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한국 이재현 기자]대안학교인 성지고등학교 야구부가 쾌거를 이뤄냈다. 창단한 지 불과 3년만에 모든 학생야구 선수들의 선망인 프로야구 진출의 첫 관문을 뚫었기 때문. 그 주인공은 바로 우완 투수 조선명(19)이다.

성지고 조선명. 선수 본인 제공
LG는 지난 11일 서울 중구 소공로 웨스틴 조선호텔 서울 그랜드볼룸에서 열린 2018 KBO 신인드래프트에서 조선명을 2차 4라운드 전체 37순위로 지명했다. 성지고 야구부 창단 이래 최초의 일이었다.

1998년생으로 만 19세인 조선명은 183cm, 78kg의 우완 정통파 투수. 구위가 좋아 최고구속이 시속 144km에 이른다.

소속팀이 성지고라는 사실도 놀랍지만 그의 입단이 더욱 놀라운 것은 그가 이른바 `엘리트 야구'를 고등학교 입학과 동시에 시작했다는 점이다.

그는 중학교까지는 남양주 리틀야구의 주니어 팀 소속이었다. 쉽게 말해 동호회에서 취미로 야구를 했다. 체계적인 관리와 훈련은 고교 입학해서 처음 받아봤고, 그로부터 불과 3년만에 프로야구 4라운드 지명이란 쾌거를 이뤄냈다.

일찍부터 조선명을 눈여겨봤다는 LG 김현홍 스카우트 팀장은 “구위가 좋은 선수인데, 투구폼이 군더더기 없이 간결하다. 또 인성적인 면에서도 발전 가능성이 엿보여 그를 일찌감치 선택했다. 크게 대성할 선수다”라고 밝혔다.

성지고 야구부의 한길세 감독은 12일 스포츠한국과의 통화에서 “조선명은 기본적으로 성실하며 자기 관리가 철저한 선수다.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지닌 선수라고 할 수 있다. 입학 당시부터 각별하게 공을 많이 들인 선수다”라고 칭찬했다.

올해 성적은 좋지 못했다. 조선명은 올시즌 총 14경기(58.1이닝)에 등판해 1승 10패, 평균자책점 6.67을 기록했다. 분명 돋보이는 성적은 아니다. 하지만 1승만 거둬도 화제가 되는 성지고 선수단의 열악한 전력을 감안하며 쉽게 수긍이 간다.

한길세 감독은 “더 좋은 성적을 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우리 팀 포수의 기량이 다소 떨어지는 탓에 (조)선명이가 전력을 다해 공을 던지지 않을 때도 많았다. 구위가 좋은 공을포수가 받아내지 못할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에 의도적으로 구속을 줄인 모습도 보였다”라고 설명했다. 한 감독의 지적은 LG 스카우트 팀에서도 동의하는 부분이다.

스포츠한국과의 인터뷰에서 조선명은 자신이 프로야구단의 지명을 받았다는 사실이 아직도 꿈만 같을 뿐 믿겨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프로지명 전날까지도 그는 대학 진학을 염두에 뒀던 그다. 그때까지 자신에게 관심을 보였던 프로 스카우트들도 없었고, 그래서 더 프로지명은 자신과는 무관한 일로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신인 드래프트 당일 지명 소식을 수화기 너머로 어머니에게 전했던 그는 어머니와 함께 말없이 눈물만 흘렸다고 털어놓았다. 오랜 시간 유방암 투병을 해왔던 어머니를 돌보며 야구 선수의 생활을 이어갔던 지나간 날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벅차오르는 감정에 숨이 막힐 정도였다고 한다.

조선명은 “남양주 주니어팀에서 뛸 때 감독님의 권유로 중학교 야구단 입학을 알아봤다. 하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대부분의 학교들이 인원이 가득 찼다는 이유를 들어 나를 받아주지 않았다"고 털어놓았다.

이유는 그럴싸했지만 주니어팀 출신이라는 선입견을 뛰어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더욱 오기가 생겼다.

암 투병 중에도 아들의 꿈을 응원한 어머니를 위해 어떻게든 주니어팀에서라도 성공하기로 마음먹었다. 때마침 중학교 졸업을 앞두고 성지고가 야구부를 창단한다는 소문을 듣고 무작정 성지고로 향했다.

그는 3년 전 상황을 떠올리며 "중학교 시절 무수히 거절을 당했던 아픈 경험이 나를 여기까지 이끈 것 같다”라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는 세간의 평가에 결코 안주하지 않겠다는 각오를 드러냈다. 오히려 부족한 점이 너무 많다고 겸손해 한다.

조선명은 “내 체격은 결코 좋은 편이 아니다. 훈련 환경이 열악한 편인 성지고에서는 체력훈련에 집중하지 못했다. 당장 키를 늘릴 수는 없지만 프로에서 통할 수 있는 선수가 되기 위해 몸을 키우는 것이 급선무다. 입단 전까지 웨이트 트레이닝에 힘쓸 생각이다”라고 계획을 밝혔다.

성지고 조선명. 선수 본인 제공
자신의 롤모델을 묻는 질문에 조선명은 주저하지 않고 일본프로야구 세이부 라이온스의 좌완 투수 기쿠치 유세이(26)을 꼽았다.

기쿠치는 지난 2010년 대형 신인으로 주목 받으며 여러 일본 구단은 물론 메이저리그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던 좌완투수다. 세이부는 시속 155km에 육박하는 강속구를 던지는 그를 치열한 경쟁 끝에 영입했다.

기쿠치는 팬들의 기대대로 프로 무대에 잘 적응했다. 지난해 처음으로 두자릿수 승수(12승)를 기록한 그는 올시즌에도 23경기에 등판해 14승 6승, 2.17의 평균자책점을 기록 중이다.

조선명은 “나와 달리 기쿠치는 왼손투수이지만 고등학교 때부터 뛰어난 근성을 바탕으로 타자들의 약점을 파고드는 데 능했다. 볼배합이나 제구, 여기에 투구폼 등 내가 배울 점이 많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타고난 재능과 근성으로 프로 입단이란 성과를 낸 조선명. 비록 그는 기쿠치라는 롤모델을 꼽긴 했지만 그 역시 누군가의 롤모델이 되기에 충분하다. 다른 선수들에 비해 출발이 늦은 중,고교 선수들의 희망으로 우뚝 선 것. 그는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서 프로야구 선수를 꿈꾸는 후배들에게 조언을 전했다.

“좌절과 실패를 경험하더라도 이를 이겨내 보겠다는 오기가 중요한 것 같아요.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르다는 말도 있듯이 우직하게 꿈을 향해 한 걸음씩 전진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해요. 꿈으로 향하는 길은 하나만 있은 게 아니에요. 포기하지 않다보면 꿈으로 향하는 또 다른 길이 열리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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