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한국 대전=박대웅 기자] 한화의 전반기 2위를 예상한 이가 과연 존재하기는 했을까. 하지만 실화다. 한화가 2위로 전반기를 마쳤다.

한화는 지난 11일 대전 한화생명 이글스파크에서 열린 넥센과의 경기에서 8-22로 완패를 당했다.

하지만 같은 날 3위 SK가 LG에게 패하면서 한화는 SK와의 승차를 2경기로 유지했다. 12일 경기 결과와 관계없이 전반기 2위는 확보했다.

한화가 2위 이상으로 전반기를 마친 것은 1992년 이후 단일리그 기준으로 무려 26년 만의 성과다.

물론 시즌이 모두 끝난 것은 아니지만 6위 KIA와의 승차가 9경기까지 벌어져 있기 때문에 후반기에도 큰 변수가 없다면 최소 가을 야구 무대를 경험할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

지난 10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하는 등 오랜 암흑기를 겪었던 팀이 이처럼 놀라운 변신에 성공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11일 경기를 앞두고 한용덕 감독은 크게 네 가지 반전에서 그 이유를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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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슨-호잉, 에이스와 해결사의 등장

한 감독이 가장 먼저 꼽은 것은 외국인 선수들의 활약이다. 올시즌 한화는 외국인 투수에 샘슨과 휠러, 타자에는 호잉과 각각 계약을 체결했다.

사실 시즌 전 이들에 대한 기대치는 그리 높지 않았다. 지난해 로사리오, 오간도, 비야누에바의 경우 메이저리그 경력부터 화려했고, 실제 세 선수의 몸값만 무려 480달러(약 52억원)에 달했다.

반면 샘슨(70만 달러), 휠러(57만5000달러), 호잉(70만 달러)은 그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금액에 한화와 계약했다. 오간도(180만 달러) 한 명을 겨우 넘는 수준이었다. 빅리그 경력 역시 상대적으로 지난해 외국인 선수들과 비교하기에는 한없이 초라했다.

다만 한화는 팀 기반을 탄탄히 다질 때까지 새 외국인 선수들이 젊음과 건강함을 앞세워 함께 성장하는 구도를 그렸고, 전반기까지는 이같은 계획이 기대 이상의 결실을 맺었다.

특히 샘슨은 넥센전에 유독 약한 모습이 아쉬웠지만 9승6패 평균자책점 4.34의 성적을 남기면서 팀의 확실한 에이스로 거듭났다. 압도적 구위를 앞세워 탈삼진 135개를 솎아내 전체 1위에 올라 있고, 한화 역대 외국인 최다승도 충분히 넘볼 페이스를 나타내고 있다.

호잉은 86경기 타율 3할1푼9리 21홈런 75타점 54득점 OPS(출루율+장타율) 9할9푼을 기록하며 로사리오의 향기를 완전히 걷어냈다. 일정을 거듭하며 다소 페이스가 떨어지기는 했지만 득점권 타율(0.354)과 타점에서도 알 수 있듯 중요한 순간 해결사 역할을 수없이 해냈고, 수비와 주루 플레이까지 안정감을 나타내며 최고의 복덩이로 자리매김했다.

휠러의 경우 2승9패 평균자책점 5.31로 분명 아쉬운 성적을 남겼지만 몸값 대비 활약으로 따질 경우 최악으로 보기는 어려웠다. 타선 지원을 좀처럼 받지 못해 승리 운이 유독 없었을 뿐 로테이션을 거르지 않고 어느 정도 계산이 서는 피칭을 했다. 물론 한화의 성적이 기대 이상으로 높은 곳까지 올라섰기 때문에 교체를 검토하고 있는 상태지만 애당초 영입 당시의 기대치는 해냈다고 봐야 한다.

