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일 계속된 무더위에 일상생활이 힘들 정도다. 치솟는 온도도 온도지만 습도까지 높아 더욱 견디기 힘든 여름철이다. 매일 같이 열기가 가득 찬 그라운드에서 훈련에 매진하는 야구선수들에게는 더욱 고역인 한여름 무더위다.

게다가 야구 선수들의 경기 복장은 타 종목 선수들에 비한다면 무척이나 무겁고 두껍다. 야구인들이 더위에 취약한 이유다.

지난 18일 인천 SK행복드림구장에서 열렸던 두산-SK전을 앞두고 경기장 관리자들이 잔디에 물을 뿌리고 있는 모습. 스포츠코리아 제공

프로 선수들 입장에서는 특히 대구의 무더위가 가장 견디기 힘들 것이다. 나 역시도 그랬다. 대구 원정을 갈 때면 에어컨 속으로 마냥 들어가 있고 싶었다. 지난해에 지어진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에는 쿨링 미스트가 덕아웃에 설치돼 있는 것으로 아는데, 예전보다는 그나마 나아졌을 것이라 생각된다.

이에 반해 고척 스카이돔구장을 홈으로 쓰는 넥센 선수들은 일종의 호사를 누리고 있는 셈. 4계절 야구가 가능한 돔구장의 강점은 겨울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여름에 강점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돔구장의 일정한 온도는 체력 저하를 막아줄 뿐만 아니라, 훈련량을 많이 가져가는 것도 큰 지장이 없게 한다.

그렇다면 선수들은 어떻게 여름을 보낼까. 물론 나는 모자에 양배추를 넣어두는 특이한 방법으로 무더위에 대처해 왔는데, 나의 경우는 어디까지나 예외적인 특수한 경우다.

선수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무더위를 나는 가장 기본적이고 효과적인 방법은 역시 물을 많이 마시는 것이다. 예전에는 코치들이 물을 많이 마시지 않도록 교육하기도 했는데, 이제는 흐름이 달라졌다. 비타민 음료도 좋지만, 영양학적인 측면에서는 스포츠 음료가 효과 만점이다. 물론 개인 선호도에 따라 다른 것은 거부한 채 물만 섭취하는 선수들도 더러 있다.

일종의 보양식을 틈틈이 먹는 선수들도 눈에 띈다. 요즘에는 홍삼 액기스 등을 아이스박스에 넣어둬 섭취하는 경우도 본 적이 있다. 다만 이 때 조심해야 할 것은 구단 관계자와 상의 한 뒤 건강기능식품 혹은 보양식을 선택해야 한다. 도핑 위반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포지션과 역할에 따라 체감하는 더위의 정도도 달라진다. 우선 선발 투수들과 포수들은 여름에 무척 힘든 보직이다. 특히 포수들이 애를 먹는다.

장비를 착용하는 것부터 고역이다. 2,3kg은 족히 나가는 장비를 차고 있으면 땀이 비오듯 쏟아진다. 땀이 쏟아지면 장비의 무게도 그만큼 더 많이 나가기 마련. 게다가 그 무거운 장비를 착용한 채 뛰어 다녀야 한다. 사용하는 글러브마저 가장 무거운 포지션이 포수다.

연습량도 상당하다. 파울 플라이 캐치부터 블로킹, 여기에 타격 훈련까지 사실상 모든 훈련을 다 한다고 봐야 한다. 체력이 고갈되지 않는 것이 이상할 정도. 좋은 포수를 많이 보유한 팀이 여름을 잘 버티는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이치다.

내심 무더위를 기다리는 선수들도 있다. 바로 불펜 투수들이 그렇다. 짧은 시간만 집중해서 던져도 무방한 불펜투수들은 상대적으로 더위에 지장을 받지 않는 선수들이다.

얼음팩으로 더위를 식히고 있는 삼성 이승엽. 스포츠코리아 제공
특히 젊은 선수들은 더워지면 관절 가동 범위가 넓어진다. 근육도 추운 날씨에 비한다면 훨씬 빨리, 효과적으로 풀어진다. 일반적인 날씨에서는 워밍업에만 20분을 투자해야 했다면, 더운 날씨에서는 10분 만 투자해도 충분하다.

하지만 제 아무리 불펜 투수라고 할지라도 연일 계속 이어지는 폭염 앞에서는 장사가 없다. 경기 시간이 최소한 3시간 가까이 걸리는 야구는 더욱 그렇다. 이제는 우천 취소만 고려할 것이 아니라 폭염 취소 선언도 진지하게 논의를 해야 할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견디기 힘든 무더운 날씨는 선수들의 경기력 저하는 물론 경기 관람 환경의 질까지 떨어뜨린다.

올해부터 KBO는 규정을 손질해 매 해 7,8월 퓨처스리그 경기 개시 시각을 오후 4시로 지정했다. 지난해까지만 하더라도 1년 내내 경기 개시 시각이 오후 1시였던 것을 감안한다면 대단히 환영할 만한 결정이다.

이처럼 선수들이 폭염에 노출되는 것을 걱정하기 시작한 KBO의 행보는 무척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폭염 취소 규정의 애매함은 여전히 문제다.

KBO는 리그 규정 제 1장 27조 ‘황사경보 발령 및 강풍, 폭염시 경기취소 여부’를 통해 폭염 취소가 가능함을 명시해 뒀다. 3항 ‘다’에 따르면 ‘경기 개시 예정시간에 폭염 주의보가 발령 돼 있을 경우 해당 경기 운영위원이 지역 기상청(기상대)으로 확인 후 심판위원 및 경기관리인과 협의해 구장 상태에 따라 취소 여부를 결정한다’고 쓰여 있다.

폭염 주의보는 6~9월 사이 일 최고 기온이 섭씨 33도 이상인 상태가 이틀 이상 지속 될 때 내려진다. 한 단계 높은 폭염 경보는 33도 보다 2도가 높은 섭씨 35도 이상인 상태가 2일 이상 이어지면 발령된다.

18일 두산-SK간의 경기가 열렸던 인천 SK행복드림구장 외야에 설치된 워터 플렉스가 가동된 모습. 스포츠코리아 제공
하지만 이러한 규약은 사실상 말 뿐인 규약이나 마찬가지다. 기상청에 확인을 하는 것은 좋지만, 핵심은 많은 이들과 협의 후 결정을 내려야 한다는 것이다. 구체성이 결여된 규약이다.

우천 취소 결정마저 팬들, 미디어로부터 비난 받는 것은 물론 가끔은 징계까지도 밟는 현 시대에서 협의 끝에 폭염 취소를 결정하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경기 운영위원이 자의적 판단으로 폭염 취소 결정을 내리는 것은 무척이나 부담이다.

따라서 정확히 기준을 정하는 일이 필요해 보인다. 예를 들어 ‘일 최고 기온이 섭씨 35도 이상인 상태가 2일 지속되면 폭염 취소를 선언해야 한다’라고 규약을 수정할 수는 없을까. KBO가 폭염 취소 규정의 재검토에 전향적 태도를 보일 때다.

박명환 스포츠한국 야구 칼럼니스트·해설위원/ 現 야구학교 코치, 2017 WBC JTBC 해설위원


정리=이재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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