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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한국 박대웅 기자] 한화는 전신 빙그레 시절부터 ‘다이너마이트 타선’이 팀을 상징하는 대표적 표현이었다.

지난 몇 년 동안에는 또다른 표현도 등장했다. 김성근 전 감독 시절에는 선수들이 포기하지 않는 집념으로 마지막까지 상대를 물고 늘어져 많은 야구 팬들을 경기장 및 TV 앞으로 불러 모았다. 중독성 강한 경기력 때문에 ‘마리한화’라는 수식어가 따라붙었다.

이상군 전 감독대행 시절에는 혹사와 부상 문제를 최우선으로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건강 야구’라는 표현을 통해 드러내기도 했다. 동시에 포기하지 않는 정신은 이어간다는 취지로 이 대행 입에서 ‘진돗개 야구’라는 표현도 나왔다.

그렇다면 올시즌 한화의 돌풍을 이끌고 있는 한용덕 감독은 팀을 대표하는 수식어로 어떤 단어를 머릿속에 그리고 있을까.

13일 고척 스카이돔에서 만난 한 감독은 ‘OO야구’ 안에 팀을 상징하는 단어를 채워줄 수 있으냐는 요청에 “아직까지는 깊게 생각해보지 못했다”며 “(언론 혹은 팬들이) 대신 붙여줘야 할 부분이 아닐까 싶다”는 답변을 남겼다.

한화는 13일까지 37승28패로 2위에 오를 만큼 판을 제대로 뒤흔들고 있지만 특정 단어 하나로 올시즌 돌풍을 모두 설명하기는 사실 쉽지 않다. 그만큼 지난해까지의 모습과 비교해 많은 변화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에 한화의 대표적 팀 컬러를 함축할 수 있는 몇 가지 표현들을 정리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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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물야구’ 또는 ‘잇몸야구’

한용덕 감독은 올시즌 한화가 좋은 성적을 기록 중인 가장 큰 이유를 이렇게 꼽았다.

“요소요소에 선수들이 끊임 없이 나오고 있어서 팀이 잘 굴러가는 것 같아요. 기존 선수들이 자극을 받게 되면서 느슨해지지 않고 항상 긴장을 하는 것이 힘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봅니다.”

실제 한화는 지난 시즌까지 큰 비중이 없었거나 혹은 팀 소속이 아니었던 선수들이 올시즌 뛰어난 활약을 선보이는 중이다. 마운드에서는 기존 필승조 송창식, 박정진, 권혁이 모두 전력에서 제외된 상태임에도 서균, 박상원이 불펜에 큰 힘을 실어주면서 불펜 야구를 할 수 있었다. 부상으로 신음했던 김민우도 선발진에서 최근 자리를 잡는데 성공하며 미래를 밝혔다.

야수 중에서는 지성준이 든든한 백업 포수로 성장하며 최재훈을 바짝 긴장시켰다. 신인 정은원도 안정된 수비와 돋보이는 선구안을 통해 한 감독의 칭찬대로 한화의 향후 10년을 이끌 자원으로 떠올랐다. 또한 2차 드래프트를 거친 백창수, 롯데 방출 후 입단 테스트를 받은 김민하 등도 알토란 활약을 펼치고 있으며, 최근에는 강경학까지 미친 존재감을 발휘해 내야 경쟁을 뜨겁게 만들었다.

그동안 한화는 선수층이 두텁지 않아 내부 경쟁에서 별다른 긴장감이 없었고, 이는 선수 발전에도 별다른 도움이 될 수 없었다. 한용덕 감독이 ‘고인 물’이라는 표현까지 솔직하게 꺼낼 만큼 문제가 심각했다.

하지만 올해는 팀의 중심으로 떠오른 이성열마저 ‘생존’을 끊임없이 거론할 만큼 마르지 않는 샘물이 솟아나면서 고인 물마저 정화시키는 모습이다. 부상자들이 나와도 얼마든지 버티는 힘이 생겼기 때문에 ‘샘물야구’, ‘잇몸야구’라는 표현이 따라붙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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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한 불펜으로 이뤄낸 ‘뒷심야구’

한화는 올시즌 10개 구단 가운데 가장 뒷심이 강한 팀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실제 37승 가운데 역전승만 24회로 이 부문 1위다. 2위 넥센의 20회와 비교해도 제법 차이가 크며, 시즌이 절반도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지난해 역전승(30회)을 조만간 추월할 기세다.

단순한 역전승 뿐 아니라 한화는 선제 실점을 내줬을 때에도 16승15패로 5할이 넘는 가장 높은 승률을 기록 중이며, 7회 이후 역전 드라마를 만든 경기도 무려 6번이나 있었다.

