구단 차원의 징계를 받았다.

마찬가지로 지난해 FC서울과 수원 삼성이 슈퍼 매치에서는 수원 서포터가 서울로 이적한 이상호에게 물병을 던지는 한편 심판에게도 맥주캔을 투척해 물의를 빚었다. 연맹과 구단 차원의 보다 확실한 예방책이 필요하며 관중들 역시 성숙한 응원 문화를 보여줄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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