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한국 이재현 기자] 두산의 백업 외야수 정진호(29)가 한 순간에 두산의 희망으로 우뚝 선 모양새다.

두산은 지난 29일 오후 6시30분 잠실구장에서 열린 SK와의 주중 3차전 마지막 경기에서 6-3으로 승리했다. 이로써 두산은 지긋지긋했던 4연패의 늪에서 벗어나는데 성공했다.

두산 정진호. 스포츠코리아 제공
이날 경기 두산 공·수에서 가장 빛난 선수는 단연 장원준과 김재환이었다. 좌완 선발 투수 장원준은 7이닝 2실점 호투를 좌타 거포 김재환은 1회 3점포를 포함해 3타점 경기에 성공했다.

하지만 빼어난 활약을 했음에도 두 선수에 가려져 제대로 된 빛을 보지 못한 선수가 있다. 바로 두산의 백업 외야수 정진호다.

지난 2011년 두산에서 1군 무대에 데뷔했던 정진호는 그동안 민병헌, 정수빈, 김재환, 박건우등 화려한 스타 외야수 틈바구니 속에서 주목 받지 못하던 백업 외야수였다.

올시즌을 앞두고 정수빈이 경찰야구단에 입단하면서 숨통이 트이는 듯 했지만, 지난 1월 공식 장비 지급일에 만났던 정진호는 시즌 목표로 ‘1군 엔트리 포함’이라는 소박한 목표를 드러냈다.

실제로 정진호는 올시즌 역시 1군과 2군을 수시로 오가는 이른바 1.5군 선수였다. 하지만 지난 7일 잠실 삼성전에서 사이클링히트를 달성한 것을 기점으로 정진호의 위상은 확연히 달라졌다.

6월 6일 1군에 세 번째로 콜업 된 직후 그의 6월 타율은 29일 기준으로 무려 3할6푼6리(41타수 15안타)다. 이는 6월 40타수 이상 책임진 두산 선수들 가운데 3위에 해당하는 기록. 적어도 정진호는 6월엔 정상급 타자였다.

특히 주목해야 하는 부분은 같은 기간 출루율. 정진호의 6월 출루율은 4할2푼2리. 역시 같은 기간 팀 내 3위다. 지난 25일 민병헌의 부상으로 당장 매 경기 테이블세터, 그 중에서도 리드오프를 쉽사리 정하지 못했던 김태형 두산 감독은 바로 정진호의 ‘고출루율’을 높이샀다.

29일 잠실 SK전을 앞두고 김태형 감독은 “앞으로 상대 투수를 봐가며, 매 경기 리드오프를 바꿔 나가야 할 것 같다”라고 밝혔는데 일단 첫 주자로는 정진호가 낙점 받았다. 아무래도 SK의 우완 선발 투수 문승원을 의식한 라인업이었던 것.

결과적으로 정진호 카드는 대성공으로 귀결됐다. 4-0으로 앞선 2회말 1사에서의 중월 솔로포를 포함해 그는 2타수 2안타 2득점 1타점 2볼넷을 기록했다. 4출루 경기를 달성한 것도 모자라 타점까지 올렸다. 리드오프로서 보여줄 수 있는 모든 것을 보여준 셈이다.

당분간 이른바 로테이션 리드오프 체제를 계획했던 김 감독 입장에선 다른 의미로 고민이 될 정진호의 활약이다. 물론 그나마 행복한 고민에 가깝다. 정진호를 리드오프 자리에 고정 시켜 민병헌의 공백을 메워야 할지 아니면 투수에 맞춰 다른 선수를 번갈아 기용해야 할지 갈등이 될 법하다.

두산 정진호. 스포츠코리아 제공

물론 국해성이 정진호를 대신해 외야에 투입 될 경우에는 상황이 달라질 수 있겠으나, 당분간은 정진호를 주전 리드오프로 쓰는 것도 나쁜 선택이 아닌 듯하다. 심지어 우완이 아닌 좌완 선발 투수와 맞붙어도 경쟁력은 제법 있어 보인다.

표본이 적긴 하지만 정진호는 지난 시즌부터 올시즌까지 최근 2시즌간 좌완을 상대로 무려 타율 5할8푼8리(17타수 10안타)를 기록했다. 향후 좌완을 많이 상대하다보면 타율의 하락은 불가피한 일이 되겠으나, 최소한 몇 차례의 기회 정도는 줄 만한 수준이다.

게다가 초구에 좀처럼 배트를 내지 않고 공을 상대적으로 오래 보는 편인 정진호의 특성도 리드오프로서 높은 점수를 줄 수 있는 부분 중 하나.

2스트라이크 이후 파울 커트 능력은 오히려 민병헌 보다 낫다. 민병헌의 올시즌 2스트라이크 이후 커트 비율은 73.2%. 하지만 정진호는 77.1%나 된다. 쉽게 삼진을 당하지 않는 셈이다. 준수한 커트 능력에 비해 타석 당 볼넷 비율이 상대적으로 낮다는 점(6.7%)은 약점이지만 지난 29일 경기에서 정진호는 2볼넷을 얻어내며 가능성을 선보인 바 있다.

29일 잠실 SK전을 마친 직후 정진호는 “현재 내 처지가 타순을 가릴 때는 아니다. 나에게 주어진 타순의 역할에 맞춰 좋은 모습을 보여야한다는 생각뿐이다. 리드오프라고 해서 특별히 무언가를 해보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다만 매번 출루를 좀 해야겠다는 생각은 항상 가지고 있었다”라고 답했다.

다행스럽게도 한 경기 결과는 좋았지만, 리드오프라는 자리는 결코 호락호락한 자리가 아니다. 리드오프 역할에 상당한 부담감을 토로하는 KBO리그 내 선수들이 여럿 존재하는 것은 이를 증명한다.

다른 타순에서는 펄펄 날다가도 리드오프만 맡으면 성적이 급강하하는 선수들도 여럿 있다. 이처럼 만만치 않은 자리인 만큼 리드오프는 올시즌 ‘사이클링히터’ 정진호에게도 쉽지 않은 도전이 될 것이다. 그 역시 “리드오프를 맡는 일에 부담감이 없다면 거짓말이다”라고 밝혔다.

그러나 그나마 리드오프 재목인 최주환과 박건우를 중심 타선에 배치해야 하는 현 상황에선 정진호만한 대안도 없어 보인다. 어떻게든 최선을 다하겠다는 굳은 의지를 드러낸 그가 두산의 고민을 일거에 해결해줄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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