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한국 이재현 기자]내야 전 포지션이 가능한 유틸리티 내야수로 수 년 간 활약했음에도 확고한 주전 내야수로는 평가받지 못했던 최주환(29·두산). 2017시즌 역시 주전 등극은 힘겨워 보인다. 그러나 최주환의 모습은 그 어느 시즌보다도 편안해 보였다.

두산 최주환. 스포츠코리아 제공
지난 2006시즌을 시작으로 두산에서만 9시즌을 보냈던 최주환은 어느새 중고참 선수로 성장했다. 그는 2루수와 3루수를 두루 책임지는 것은 물론 유격수까지도 가능한 다재다능한 선수로 평가 받는다. 다만 아쉬운 점은 단 한 시즌도 진정한 주전으로 거듭난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그가 100경기 이상 출전한 시즌은 지난 2015년(100경기)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하지만 시즌을 앞두고 진행 중인 시범경기에서 최주환의 모습은 분명 심상치 않다. 물론 긍정적인 쪽이다. 거의 매일 같이 불방망이를 과시하고 있는 그다. 시범경기 8경기에서 모두 2루수로 출전해 타율 3할4푼6리(24타수 9안타), 1홈런, 5타점을 기록했다. 특히 지난 21일 인천 SK전에서는 3안타 경기에도 성공한 바 있다. 이미 두산의 주전 2루수는 오재원으로 굳어진 상황이나 단순 성적만 놓고 보면 당장 최주환이 주전으로 올라선다 해도 이질감이 없을 정도.

연일 최고의 활약을 펼치고 있었기에 최근 최주환의 표정은 무척 밝을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22일 인천 SK전을 준비하던 그는 이상할 만큼 무덤덤했다. 최근의 활약이 한편으로는 두렵기도 하다는 것이 그의 주장.

최주환은 “솔직히 이야기하자면 시범경기 기간 동안 공을 잘 치고 싶은 마음 반, 잘 못 쳤으면 하는 마음 반이 공존한다”라고 입을 뗐다.

한편으로는 타석에서 안타를 못 쳤으면 한다는 최주환의 발언은 선뜻 이해하기 힘든 주장. 하지만 그는 이해를 돕기 위해 추가적인 설명을 곁들였다. 그는 “당연히 매번 잘 치고 싶다. 하지만 타격에는 페이스가 있다. 좋을 때가 있으면 나쁠 때도 있는 법. 따라서 시범경기에 타격 페이스가 급격하게 올라갔다 막상 정규시즌 개막과 동시에 하락세를 겪을까 무척 두렵다”라고

실제로 지난 2016시즌이 그랬다. 그는 지난 2016년 15차례의 시범경기에서 타율 3할7푼8리(45타수 17안타) 5득점, 5타점을 기록했다. 시범경기에서는 뜨거운 방망이를 자랑했지만 그의 방망이는 얼마 안가 곧 식어버렸다. 같은해 4월 최주환의 타율은 2할3푼1리(39타수 9안타)에 그쳤다. 제한된 출전 기회도 낮은 타율에 한 몫을 했지만 선발로 나섰을 당시에도 타격감은 썩 좋지 못했다. 결국 그는 또다시 백업 내야수로 시즌을 마쳤다. 그가 시범경기에서의 맹타에 결코 미소를 짓지 않았던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최주환은 애초에 주전 등극을 시즌 목표로 삼지 않겠다고 단언했다. 다만 자신이 비시즌 기간 동안 집중적으로 훈련해왔던 순발력 강화 훈련이 시즌 중 빛을 보기를 희망했다. 그는 “지난 시즌이 끝난 뒤 내가 기술적인 부분이 많이 부족하다는 것을 느꼈다. 특히 수비를 할 때의 순발력을 발전시키고자 여러 방법을 찾아봤다. 이런 탓에 비시즌 기간 동안 태권도를 전공한 바 있는 트레이너를 찾아가 순발력 증진에 도움이 될 만한 체력 훈련을 받았다. 실제로 훈련을 받고 나니 수비 시 미세한 움직임이 달라졌다. 이전에 비한다면 확실히 달라졌던 것. 땀을 흘린 만큼 결과가 나왔으면 좋겠다. 그 뿐이다”라고 밝혔다.

최주환도 어느새 만 29세다. 게다가 2월생인 탓에 그의 동기들과 친구들은 모두 만 30세의 선수들이다. 이제는 승부를 걸어야할 연령인 셈. 목표가 너무 소박한 것은 아닌지를 묻자 그는 “아직 저는 젊다”며 옅은 미소를 띄었다.

두산 최주환. 스포츠코리아 제공
한 차례 웃어 보인 최주환은 기다렸다는 듯이 말을 이어갔다. 그는 “아쉬운 것은 전혀 없다. 지난 수 년 간 주전자리를 가져가고자 노력을 기울여 왔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누구도 탓 할 수는 없다. 내가 못해서 주전 자리를 꿰차지 못했을 뿐이다”라고 답했다.

하루 빨리 주전으로 올라서고자 했던 마음이 오히려 자신에게 독이 됐다고 설명한 최주환이다. 그는 “과거에는 주전이 되고자 조급했던 것도 사실이다. 이는 나의 기본 성격이 무척 급했던 탓이다. 정말 이상하게도 조급해하면 잘 풀리지 않았다. 이제는 흘러가는 강물에 나의 몸을 던져 놓듯이 무덤덤하게 마음을 내려놓으려고 한다”라고 답했다.

이어 최주환은 팀 내 주전 포수이자 입단 동기인 양의지를 가리키며 말을 이어나갔다. 그는 “어떻게 보면 (양)의지가 참 부럽다. 그는 어떠한 상황이 닥쳐도 무덤덤한 표정으로 묵묵히 자신이 해야 할 일만 열심히 하는 선수다. 내·외부적 요인에 전혀 흔들림 없이 조급해 하지 않고 흘러가는 물에 자신을 맡기는 사람이 바로 양의지다. 어느 때는 그의 성격이 부럽기 까지 하다”라고 덧붙였다.

물론 최주환은 주전 경쟁에서 마음을 비웠다고 하지만 프로 스포츠의 세계에서 영원한 주전은 없다. 야구 역시 마찬가지. 주전 경쟁이라는 것은 언제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2015시즌 허경민이 최주환은 물론 외국인 타자 루츠와 로메로까지 제치고 주전 3루수로 등극한 일 역시 아무도 예상치 못한 반전이었다.

그 누구보다도 백업의 설움을 잘 이해하는 최주환 역시 이 같은 사실들을 경험을 통해 알고 있었다. 다만 마음을 비우고 언젠가 찾아올 기회를 위해 기다리고 또 기다리겠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내가 늘 하던 대로만 페이스를 유지한다면 어느 순간이라도 상황이 급변할 수도 있는 것이 야구 인 것 같아요. 흐르는 강물에 몸을 맡기다 보면 나의 자유의지로 원하는 곳으로 다다를 수는 없겠지만 그 끝에는 분명 저에게도 좋은 일이 있을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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