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으로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 탓인지, 우리나라 사람들은 베품과 나눔에 인색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가장 초라한 성적표를 기록하고 있는 기부 문화만 봐도 그렇다. 세계적인 부호들이 어떻게 부(富)의 사회 환원을 실천하고 있는가를 살펴보면 한국의 부자들은 부끄럽기 짝이 없다.

노블리스 오블리주(높은 사회적 신분에 상응하는 도덕적 의무)는 초기 로마시대에 왕과 귀족들이 보여준 투철한 도덕 의식과 솔선수범하는 공공정신에서 비롯됐다. 요즘은 돈있는 사람들의 뜻있는 기부와 자선 행위를 주로 일컫는다.

프로스포츠 스타들이 돈방석에 앉은 지는 오래됐다. 세계적인 스포츠 갑부는 수두룩하다. 정현의 돌풍으로 우리 국민들이 큰 관심을 가지게 된 호주 오픈 테니스대회에서 로저 페더러(스위스)는 통산 20번째 메이저 우승을 따내며 20년간 대회 상금으로 약 1,212억원을 벌어 들였다. 2016년 스폰서십으로만 6000만 달러(약 640억원)를 기록했으니 수천억원의 자산가다.

한국프로야구는 이에는 못미치지만 수십억대 부자들을 매년 여러명 배출시키고 있다. 1982년 출범 때 선수 최고 연봉이 2,400만원에 불과했으나 야구 산업의 급격한 발달에 힘입어 이대호(롯데)는 ‘FA(자유계약선수) 총액’으로 4년간 150억원(계약금+연봉)을 기록하기도 했다.

지난 시즌 끝난 뒤 메이저리그에서 돌아온 김현수(LG, 115억원)와 황재균(kt, 88억원), 국내파 손아섭(98억원)과 민병헌(80억원, 이상 롯데), 강민호(80억원, 삼성)는 샐러리맨이 꿈도 꿀 수 없는 거금을 손에 쥐었다.

그렇지만 이들이 모교 야구 후원금 등으로 소액 기부한 것 등을 제외하고는 ‘통큰 기부’를 했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우리나라에서 가난한 이와 소외된 이, 뭔가 절실히 필요한 이들을 위해 가장 활발한 사업을 펼치고 있는 사회복지공동모금회(사회복지회)를 예로 들어보자.

지난 12월 기부금 1억원을 전달한 LG 류중일 감독.

사회복지회는 1억원 이상 개인 기부자에게 ‘아너 소사이어티’ 가입 자격을 준다. 아너 소사이어티 회원은 사회적으로 명예로운 타이틀을 갖게 된다.

아너 소사이어티 회원은 총 1,787명(1월 28일 현재)으로 돈많은 사람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지만, 가슴 뭉클한 기부자들도 있다.

소방관 아버지가 임무 중 순직한 아들의 이름과 함께 가입한 사례가 있고, 아르바이트로 월 3만원씩 기부를 시작해 최근 1억원 기부 약정을 한 20대 청년 사업가도 있다.

이에 비해 스포츠 스타들의 참여는 미미한 편이다. 역대 기부자는 농구 1명, 축구 3명, 야구 7명, 골프 8명 등 19명으로 전체의 1.06%에 불과하다.

지난 연말 1억원 기부로 '아너 소사이어티' 1686번째이자 프로야구 7번째 회원이 된 삼성 우규민.

야구는 2012년 12월 김태균(한화)을 스타트로 류중일(감독으로 유일), 진갑용(삼성) 정근우(한화) 손승락(롯데) 임창용(KIA)으로 이어오다 지난해 12월 우규민(삼성)을 끝으로 맥을 잇지 못하고 있다.

1월 28일 현재 10개 구단은 선수 연봉계약을 거의 마무리했는데, 고액 연봉자들의 기부 소식이 들리지 않고 있다.

물론 뼈를 깎는 과정을 통해 힘들여 번돈을, 노후를 위해 저축하거나 부동산 등에 몽땅 투자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이제 사회적으로 신분이 상승한 만큼, 자신을 키워준 사회와 국가를 위해 한번쯤 봉사할 일이 없는 가를 돌아볼 시기가 됐다.

억(億)이란 한자는 사람 인(人)변에 뜻 의(意)자로 이뤄져 이 글자가 만들어진 수천년전에는 사람이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숫자였다. 하지만 이제는, 우리나라의 경우 연봉 1억원 이상을 받는 근로자가 지난해 43만명이 넘을 정도로 귀하지 않은 액수가 됐다.

1억은 80억원의 1.25%에 그치고 150억원의 0.67%에 불과하다. 올시즌이 끝난 뒤 FA 대박을 터뜨리는 선수들의 아너 소사이어티 가입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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