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양의지 사태’의 여진이 오래가고 있다. 스트라이크 판정에 대한 선수들의 불만이 여전해 심판의 권위가 계속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다.

사태의 본질은 올해부터 공 한개 정도 늘어난 스트라이크 존(S존)이다. 야구에서는 3할이 ‘꿈의 타율’인데 2016년엔 0.320을 쳐도 20위에 못들었고, 지난해는 0.312를 쳐야 겨우 20위에 턱걸이할 정도로 타고투저(打高投低) 현상이 심해져 S존에 변화가 온 것.

선수들이 여기에 적응하지 못한데다 심판마다 약간의 오차가 있어 S존에 대한 갈등은 끊이지 않을 전망이다.

두산 포수 양의지가 투수가 던진 공을 받질 않아 공이 뒤로 빠지고 있다.

선수들이 S존에 예민해진 것은 웬만한 1군 주전의 연봉이 2억원이 웃도는 상황에서 판정 하나 하나에 일희일비(一喜一悲)하고 있기 때문. 물론 근본적인 이유는 타자는 자신이 치지 않은 공은 당연히 볼로 여기고, 투수는 자신이 던진 공은 스트라이크로 생각하는, 야구의 속성에 있다.잇단 판정 항의는 프로야구의 상품성을 갉아 먹어 중장기적으로 팬들이 구장을 외면할 수 있는 중대한 ‘관중 감소 요인’이다. 대책은 없는 걸까?

일단 선수들의 자제가 필요하다. 프로야구는 원천적으로 오심(誤審)이 있을 수밖에 없어 ‘오심에 대한 이해’가 일단 선행돼야 한다. 뇌과학자에 따르면, 우리 뇌는 뚝~떨어지는 변화구(스플리터, 이른바 포크볼)나 옆으로 쑥~미끄러지는 변화구(슬라이더)를 정확히 감지하지 못한다. 타자들이 스플리터나 슬라이더에 자주 삼진을 당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타자가 이처럼 속을진데 포수에 가려있는 구심은 공 판정이 더 어려울 수밖에 없다. 눈에 보이지 않는 스플리터나 슬라이더는 감(感)에 의존하게 된다(S존 하단으로 떨어지는 스플리터를 포수가 포구후 눈속임으로 들어 올렸을때 스트라이크로 선언되는 게 대표적 사례). 그러므로 ‘오심도 판정의 일부’라는 다소 의연한 자세가 선수들에게 요청된다.

20여년 전 메이저리그(ML)에서 판정 항의가 잇따르자 ML 사무국에서는 여러 경기를 골라 컴퓨터로 투구 판정을 했는데 한경기 평균 2개의 오심이 있었다고 한다.

이 정도 오차면 ‘허용치’라는 결론을 내려 오심 논쟁이 한때 쑥 들어간 적이 있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오심 의혹이 많다고 요즘 한창 붐이 일고 있는 인공지능 로봇에게 구심을 맡길 수는 없지 않은가.

선수들은 웬만하면 구심의 판정에 복종하는 분위기를 이끌어야 한다. 다만, 선수가 항의한다고 해서 너무 엄격히 ‘퇴장 카드’를 들이미는 것은 프로답지 못하다. 올시즌 개막 직전 급조된 ‘경기중 심판위원에게 질의 금지’라는 한국야구위원회(KBO)의 선수단 행동관련 지침은 너무 경직된 것이다.

선수들의 익살스런 항의나, 야구 방망이를 무릎 힘으로 부러뜨리는(ML에서나 볼수 있는 진기한 장면이지만) ‘애교섞인 만행’은 팬서비스라고 여겨야 한다.

심판위원들은 오심을 하나라도 더 줄일 수 있게 더욱 컨디션 관리에 힘을 써야 한다. 볼 판정뿐 아니라 루상에서도 언제나 건전한 신체에, 맑은 정신으로 판정을 내릴 수 있도록 개인 생활에 유의해야 한다.

