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는 지난 2007년 두산과의 플레이오프 이후 단 한 차례도 포스트시즌 무대를 밟아 보지 못했다. 이 기간 김인식, 한대화, 김응용 여기에 김성근 감독까지 한 시대를 풍미했던 이름난 감독들이 한화를 거쳐갔지만 성적은 신통치 않았다.

스포츠코리아 제공
2015년 한 때 ‘마리한화’라는 신조어까지 양산해내며, 한화의 구세주로 여겨졌던 김성근 감독마저 지난 5월 결국 시즌 중 중도사퇴라는 파국을 맞이하게 됐다. 이른바 3김(金)시대는 김성근 감독의 사퇴로 씁쓸한 마침표가 찍혔다.

올시즌까지 포스트시즌에 진출하지 못한다면 정확히 10년 째 가을야구를 제 3자로서 바라보게 되는 한화. 여전히 시즌은 90경기 가까이 남아있지만 올시즌도 상황이 결코 낙관적이지만은 않다. 김성근 감독 사퇴 직후인 지난달 24일부터 한화는 5승4패를 기록했지만 여전히 하위권에 머물러있다.

현재는 이상군 감독 대행이 한화의 지휘봉을 임시로 잡고 있지만 한화는 어떻게든 하루 빨리 정식 감독을 선임해 팀에 안정감을 불어넣는 것이 중요해 보인다. 이상군 대행이 대행이란 직함을 떼고 정식 감독으로 승격이 되든, 외부 인사를 영입하든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정식 감독이 공석인 가운데 다시 한 번 기로에 서있는 한화다. 한 번의 선택으로 암흑기를 몇 년간 더 보낼 수도 있고, 아니면 반등의 서막을 열 수도 있기 때문.

장고를 거듭할 한화일텐데, 이쯤에서 한화가 ‘LG의 사례를 참고해 볼 수는 없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LG 역시 한화 만큼이나 기나긴 암흑기를 보냈지만, 최근 들어선 적어도 암흑기에서는 벗어난 모습이다. 물론 LG팬들 입장에선 한국시리즈 우승이 없어 현재 위치가 성에 차지 않을 수도 있다.

LG는 지난 2002년 한국시리즈 준우승 이후, 김성근 감독과의 이별을 결정했다. 이후 LG의 성적은 급격하게 추락했다. 큰 포부를 안고 LG에 부임했던 이광환 감독은 물론 이순철 감독은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한 채 팀을 떠났다.

메이저리그 식 트레이닝 시스템을 모방해 현대 유니콘스의 중흥을 이끌었던 김재박 감독을 신임 감독으로 선임했지만 그 역시 쓰디쓴 실패만을 맛본 채 2009시즌 종료 이후 팀을 떠났다. 2010년부터 출범한 박종훈 감독 체제에서도 큰 성과는 없었다. 그렇게 LG의 암흑기는 길어졌다.

하지만 2012년 김기태 감독(현 KIA 감독)부임 이후, LG는 서서히 달라지기 시작했다. 비록 2012년에는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지만 2013년에는 5,6월 놀라운 승률을 자랑하며 끝내 2위로 정규시즌을 마감했다. 지난 1997년 이후 16년 만에 플레이오프 직행이란 쾌거를 이뤄낸 것.

당시 김기태 감독의 성공 비결은 고참을 상당히 우대했다는 점이다. 2013시즌은 LG의 투·타 베테랑들이 유독 승승장구 했던 때다. 타선에선 이병규(은퇴), 이진영(현 kt), 박용택, 정성훈등이 힘을 냈고 마운드에선 봉중근과 이동현이 건재함을 과시했다.

2군 감독일 때부터 고참들을 살뜰히 챙겨오며 한편으론 리빌딩에 능했던 김 감독은 2군 시절의 경험을 바탕으로 1군 선수단 역시 리빌딩에 나섰다. 지금은 LG의 주축이 된 김용의와 손주인은 물론 선발 투수로 전업에 나선 우규민(현 삼성)이 본격적으로 각광을 받기 시작하던 때도 2013시즌부터였다. 한 마디로 이상적인 야구를 해왔다.

물론 2014시즌 초반 성적 부진을 이유로 자진 사퇴하며 말로는 그리 좋지 못했다. 이 때 LG는 흔들릴 수 있었다. 하지만 바통을 이어받은 양상문 감독은 급작스럽게 합류했음에도 불구하고 기존의 김기태 식 야구를 크게 뒤흔들지 않으면서 자신만의 색채를 서서히 입혀나갔다. 김 감독과 방법은 조금 달랐지만 양 감독 역시 리빌딩이라는 기조만큼은 확고했다.