한용덕 감독은 “휠러는 해줄 것이라 생각했던 만큼은 해줬고, 샘슨과 호잉은 엄청난 반전을 보여줬다”며 “사실 몸값이 비싼 선수들에게는 그만한 기대치가 있는데 올해 우리 외국인 선수들은 몸값이 낮은 편이었다. 금액으로 봤을 때는 미지수가 많았다. 하지만 시즌이 시작된 뒤로는 충분히 고효율의 활약을 펼쳐줬다”고 전반기 외국인 선수들의 활약상을 돌아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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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방마님, 더 이상 약점 아니다

한용덕 감독이 꼽은 두 번째 반전은 바로 포수, 그 중에서도 지성준의 활약이다. 최재훈의 경우 커리어를 감안했을 때 한 감독이 기대한 만큼의 활약을 펼쳐줬지만 지성준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초고속 성장을 이뤄냈다.

한화는 오랜 암흑기 기간 동안 총체적 난국에 빠져 있었으나 그 중에서도 확실한 안방마님이 없다는 것이 가장 큰 고민 중 하나였다.

하지만 올시즌 전반기에는 최재훈과 지성준이 경쟁 체제에 돌입하면서 서로 부족한 점을 채워주는 이상적인 그림을 그려냈다. 최재훈의 경우 타격감이 좋지 못했으나 뛰어난 프레이밍과 투수 리드 능력을 보여줬다. 또한 지성준은 샘슨과의 찰떡궁합을 통해 새 에이스 탄생에 결정적 기여를 했고, 기대 이상의 타격 능력을 뽐냈다.

물론 지성준이 남긴 전반기 성적(타율 0.252 3홈런 17타점 12득점)이 기록상으로 크게 두드러지지 않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앞서 언급했듯 중요한 순간 지성준의 방망이에서 승패가 갈리는 경우가 많았다. 9회 3차례를 포함해 총 5번의 결승타를 터뜨리면서 놀라운 클러치 능력을 선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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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임없이 등장한 깜짝 스타

지성준 뿐 아니라 한화는 올시즌 깜짝 스타들이 유독 많이 발굴된 팀이다. 물론 베테랑들의 부활도 큰 힘이 됐지만 그동안 육성과 거리가 멀었던 팀이 미래를 이끌 자원들을 대거 성장시켰다는 점이 더욱 고무적이다.

한용덕 감독이 꼽은 대표적인 깜짝 스타가 바로 정은원과 강경학이다.

정은원은 정근우가 2군으로 내려가 있는 동안 그 자리를 든든히 채우며 아기 독수리의 탄생을 알렸다. 5월9일 넥센전에서 아마추어를 포함해 개인 처음이자 KBO리그 2000년생 첫 홈런을 때려냈고, 이후로도 든든한 수비와 눈 야구를 앞세워 한용덕 감독의 눈에서 하트가 나오도록 만들었다.

강경학은 5월까지 내부 경쟁에서 밀려 2군에 머물러 있었지만 6월초 1군에 진입한 뒤 2011년 데뷔 이후 전혀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던 타격에 완전히 눈을 떴다. 한화 타선이 전반적으로 침체돼 있던 상황에 등장해 활기를 불어넣었다.

두 선수 뿐 아니라 서균 역시 개막 후 24경기 연속 ‘미스터 제로맨’으로 통하며 불펜에 힘을 불어넣었고, 박상원 역시 1점대 평균자책점으로 전반기를 마감했다.

물론 강렬한 모습이 오랜 기간 지속되지 못한 선수도 있었고, 팀 내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았던 것도 아니다. 그러나 팀이 어려움에 처한 순간마다 이처럼 다수의 젊은 피가 제 몫을 다해냈기 때문에 베테랑들은 물론 선수단 전체에도 강한 자극을 심어줄 수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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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음표를 지워낸 투수들

투수들의 반전 활약도 한화가 전반기 고공 질주를 할 수 있었던 비결에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요인들이다.

한용덕 감독은 “토종 선발투수들의 경우 모두 물음표가 붙어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전반기를 마친 시점에서 대부분이 자리를 잘 잡았다고 생각한다. 불펜의 경우 패전조가 따로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모두가 필승조나 다름없는 활약을 펼쳤다. 이 모든 것이 전반기에 일어난 반전이다”고 설명했다.