이는 불펜진의 활약이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불펜 평균자책점 3.24로 2위 두산(4.54)에 크게 앞서 있으며 32홀드(2위), 23세이브(공동 1위) 모두 최상위권이다. 반면 블론 세이브는 8회로 최소 공동 3위.

정우람이라는 최고의 마무리 투수가 버티고 있을 뿐 아니라 안영명, 송은범, 서균, 박상원, 이태양, 장민재 등 필승조와 추격조의 구분이 무의미할 만큼 다수의 투수들이 압도적인 활약을 펼치고 있다.

타선 역시 팀 타율은 2할7푼4리로 전체 9위에 놓여 있지만 승부처에서만큼은 남다른 집중력을 발휘하고 있다. 특히 7회 이후 동점 상황에서 득점권에 놓였을 때에는 무려 4할의 맹타를 휘둘렀다. 클러치 수비에서 과거와 비교하기 힘들 만큼 안정감을 보여준 것도 뒷심야구를 강화시킨 요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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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평야구’와 ‘상식야구’

이 밖에 올시즌 한화에 일어난 중요한 변화 요소는 바로 소통이 원활하게 이뤄지고 있다는 점이다.

덕아웃 분위기만 살펴봐도 고참 선수와 젊은 피들이 격없이 장난을 주고받는 모습을 쉽게 살펴볼 수 있다. 아낌없는 조언을 전하거나 배우려는 적극적 자세 등 진중한 모습도 신구조화를 이룰 수 있었던 비결.

선수들 사이에서의 이같은 모습 뿐 아니라 이성열이 홈런을 친 뒤 한용덕 감독의 가슴을 강타하는 등 선수와 감독, 그 사이를 연결하는 코칭스태프에 이르기까지 과거 수직적 구조는 현재 수평적 구조로 완전히 재편됐다. 13일 넥센전에서는 외국인 선수 샘슨이 취재진 틈에 끼어들어 “감독님이 포커페이스를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이냐”는 질문을 던지는 등 외국인 선수들도 예외는 아니다. 현장과 프런트, 1군과 2군 사이에서도 원활한 소통이 나타나면서 더 이상은 이렇다 할 잡음을 찾기 어렵다.

또한 과거 무리한 운용으로 온갖 부작용이 속출했다면 올해는 상식이 지켜지는 야구를 통해 당장의 성적 뿐 아니라 장기적인 관점에서도 미래를 밝히고 있다.

때로는 한 감독이 입 밖으로 꺼낸 원칙을 지나치게 철저히 지키려는 모습이 독으로 작용한 경우도 물론 존재했다. 하지만 외부 평가에 흔들리거나 조급함을 가지기보다 144경기를 멀리 내다보는 운용이 긍정적 효과를 일으킨 경우가 훨씬 더 많았다.

한 예로 선발 전력이 떨어지는 상황에서도 기존 불펜 자원의 보직을 전환하기보다 새로운 자원을 발굴하려는 노력이 있었기 때문에 불펜의 힘이 지속될 뿐 아니라 선발진까지 점차 다양한 카드가 쌓이고 있다.

또한 희생 번트를 최소화하며 승부처에서 좋지 못한 결과를 낼 때도 있었지만 적극적인 주루 플레이로 한 베이스를 더 진루하고, 선수들 스스로가 능동적인 플레이를 추구할 수 있도록 이끌기도 했다.

무엇보다 변칙이 아닌 원칙, 당장의 결과보다는 과정을 중시한 덕에 선수들 역시 혼란을 겪을 일이 별로 없다. 뚜렷하게 세워진 원칙에 맞게 움직이면서 선수단 내에 신뢰와 믿음이 싹튼 것도 한화에 나타난 큰 변화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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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들의 외치는 ‘행복야구’

과거에도 한화를 놓고 ‘행복수비’, ‘행복야구’와 같은 표현이 자주 사용되곤 했다. 그러나 대부분은 반어적 의미였고, 자조적 탄식 또는 조롱이 담긴 표현에 가까웠다.

최강 전력과 거리가 멀었음에도 8회가 되면 ‘최강한화’를 외쳐야 했던 팬들에게 선수단은 늘 미안한 마음을 품어야만 했다.

그러나 올해는 수많은 한화 팬들이 “진짜 행복야구를 보고 있다”며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대전에서 한화 야구는 최근 가장 큰 관심사 중 하나다. 실제 홈 31경기를 소화한 현재 구장 규모가 크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평균 1만명 이상이 대전 한화생명 이글스파크를 찾았고, 벌써 9경기에서 1만3000장의 티켓이 모두 팔렸다.

단지 충청권을 넘어 전국에 숨어있던 한화 팬들 역시 자랑스럽게 각 구장의 원정석을 가득 채우고 있다. 원정경기 평균 관중 1만5933명은 전국구 인기팀이자 지난해 우승팀인 KIA(1만5068명)보다도 더 높은 전체 1위에 해당되는 숫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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