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취임한 한국야구위원회(KBO) 정운찬 총재가 본격 업무를 시작하기도 전에 ‘암초’에 걸렸다. 정 총재는 취임사에서 내부 조직정비를 하겠다는 뜻을 밝혔으나 조직 정비에 착수하기도 전 암초를 만난 것.

암초는 바로 양해영 전 KBO 사무총장이다. 지난 12월 31일로 임기가 끝난 양 전 총장은 새 총재의 의사와 상관없이 ‘총재 특보’로 계속 일하려 하고 있다. 만나는 야구인들에게 ‘총재 특보’로 자신을 소개하고 있다고도 한다. 구단 사장들까지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이 희한한 인사가 어찌 이뤄졌을까.

최근 M사의 보도에 따르면 양 전 총장은 지난해 3월 자신이 사무총장 퇴임후 특보로 임명된다는 결재안을 올렸으며 구본능 총재는 즉시 이 결재안에 사인했다고 한다.

이는 누가 봐도 상식에 어긋난 처사다. 새 총재의 결재 권한을 일찌감치 침범한 것. 예를 들어 퇴임하는 대통령이 차기 정부의 장관이나 특보를 미리 임명하는거와 같은 어처구니없는 짓이다.

당연히 KBO 규약에도 위반된다. 규약 9장 33조에 따르면 “총재는 필요에 따라 약간 명의 고문및 특별보좌역을 둘수 있다”고 돼 있다. 여기서 말하는 총재는 전임 총재가 아니라 현직 총재를 말한다. 그러므로 양 전 총장의 ‘총재 특보 셀프 임명’은 두말할 필요가 없는 규약 위반이다.

스스로 자리를 마련한 양 전 총장의 몰상식한 처사는 논외로 치더라도 두가지 의문이 남는다. 구본능 전 총재는 무슨 이유로 양 전 총장의 퇴직후 ‘전관 예우’까지 배려했을까.

양 전 총장은 전 대통령 비서실장의 국회의원 시절 비서관 출신으로, 전 비서실장의 부탁에 의해 사무총장에 연임됐다는 건 야구계의 공공연한 비밀. 그런데도 구 전 총재는 양 전 총장을 ‘사전 결재’로 감싸고 돌았으니 대기업(희성 그룹) 회장으로서의 양식마저 의심스러울 지경이다.

다음으로 정운찬 총재는 이런 사실을 몰랐을까. 아마 총재 인수인계 사항에 ‘양해영 특보 임명’이 포함됐을 것이다. 전임 총재의 요청 사안을 거절하기 어려웠다 하더라도 “이 건은 내 취임후에 결재할 거니 기다리시오”라고 양해를 구하는 게 순리가 아니었을까.

자, 일이 이렇게 된 이상 어떤 처방이 있을까. 양 전 총장은 총장 재직시절 두가지 비리에 연류됐다. 또 재직시절 부하 직원들로부터 불신임이나 배척을 당한 처지여서 총재 특보로 KBO에 계속 근무한다는 것은 내부 조직으로보나 야구계 여론으로 보나 있을 수 없다. 현재 정 총재는 특보 임명을 고민중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의욕적으로 출범하는 새 총재가 ‘잔가지’에 불과한 특보 문제로 대내외적 지탄을 받아서는 안된다. 하루빨리 양해영 특보 문제를 마무리지어 내,외부 동요를 막고 산적한 현안 해결에 나서기를 요청한다.

양 전총장의 양식도 극히 의심스럽다. 서울중앙지법 시민사법위원을 역임하고 현재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 부회장직을 맡고 있는 것은 KBO 사무총장이라는 타이틀이 배경이었다. 당연직 임명이니 사무총장을 그만두면 연계된 직책도 사직하는 게 도리다.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 부회장직을 자진 사퇴하면 김응용 회장의 부담을 크게 덜어주게 된다. 특보직 욕심도 내려놓으면 정운찬 총재의 운신이 편해진다.

양 전총장은 ‘공성이불거(功成而不居, 공을 세웠더라도 그 자리에 머물지 말라)’라는 노자의 말씀을 되새겼으면 좋겠다.

현재 거론되고 있는 사무총장 공모제는 찬반 여론이 갈리는데 폐단이 더 많아 보인다. 공모제는 외견상 그럴듯 해 보이지만, 선임과정에서 온갖 잡음이 나올 수 있다.

신임 총재가 공모제를 거론한 건 외부 압력을 차단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KBO는 향후 정부의 협조를 요청할 일이 많은데, 정치권의 사무총장 선임 부탁을 매정하게 뿌리치기는 어렵다. 그렇다고 야구계에서 반대하는 인사를 덥썩 임명하기도 어려워 ‘방패막이’로 공모제를 검토하는 것 같다.

신임 총재는 이전 총재와 달리 매일 출근해 업무를 일일이 챙길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다면 새 사무총장 업무는 이전 사무총장보다 훨씬 줄어든다. 총재를 보좌하고 실무 행정을 책임지는 정도로 축소된다.

이런 왜소해진 사무총장을 떠들썩하게 공모한다는 것은 여러모로 비효율이요, 낭비다. 정 총재는 좌고우면하지말고 이사회(사장단 회의) 의견을 종합해 사무총장 적임자를 임명하는 게 좋다. 야구 칼럼니스트/前 스포츠조선 야구大기자

저작권자 © 스포츠한국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