실제 한화는 전반기를 한 경기 남긴 현재 팀 타율 2할7푼1리로 9위에 머물러 있지만 마운드는 팀 평균자책점 4.63으로 2위에 올라 있다. 팀 타율은 지난 시즌(0.287, 5위)과 비교했을 때 수치와 순위 모두 하락했지만 평균자책점은 지난해(5.28, 8위)와 비교하면 최고의 반전을 이뤄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불펜진은 리그 유일의 3점대 평균자책점(3.91)으로 최강의 모습을 보여줬다. 수많은 역전 드라마를 만들 수 있었던 힘이었다.

기존 리그 정상급 불펜이었던 정우람조차도 어쩌면 반전을 이뤄냈다고 볼 수 있다. 4승무패 26세이브 평균자책점 1.34의 성적에서도 나타나듯 마운드 위에서의 존재감은 SK 시절마저 뛰어 넘는다.

또한 지난 5년 간 6~7점대 평균자책점에 머물렀던 송은범이 투심 장착과 함께 2점대(2.87)로 전반기 종료를 앞두고 있는 점 역시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부분이다. 지난해 나란히 실망스러운 성적을 남겼던 이태양, 장민재가 이처럼 빠르게 부활할 것으로 전망한 이도 많지 않았다.

이 밖에 다소 들쑥날쑥한 모습은 있었지만 윤규진, 김재영, 김민우가 토종 선발진 고민을 어느 정도 덜어낸 것도 나름의 반전이다. 한용덕 감독의 말처럼 투수는 대부분이 물음표에서 시작해 느낌표로 전반기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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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들만 잘 했나, 선수단 자체가 반전

한용덕 감독이 꼽은 한화의 전반기 반전은 위에 나열했듯 크게 네 가지였다. 그러나 사실 선수들 뿐 아니라 감독, 코치, 프런트에 이르기까지 한화는 선수단 자체가 놀라운 반전을 이뤄냈다.

한용덕 감독은 두산 수석코치 시절부터 지도자 능력을 높게 평가받기는 했지만 과거 짧은 감독 대행 기간을 제외하면 한 팀의 수장으로서 확실히 검증된 부분이 없었다. 그러나 이처럼 단기간에 성적과 육성, 두 마리 토끼를 구석으로 몰아넣으면서 역량을 증명해냈다.

특히 김인식, 김응용, 김성근 전 감독 등 한국 프로야구 최고의 명장들조차 뒤끝이 좋지 못했던 ‘감독들의 무덤’ 한화에서 한 감독은 본인만의 뚜렷한 원칙과 관리, 자율과 믿음을 앞세워 팀을 새롭게 변신시켰다. 부드러우면서도 강단이 있고, 때로는 고집스러운 부분도 있지만 융통성을 발휘하기도 했던 지도자가 한 감독이다.

코칭스태프 중에서도 송진우 코치는 수많은 선수들을 부활시키는 기적을 일으킨 핵심 인물이다. 해설위원 경험을 바탕으로 과거보다 더욱 넓은 시야를 갖추게 됐고, 선수들마다 눈높이 맞춤형 속성 과외를 통해 강점을 극대화하고 부족한 점을 채웠다.

단지 1군 뿐 아니라 2군 코칭스태프 역시 보다 책임감을 발휘해 선수들을 지도하고 시스템을 체계적으로 끌고 나갔다. 한용덕 감독 역시 2군에서 올라온 선수들이 좋은 모습을 보여줄 때마다 2군 지도자들에게 감사의 말을 자주 남기곤 했다.

이 밖에 지난해까지 전면에 나서 김성근 전 감독과 대립각을 세웠던 박종훈 단장이 올해는 서포터 역할에 치중한 것도 한화의 반등을 이끈 힘이 됐다. ‘주전급 뎁스 강화’라는 구단의 목표가 결실을 맺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전망됐으나 올시즌 전반기만 놓고 보면 중장기적 성장을 위한 기본 토대가 확실하게 잡힌 모습이다.

사실상 반전이 일어난 부분보다 반전이 없었던 부분을 찾기가 더 어렵다. 당연히 지난해와는 전혀 다른 성적이 나올 수밖에 없었던 한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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