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를 하고 있는 야구 자료 수집가 이석우 씨.
[스포츠한국 전영민 기자] 바야흐로 디지털 시대다. 애플리케이션에서 E-Ticket으로 입장권을 받아볼 수 있고, 웹 사이트에서 야구 용품을 구매해 직접 택배로 받아볼 수 있다. 야구장에 직접 가지 않아도 검지손가락 하나로 예매부터 구매까지 모든 것이 가능한 시대인 것이다.

1958년 부산-경남 연식야구협회가 발행한 고문 추대장부터 2017년 ‘국민타자’ 이승엽의 은퇴경기 입장권까지 약 5만여 점. 야구 자료 수집가 이석우(54) 씨는 디지털 시대에서 꿋꿋이 시대를 역행하고 있다. 야구 자료로만 영역을 한정짓는다면 그는 디지털의 홍수에서 아날로그 영역을 지킨 셈이다.

사실 한국야구위원회(KBO) 야구박물관 자료수집위원회가 수집한 자료를 정사(正史)라고 한다면 이석우 씨가 모은 자료들은 야사(野史)에 가깝다. 자료수집위원회의 자료가 공식적인 기록, 트로피와 상장 등이라면 그가 수집한 것은 어린이회원 모집 때 썼던 필통, 선수들 사인, 아이스크림 포장에 있던 야구선수 장난감, 심지어 문방구에서 팔던 야구선수 딱지까지 별별게 다 있다.

1983년 해태 타이거즈 우승 기념 과자 봉지에 들어있던 기념품(위), 1982년 각 구단 어린이 회원용 수첩과 스포츠 카드(아래).
이석우 씨가 수집한 자료들은 한국프로야구 역사뿐 아니라 야구와 함께한 일상생활 속 한국야구라는 역사적 가치도 지닌다. 지난 2016년 자료를 확인하기 위해 이석우 씨를 만난 KBO 자료수집위원회 직원들은 그가 정리해둔 파일을 보고 ‘이 정도면 충분하다’며 바로 매수 계약을 준비하기도 했었다.

이석우 씨의 자료가 선수들의 용품, 경기장을 찾은 야구팬들이 받은 기념품뿐 아니라 한국야구가 대중의 일상에 미친 영향력을 가늠할 수 있는 척도가 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

마침 2014년에 KBO는 기장군과 ‘한국야구 명예의 전당’ 건립 협약을 체결했다. 부산시의 예산 문제로 조금 지연되긴 했지만 2019년에 맞춰 완공될 야구박물관에 KBO가 수집한 자료 4만여 점을 전시할 계획이다.

미국 메이저리그(MLB)는 야구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지난 1939년 뉴욕의 쿠퍼스타운에 명예의 전당을 세웠다. 명예의 전당은 야구 역사의 가치를 인정하고 위대한 업적의 공을 인정하는 명예로운 자리다. 그에 걸맞게 일반적인 야구 용품뿐 아니라 역사적 가치만 있다면 무엇이든 전시돼있다.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 박물관. ⓒAFPBBNews = News1
자료를 모아둔 파일 뭉텅이를 펼친 이석우 씨는 “삼성생명에서 근무하며 살아온 지난 25년보다 야구 자료를 수집하는데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쏟았다”면서 “평생 월급을 야구 자료를 사는데 투자한 것 같다”라고 지난 세월을 돌아봤다.

그는 “중학생 때부터 취미로 야구 관련 자료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특별한 계기가 있다기보다는 뭔가를 모은다는 것이 괜히 멋있어 보였다”고 야구 자료들을 수집하게 된 계기를 설명했다.

1963년 10월 일본프로야구 도에이와 주니치 구단 초청 경기 팸플릿.
한번 재미를 붙인 야구관련 자료 수집은 대학을 졸업하고 회사에 들어가서도 계속됐다. 닥치는 대로 수집하다 보니 어느새 자신이 태어나기도 전에 제작된 자료까지 손에 들어왔다. 유별난 그의 야구 사랑은 소문에 소문이 돌아 KBS TV `별난 직장인' 프로그램에 출연할 정도로 전국에 널리 퍼졌다.