지난해 시즌 비디오 판독 오심률은 31.2%였으나 올해는 시즌 초반이긴 하지만 38.6%(4월 16일 현재)까지 치솟았기 때문이다.

현 시스템으로는 심판들은 시즌중 이동이나 숙소 생활때 완전한 개인 자유로 움직인다. ‘최규순 사고’ 같은 건 다시는 일어나지 않겠지만, 심판 개인별 일탈 행위는 언제든지 생길 수 있다. 조장 책임하에 여가시간을 등산이나 바둑, 낚시, 테니스 등으로 건전하게 보내 엄정한 판정으로 존경받는 ‘야구장 포청전’이 되도록 각자 힘써야겠다.

`양의지 사태'와 관련해 한국야구위원회가 상벌위원회를 개최하고 있다.

양의지에 대한 ‘벌금 300만원, 유소년 야구 봉사활동 80시간’의 징계는 지난 12일 내려졌다. 그런데, 바로 다음날인 13일 경기에서 한화 이용규와 삼성 이원석의 판정 항의가 이어졌다. 원래 징계가 있은 며칠간은 선수들이 근신을 하는데 어떻게 바로 다음날 항의가 잇따랐을까?

이는 징계가 약한 탓이었다. 만약 ‘출전 정지’라는 중징계가 덧붙여졌다면 이용규나 이원석이 위험을 무릅쓰고 항의했을까. 프로야구계로서는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인 1990년대만 해도 판정에 항의하며 구심의 안면까지 가격해 20~30경기 출전 정지의 중징계가 내려진 적이 몇 번 있다.

하지만 출전 정지는 선수에게 가혹한 징벌이어서 KBO는 가능한 삼가고 있다(KBO에서 공식사용하는 출장이란 단어는 일본식 용어여서 출전으로 수정돼야 함. 전체 스포츠중 야구만 출장이란 표현을 고수하고 있음).

그러나 선수들의 행위가 도를 넘으면 ‘출전 정지’의 엄한 카드를 뽑지 않을 수 없다. 지난해 판정에 거센 항의를 한 SK 이대수와 두산 오재원에게 각각 2경기 출전 정지와 유소년 봉사활동 40시간의 징계가 내려졌다.

양의지는 더 심한 일탈 행위를 했는데, 한 경기라도 출전 정지를 시키지 않은 건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게 일부 언론과 야구인들의 지적이다. 양의지는 투수의 연습 투구를 받지 않아 하마터면 구심이 다리 부상을 입을뻔 했다. 동영상을 유심히 보면 ‘양의지의 고의’임이 명백해 보인다.

만약 그렇다면 심판의 권위에 대한 심각한 도발임으로 심판에게 욕설한 것보다 더 한 중징계감이다. 양의지의 연봉은 6억원인데 연봉의 0.5%에 불과한 300만원의 벌금에 처해 졌으니 양의지가 일말의 죄책감에라도 사로잡히지 않은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 양의지는 징계 다음날, 4타수 2안타(1홈런 포함)를 날려 타율 1위를 유지했다.

양의지에게 왜 출전정지의 징계가 내려지지 않았을까? 모 기자는 의미심장한 이야기를 했다. “정운찬 총재는 두산 가(家)와 오랜 인연을 맺어 왔고 ‘열혈 두산팬’이라고 공공연히 말해 왔잖아요. 거기에 답이 있지 않을까요.” 또 어떤 기자는 “심증(心證)은 확실한데...”라고 말을 흐렸다.

두산측에서 정 총재에게 부탁을 하거나, 정 총재가 상벌위원장에게 가이드 라인을 제시했을리는 만무하다. 하지만 총재가 임명한 상벌위원장은 결정전에 총재의 심기를 살피지 않았을까.

만약 양의지가 5경기 정도의 출전 정지 처분을 받았다면, 리그 1위의 주전포수 겸 타격 핵심의 이탈로 인해 두산의 전력은 큰 타격을 받을수 있었다. 상위권 순위 판도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단독 1위를 질주하는 두산은 운까지 좋다고 해야 할까. 야구 칼럼니스트/前 스포츠조선 야구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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