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A 임기영. 스포츠코리아 제공
[스포츠한국 김성태 기자]위기다. 5-2로 앞서고 있지만 유리하진 않다. 상대 주자가 득점권에 나가 있다. 포수의 미트가 향하는 곳으로 던져야 하는 것은 안다. 하지만 빗나가면 한 방을 내줄 것 같다.

맞춰서 잡아야 하는데 이상하게 승부를 피한다. 그렇게 볼넷으로 또다시 주자를 내보낸다. 그러기를 반복, 이제 만루가 됐다. 피할 곳이 없다. 가운데로 던진다. 홈런 한 방으로 5-2가 5-6이 된다.

누구나 위기 상황에서 홈런은 맞을 수 있다. 지난 20일, 미국 메이저리그 다저스에서 뛰고 있는 커쇼도 한 경기에 4개의 홈런을 내줬다. 개인 한 경기 최다 피홈런이었다.

타선의 도움으로 경기는 이겼지만, 커쇼는 덕아웃에서 발길질을 하며 자신에 대한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지구 1선발'로 불리는 커쇼도 저러는데, 누군들 위기 상황이 없겠나.

하지만 여기서 진짜 '톱 클래스'와 그 이하의 선수들이 갈린다. 득점권에서 상대에게 안타를 허용하지 않는, 위기에 특히 강하고 홈런은 내줘도 흐름은 넘겨주지 않는 투수, 그게 진짜 톱이다.

그렇다면 KBO리그에서 정말로 '톱'이라 부를 수 있는 선수는 몇 명이나 될까? 우선 위기 자체를 만들지 말아야 한다. 이닝당 출루허용률(WHIP)이 좋은 기준이 될 수 있다.

그리고 위기에 닥쳤을 때, 얼마나 상대를 효과적으로 제압하는지가 중요하다. 득점권 피안타율(OAVG)도 여러 기준 가운데 유용할 것 같다. 그럼 두 가지를 기준으로 10개 구단의 선발진을 살펴보자.

10개 팀 선발 가운데 이닝당 출루 허용률이 가장 낮은 선수는 바로 kt 피어밴드다. 1.02다. 공동 2위는 NC 해커와 넥센 한현희로 1.08이다. 그리고 4위가 임기영이다. 1.09다.

NC 해커. 스포츠코리아 제공
1.10 이하의 WHIP를 기록한 규정이닝 선발은 위의 네 명이 전부다. 이 중에서 임기영은 평균자책점이 1.92로 리그 1위이며 피어밴드는 꼴찌로 추락한 kt를 혼자 먹여 살리고 있다.

해커 역시 리그 2위로 팀 선발진의 에이스로 활약 중이며 지난 21일 경기에서도 SK를 상대로 완투승을 기록한 바 있다. 세 선수 모두 리그 톱 수준의 선발이다. 그러면 득점권 피안타율을 보자.

득점권에서 피안타율이 가장 낮은 선수는 LG 차우찬이다. 74번의 상황에서 허용한 안타는 11번에 불과하다. 피안타율이 0.149다. 무엇보다 득점권에서 볼넷을 허용한 적이 단 3번에 그친다.

위기 자체를 사전에 막고 설령 위기에 몰리더라도 최소한의 실점으로 경기 흐름을 내주지 않는 선수가 바로 차우찬이다. 자연스레 이닝을 많이 소화할 수 밖에 없고 이는 불펜의 부담을 줄여준다. LG의 불펜이 리그 최강인 것은 선발진의 보이지 않은 도움이 꽤나 크다.

그 다음은 앞에서 나온 해커와 임기영이다. 피안타율 2할1푼8로 공동 2위다. 그리고 4위가 피안타율 2할2푼의 롯데 박세웅이다. 롯데를 먹여 살리고 있는 안경 에이스다. 팀 내 외인이 모두 주춤한 사이, 홀로 7승을 따내며 고군분투 중이다.

위의 두 가지 기록만 보면 KIA 임기영과 NC 해커가 리그에서 가장 위기 관리 능력이 좋은 선수라고 볼 수 있다. 두 선수의 소속팀이 현재 리그 1위와 2위라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저작권자 © 스포츠한국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