그는 “이베이에서 자비로 구매한 것도 있고 업무상 해외출장으로 외국에 직접 가서 따로 구매한 것도 있다”며 “웬만하면 매일 경기장을 찾았는데 미처 가지 못하는 날에는 현재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 사업 본부장인 정봉규 씨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수집 과정을 설명했다.

정봉규 본부장은 1990년대 초반 인천이 연고지였던 태평양 돌핀스에서 근무한 프런트 출신으로 그때부터 교분을 쌓아 지금까지 가깝게 지내고 있다. 이 덕분에 정 본부장으로부터 당시 팀에서 제작했던 경기일정표나 팬서비스용품 등을 따로 받을 수 있었다.

이석우 씨의 야구 사랑을 눈여겨보고 있던 정봉규 본부장은 당시 최태원 1000경기 연속 출장 기념으로 기념지 1000장을 제작했을 때 1번부터 10번까지 넘버링이 되어 있는 기념지를 받아 1~3번을 그에게 선물하는 `특혜'도 마다하지 않았다.

이석우 씨가 수집한 자료는 종류가 워낙 다양해 여러 방면에서 역사적 가치를 입증할 수 있다. 소장품 중 가장 아끼는 자료가 무엇인지를 물었다.

부산-경남 연식야구협회가 1958년에 발행한 이성환 고문 추대장.
그는 “부산-경남 연식야구협회가 1958년에 발행한 이성환 고문 추대장이다. 원래 인사발령이 나면 패를 주는데 당시에는 그 패를 종이로 줬다”며 “내가 소장하고 있는 것 중에 가장 오래된 것이다 보니 가장 애정이 간다”라고 말했다.

입장권 한 장과 고 최동원의 사인을 꺼내 든 이석우 씨는 “1982년 프로야구 개막전 티켓은 이베이에서도 5000달러(약 600만원)로 딱 세 번 올라온 게 전부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은 절취선을 따라 뜯지도 않은 아예 새 것”이라며 “최동원 선수 사인은 ‘100만원에 줄 테니 팔라’라는 말을 많이 들었지만 팔지 않았다”고 무한한 애정을 보였다.

(위쪽) 1982년 프로야구 개막식 티켓과 올스타전 티켓 (아래쪽) 최동원 선수 친필 사인
그러나 수집한 자료가 워낙 방대해 보관에 애를 먹는 것도 사실이다.

그는 “하도 양이 많다보니 그냥 박스에 넣어뒀다. 가끔 꺼내서 먼지를 털어줬는데 종이로 된 것들이 많다보니 괜히 건드리면 다 훼손될 것 같아 걱정이다”며 “하나하나 꺼내서 비닐이나 파일에 정리해보는 중인데 양이 워낙 많아 엄두가 나질 않는다”고 혀를 내둘렀다.

얘기를 이어가던 이석우 씨는 문득 이승엽이 56호 홈런 신기록을 작성했던 지난 2003년 10월 2일 경기 입장권, 그리고 지난해 10월 3일 이승엽의 은퇴 경기 입장권을 같이 꺼내보였다.

그는 “2002년 이승엽 선수 어머니가 뇌수막염으로 쓰러지셨을 때, 무턱대고 10만 원짜리 과일바구니를 사서 병원에 찾아갔다. 승강기에서 내리자마자 검은 정장 입은 보디가드들이 막았는데 그냥 뚫고 들어갔다”며 “과일바구니만 전해주고 나오는데 이승엽 선수 아버지가 뛰어나오시더니 저를 데리고 지하로 가서 차를 한 잔 사주셨다. 한 번 더 찾아가 식사를 하고나서부터 현재까지 계속 인연을 유지하고 있다”며 이승엽과의 특별한 인연도 밝혔다.

그의 꿈은 더 이상 야구 자료 수집에 그치지 않는다. 이제는 자신이 소장하고 있는 야구 자료를 모든 사람들과 함께 공유하고 싶은 바람이다.

한국야구의 정신이 깃든 수많은 자료들이 관리 소홀로 후손들에게 짐짝처럼 내팽겨질 것 같아 걱정이라는 이석우 씨는 “박물관에 공간이 마련된다면 자료들을 전시해서 야구팬이나 후손들이 ‘야구 선배들은 이런 것들도 만들었구나’라고 느끼게 해주고 싶다”며 야구박물관 건립을 학수고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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