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한국 대전=박대웅 기자] 약 2년 6개월 전 한화는 통산 68승 18세이브 24홀드의 투수를 FA로 영입했다. 그 대가로 내준 선수는 통산 2승3패에 불과한 프로 3년 차 투수였다.

두 선수는 소위 ‘클래스’가 달랐다. 하지만 3년 뒤 그 평가는 거짓말처럼 뒤바뀌고 말았다. 한화 송은범과 KIA 임기영의 운명이 그렇게 엇갈렸다.

스포츠코리아 제공
▶김성근 감독이 택한 첫 시즌 FA 선물

지난 2014년 10월 한화는 김성근 감독을 제10대 사령탑에 앉힌 뒤 최하위 탈출 및 가을 야구 진출이라는 과제를 이루기 위해 대대적 투자를 감행했다.

이미 김응용 감독 시절 FA로 정근우-이용규, 국가대표 테이블 세터를 영입했지만 마운드 전력이 너무나도 약했기 때문에 이번에는 투수 보강에 눈을 돌렸다.

김 감독 부임 후 2개월 뒤 한화는 FA 시장에 나온 선수들 가운데 배영수, 권혁, 송은범을 나란히 잡았다. 이들이 걸어온 커리어만 놓고 보면 분명 기대를 걸어볼만한 전력 보강이었다.

하지만 당시 한화의 결정에 아쉬움을 드러낸 목소리도 많았던 것이 사실이다. 3명의 선수 모두 과거에 이룬 업적을 떠나 하락세가 뚜렷한 선수들이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권혁은 한화의 불꽃 투혼 상징으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끊임없이 혹사 논란의 중심에 서 있었고, 결국 지난해 10월 좌측 팔꿈치 뼛조각 수술을 받은데 이어 시범경기에서는 허리 통증 여파로 4월말이 돼서야 팀에 복귀했다. 지난 두 시즌만큼의 위력이 아직까지는 나타나지 않은 상황.

배영수의 경우 한화로 팀을 옮긴 첫 해 4승11패 평균자책점 7.04에 그쳤고, 지난해는 팔꿈치 뼛조각 수술로 인해 한 시즌을 통으로 쉬었다. 다만 올시즌 가장 최근 등판 난조를 제외하면 부활의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점이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다.

스포츠코리아 제공
▶사용 설명서는 없었다

문제는 송은범이다. 송은범은 SK 시절 김성근 감독과 한솥밥을 먹었던 5시즌 동안 42승25패 10홀드 9세이브 평균자책점 3.10의 정상급 활약을 선보였지만 KIA에서의 두 시즌 동안에는 총 5승15패에 머물렀고, 2년 연속 평균자책점 7점대에 머물러 있었다. 4년 34억원이라는 당시만 하더라도 결코 적지 않은 금액에 영입을 했기 때문에 한화 팬들 역시 많은 우려를 드러냈다. 그럼에도 한화가 이같은 영입을 추진한 것은 김성근 감독과의 재회에 대한 기대 때문이었다.

사실 김성근 감독은 지난해 기자와의 통화에서 한화 부임 첫 시즌 FA로 장원준, 두 번째 시즌 윤성환 등 확실한 선발 자원 영입을 구단에 요청한 바 있다고 털어놓은 적이 있다. 엄밀히 배영수, 송은범, 권혁이 첫 해 영입 제1순위는 아니었다는 의미다. 그러나 구단에서 난색을 드러내면서 김 감독 역시 방향을 틀게 됐다고 밝혔다.

하지만 바뀐 리스트 역시 김 감독의 입김이 강하게 들어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권혁, 배영수, 송은범의 입단 기자회견 당시 “식구가 3명이나 늘었다는 자체만으로도 부자가 된 기분이다”면서 송은범에 대해서는 선발로 들어올 경우 활용도가 높을 것이라는 자신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송은범은 3년 동안 철저히 실망만을 남겼고, 그의 전성기를 이끌어냈던 김성근 감독도 이번에는 부활을 이뤄내는데 실패했다.

지난 12일 김성근 감독은 “이제는 팬들이 송은범과 송주호를 두고 내 아들이라고 부르지 않더라. (과거에는) 양자라고 했었다”는 농담을 던지며 그동안 송은범에게 수많은 기회를 줬던 부분에 대해 인정했다. 하지만 기회와 관리 등 전폭적으로 송은범을 밀어줬음에도 ‘사용 설명서’를 발견해내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한화로 팀을 옮긴 이후 송은범은 4승23패 5세이브 2홀드 평균자책점 6.57의 처참한 성적을 남겼다. 지난해 팀 내 가장 많은 이닝을 책임졌다는 것 외에는 한화에서 이룬 것을 찾아보기 어렵다. 하지만 지난해 평균자책점은 6.42에 머물렀기 때문에 많은 이닝을 던진 것이 팀에 진정으로 도움이 됐는지는 의문이다.