김기태 전 LG 감독(왼쪽)과 양상문 현 LG 감독. 스포츠코리아 제공
이후 많은 이들이 잘 알고 있듯 양 감독은 2015시즌을 제외한다면 매 시즌 팀을 포스트시즌에 진출시켰다. 한 번 포스트시즌에 나서면 플레이오프 무대까진 올라가는 나름의 성과도 있었다. 리빌딩과 성적을 동시에 잡은 모양새다.

여전히 LG의 최근 성과에 못 미더워하는 팬들도 더러 있지만, 적어도 가을야구를 경험할 수도 없었던 기나긴 암흑기에서 벗어났다는 것만큼은 사실이다. LG의 반등은 선수단과 궁합이 맞는 감독 선임이 얼마만큼 중요한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한화는 지난 2015시즌을 앞두고 당장의 성적을 위해, 강도 높은 훈련량과 변칙적인 마운드 운용으로 대표됐던 김성근 감독 식 야구를 받아들였다. 하지만 김 감독 재임 기간 내내 혹사 논란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한화가 김 감독을 받아들였음에도 성적을 낼 수 없었던 결정적 이유 중 하나는 부상 관리에 실패했다는 점이다.

주전과 비주전간의 기량차가 그 어떤 구단보다 큰 한화는 그 어떤 구단 보다 부상관리에 힘을 쏟아야 했다. 그러나 김 감독은 부상 관리에서 자주 문제점을 노출했다. 그러한 면에서 보자면 김 감독은 선수단과의 궁합이 완벽하게 맞지 않았다. 이유야 어찌됐든 김 감독이 이젠 팀을 떠난 만큼, 한화는 부상 관리에 중점을 둔 채 팀을 꾸려야 한다.

한화 구단에선 내심 구단 프랜차이즈의 감독 승격도 바라는 눈치인 것 같다. 만약 구단의 뜻이 그렇다면 이상군 감독 대행의 내부 승격도 그리 나쁜 옵션은 아니다. 이 대행은 예전부터 선수들을 인격적으로 대했던 것은 물론 경험도 풍부한 인물이다. 적어도 선수단 부상 관리에 있어서는 김 감독 보다 나은 모습을 보일 가능성이 상당하다.

한화가 만약 외부 인사를 신임 감독자리에 앉힐 생각이라면 메이저리그의 이해도가 높은 인물을 고려해보는 것도 방법이다. 미국 야구는 부상 관리에 특화된 시스템을 갖춘 지 이미 오래다. 장기간 메이저리그에서 선수로 활약했던 박찬호 선배의 한화 감독 부임설은 현재로선 가능성이 낮은 시나리오로 알려졌지만 미국식 시스템을 받아들일 의사가 있다면 충분히 고려해봄직 하다.

지난 5월 사퇴한 김성근 감독을 대신해 한화를 이끌고 있는 이상군 한화 감독대행. 스포츠코리아 제공
이만수 전 감독 시절부터 메이저리그 식 야구를 접목시키고자 노력했던 SK가 2017시즌을 앞두고 트레이 힐만 감독을 깜짝 선임한 것처럼 외국인 감독 선임도 방법이다. 다만 시즌 중반에 외국인 감독을 모셔오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부상 선수를 줄이는 것만큼이나 새로운 감독의 당면과제는 한화 선수단의 리빌딩이 될 것이다. 김성근 감독 시절 한화는 당장의 성적을 위해 베테랑 선수들을 FA로 다수 영입했다. 불펜투수인 심수창과 정우람이 대표적인 예. 선수단의 평균 연령이 상당히 높아져 있는 상태인데, 한 시즌 성적을 포기하는 한이 있더라도 어린 선수들을 적극 기용하는 움직임을 보여야 한다.

트레이드 이후 자리를 잡은 최재훈의 사례처럼 향후에도 트레이드에도 활발히 나서야 할 한화다. 다만 이전부터 2군 선수들을 수차례 트레이드로 넘겨준 탓에 상대에게 내 줄 트레이드 카드가 얼마나 남아있을 지는 미지수다.

만약 트레이드를 통해 전력 보강을 해야 한다면 센터라인의 보강에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

리빌딩을 위해선 다가올 FA시장에서도 전략적인 선택이 필요하다. 올시즌을 끝으로 정근우, 이용규와의 FA 계약이 만료 될 텐데 이들과의 재계약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고민해 봐야 한다. 여전히 팀 내에서 두 선수의 존재감은 상당하지만 이들과의 재계약에 쓸 돈을 다른 선수들에게 사용한다는 생각도 아예 배제해선 안 될 것이다.

박명환 스포츠한국 야구 칼럼니스트·해설위원/ 現 야구학교 코치, 2017 WBC JTBC 해설위원

정리=이재현 기자

저작권자 © 스포츠한국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