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27일 서울 고척돔의 삼성-넥센전. 4-2로 앞선 6회말 1사 2,3루에서 삼성 구원투수 김승현이 고종욱을 맞아 초구를 스트라이크로 잘 잡았다. 2구와 3구는 연속 볼. 이때 김승현이 숨을 헐떡이며 힘들어 하는 모습이 TV 중계화면으로 잡혔다.

4구도 볼, 숨을 헐떡인 상태에서의 5구도 볼이어서 볼넷 출루로 1사 만루 위기를 자초했다. 투수코치가 타임을 걸고 마운드에 올라가서 투수를 진정시켜야 할 상황. 하지만 그대로 김승현에게 맡겼다.

이어 나온 서건창이 흔들리는 김승현을 2타점 우전안타로 두들겨 4-4 동점이 됐다. 승부는 넥센의 7대4 역전승. 결과론이지만 김승현이 고종욱을 4구로 보냈을 때 투수코치가 올라가 조언을 하든지, 아니면 다른 투수로 교체했으면 실점 위기를 넘겼을지 모른다.

투수들이 경기 중 긴장을 하거나 피로가 쌓였을 때 한숨을 쉬거나 심호흡을 하는 경우는 허다하다. 그러나 그 이상을 넘어 숨을 헐떡이면 볼의 컨트롤을 잡을수 없다는 건 초등학교 야구선수도 아는 사실. 김승현의 힘든 투구는 아쉽고 안타까운 장면이었다.

한화 이상군 감독대행(오른쪽)과 정민태 투수코치가 경기 도중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물론 덕아웃의 감독이나 투수코치가 투수의 헐떡이는 모습까지 포착하기는 어렵겠지만, 투수코치는 쌍안경이라도 준비해 가끔 투수의 미세한 얼굴 표정을 잡으면 투수 교체 타이밍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필자는 10개 구단 1,2군 투수코치들의 분발을 촉구하고 싶다. 물론 S, C 코치처럼 훌륭한 투수 조련가도 많지만 전반적으로 KBO리그의 투수코치들이 좀 더 열성적이고 학구적이면 우리 프로야구가 한 단계 더 발전하지 않을까.

가장 비근한 예를 들어보자.

아시아 선수 최다인 메이저리그 124승에 빛나는 박찬호는 한양대 2학년 때인 1993년 동대문구장의 대학리그에서 ‘시속 160km’의 초강속구를 던진바 있다. 한국야구 사상 가장 빠른 볼이다. 다음날 일간스포츠 1면 톱기사로 장식했고 이후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들이 세밀히 지켜봤다.

그러나 박찬호는 컨트롤이 안 좋아 국내 스카우트들은 에이스급으로 여기진 않았다. 반면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들은 무한한 가능성을 내다 봤고, 마침내 LA 다저스에서 1994년초 당시로서는 거금인 계약금 100만 달러를 주고 데려갔다.

다저스는 박찬호의 강속구에 베팅했다. 나쁜 컨트롤은 투구폼을 고치면 교정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결국 박찬호는 2년간 마이너리그에서 왼쪽 다리를 번쩍 들어 올리던 무지막지한 폼을 다듬어 정상급 선발 투수로 거듭났다.

만약, 공주고 출신인 박찬호가 메이저리그로 직행하지 않고 고향팀 한화에 지명됐으면 어찌 됐을까? 이건 단순한 예측일수도 있는데, 공이 빠르다고 첫해 1군에 투입됐다가 컨트롤이 나쁘다는 이유로 2군에 곧장 내려갔을 거고, 아마 2군에서 2년 정도 고생하다 유니폼을 벗지 않았을까?

위에서 삼성 김승현을 예로 들었는데 장명부(재일동포, 2005년 작고)가 만약 삼성 코치였다면 훌륭한 투수들이 여럿 나왔을 지도 모른다. 1983년 30승(통산 시즌 개인 최다승)을 거뒀던 ‘비운의 투수’ 장명부는 1990년초 삼성에서 투수 인스트럭터로 잠시 일했는데, 깜짝 놀랄 투수 코치 역할을 여러번 보여줬다.

그중 하나는, 어떤 신인급 투수가 연습 투구이지만 스트라이크를 던지지 못하자 다가가서 “좀전까지 딸꾹질했지? 그러면 공을 못 던져. 잠시 쉬어~”라고 말하질 않는가. 딸꾹질을 숨기고 투구했던 투수는 장명부의 날카로운 지적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고 한다.

강상수 LG 투수코치가 교체되는 투수와 주먹을 맞부딪치며 격려하고 있다.

지난 10일 롯데전에서 3과 3분의1이닝 동안 1실점으로 호투했던 두산 이영하(20). 그는 선린인터넷고 시절 시속 150km의 강속구를 던질 유망주로 꼽혔으나 2016년 1차 지명을 받고 바로 팔꿈치 수술을 받아 1년간 재활에 땀을 쏟았다.

올해는 192cm의 큰 키를 활용, 묵직한 공을 던지며 후반기 선발급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하지만 투수 코치들이 대형 투수급인 이영하를 좀 더 연마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일단, 주자가 없을 시 셋 포지션이 아닌 와인드 업을 할수 있게 습관을 바꾸면 어떨지. 주자가 있으면 도루를 방지하기 위해 당연히 셋 포지션을 취해야 하지만 주자가 없다면 와인드 업을 해 마음놓고 공을 뿌리게 해야 한다. 그러면 속구 시속이 3km는 늘어나 삼진을 더 잡는 등 위력을 갖출수가 있다.

특히 이영하는 큰 키를 바탕으로 원심력을 활용하면 그가 꿈꾸던 시속 150km는 너끈히 달성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박찬호의 멋진 와인드업을 연상하면 바로 답이 나온다.

이처럼 투수 코치의 임무와 역할, 또 준비사항은 끝이 없다. 훈련 때의 변화구 구사와 투구폼 다듬기, 실전 때의 투수교체 시기 조정 정도는 빙산의 일각일수 있다. 24시간도 모자랄 지경이다. 그러나 집중적으로 연마를 해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던 신인을 ‘특급 투수’로 탄생시켰을 때의 기쁨과 보람은 어디에도 비길수 없다. 각 팀 투수코치들의 더 힘찬 분발을 기대해본다. 야구 칼럼니스트/前 스포츠조선 야구大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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