스포츠코리아 제공
▶38번 떠나고, 38번에 당하고

무엇보다 송은범 영입을 위해 보상 선수로 내준 임기영이 올시즌 KIA에서 펄펄 날고 있기 때문에 한화 입장에서는 더욱 가슴이 시릴 수밖에 없다.

군문제로 인해 지난 두 시즌 1군 무대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임기영이지만 그는 올시즌 단 10경기 활약만으로 송은범을 이미 추월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벌써 6승(2패)째를 챙겨 송은범의 4승을 넘어섰으며, 올시즌 리그 전체에서 다승 공동 3위에 올라있다. 평균자책점 1.82 역시 리그 3위에 해당되는 성적. 또한 송은범이 47번의 선발 등판에서 단 6번의 퀄리티스타트를 기록하는데 그쳤다면 임기영은 10경기에서 완봉승을 포함해 7번의 퀄리티스타트를 이뤄냈다.

특히 한화는 지난 24일 대전 KIA전에서 임기영의 호투에 농락을 당했다. 7이닝 동안 단 5안타를 때려내는데 그쳤고, 점수는 오직 양성우의 솔로 홈런으로 만든 것이 전부였다. 임기영이 마운드에서 꾸벅 인사를 했던 김태균은 9회 마지막 타석에서 홍건희를 상대로 77경기 연속 출루 기록을 간신히 달성했지만 임기영과의 3차례 승부에서는 모두 범타로 물러나며 자칫 기록이 끊길 위기에 놓이기도 했다.

경기 후 임기영은 “친정팀과 꼭 붙어보고 싶었는데 재미있었다. 시범경기 때와 달리 많은 선배들이 엔트리에 다 나온 것을 보고 신기하면서도 재미있었다”는 소감을 밝혔지만 한화 팬들의 마음은 찢어질 수밖에 없었다. 김성근 감독이 지휘봉을 내려놓은 바로 다음날 한화는 김 감독과 등번호(38번)가 같은 임기영에게 철저히 틀어 막히면서 6연패 늪에 빠졌다.

과거 임기영이 특급 유망주로 평가받았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김응용 감독이 스프링캠프부터 주목했던 투수였고, 컨트롤이 점차 좋아지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기 때문에 1993년생의 나이를 감안하면 미래가 기대되는 선수였던 것이 사실이다.

물론 20인 보호 명단에 임기영을 포함시키기엔 당시 기량과 잠재력을 모두 감안해도 부족함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모든 것이 결과론일 뿐이며, 사실 임기영이 올시즌과 같은 맹활약을 펼치리라 예상한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화 팬들이 아쉬움의 목소리를 내는 이유가 있다. 하락세가 뚜렷한 송은범 영입이 큰 모험이나 다름없어 차라리 긁지 않은 유망주 복권을 쥐고 있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는 생각을 3년 전에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스포츠코리아 제공

▶엇갈린 운명, 더 나올 수 있다

송은범과 임기영 뿐 아니라 한화는 김성근 감독의 두 번째 시즌까지 외부 FA 영입에 공을 들이면서 많은 유망주들을 타 구단에 내줬다. 트레이드를 통해서도 마찬가지로 즉시 전력감을 주로 수집하는 대신 팀의 미래를 넘겨주곤 했다.

임기영만큼이나 강렬한 단기 임팩트를 뿜어낸 선수는 없지만 노수광도 지난해 KIA에서 좋은 활약을 펼친 바 있다. 또한 올시즌 구단 주도로 트레이드가 돼 팀을 떠난 신성현을 제외하더라도 오준혁, 박한길, 김민수, 조영우 등 김성근 감독 체제에서 팀을 떠난 1990년대생들의 성장 가능성 역시 무궁무진하다.

물론 한화 역시 반등에 실패한 송은범과 달리 외부 FA 영입 성공 사례들이 있다. 하지만 그만큼 거액의 돈을 투자해야만 했고, 평균 연령이 부쩍 높아진 것도 부정하기는 어렵다.

현재에 모든 초점을 맞춘 김성근 감독의 책임이 크지만 그는 이제 팀을 떠났다. 또한 감독 계약 기간 내에 미래의 방침을 전면 수정하는 등 갈팡질팡 행보를 보인 한화 역시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지난 시즌까지 김 감독에게 전권을 쥐어준 선택을 내린 것도 결국은 구단이기 때문이다.

한화는 지난해 11월 뒤늦게 프런트 혁신을 통한 구단 전문성 강화 및 문화 재정립 작업에 착수했다. 하지만 우수선수 육성은 상당히 장기적인 시간이 걸리는 일이다. 성과를 이뤄내기까지 겪을 진통은 이제 온전히 한화 구단이 감당해야할 몫이 됐다.

저작권자 © 스포츠한국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