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야구 대표팀에게는 큰 상처로 남았던 2017 WBC(월드베이스볼클래식)이 어느덧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한국은 조기에 탈락했지만, 이웃나라 일본을 비롯한 야구 강국들은 승승장구 중이다.

1라운드 탈락(1승2패)으로 마무리 된 이번 WBC를 통해 한국 야구는 여러 문제점을 고스란히 노출했는데, 그 중 가장 뜨거운 감자는 역시 대형 투수의 부재였다.

2017 WBC 한국 대표팀의 오승환. 스포츠코리아 제공
이번 WBC 한국 대표팀을 이끈 김인식 감독은 여러 매체들과의 인터뷰에서 “지난 2006년 김광현, 류현진 이후 눈에 띄는 대형 투수가 없다”라고 아쉬움을 토로한 바 있다. 지난 10여년간 대형 투수가 될 만한 재목이 한국에 없었다는 취지의 발언으로 느껴진다.

하지만 정말 한국 야구계에는 그동안 대형 투수가 될 만한 재목이 없었던 것일까. 나는 이렇다 할 자원이 없었다는 취지의 의견들에 동의하기가 어렵다. 사실 알고 보면 자원들은 많았다. 오히려 이들을 제대로 키워내지 못했던 잘 못된 육성법이 문제였다.

이제는 한국도 지도자 개인의 영광 혹은 학교의 우승이 아닌 오직 선수의 장래만을 위한 야구 교육이 필요하다. 여전히 한국 아마야구는 현실에 얽매여 성적 지상주의에 물들어 있다.

당장 성적을 내는 데 급급한 탓에 ‘결과만 좋으면 만사 OK’라는 분위기가 만연해 있는 것이 한국 엘리트 야구의 현실이다. 이런 탓에 프로에 입성해도 기본기가 부족한 선수들이 태반이다. 토대가 약한 데, 어떻게 대형 투수의 등장만을 바라볼 수 있겠는가.

게다가 많은 유소년 지도자들은 중·고교 엘리트 선수들이 야구 선수로서의 바람직한 습관을 가질 수 있도록 이끌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예를 들어 성장기에 있는 엘리트 선수들은 투구 수를 제한하거나 운동·훈련 시간의 제한이 필요하다. 선수로서의 몸이 만들어지고 있는 과정이기 때문. 하지만 현실은 녹록치 못하다. 당장 결과를 내기 위해, 혹독한 훈련이 이어지고 있다. 결코 선수들에게 좋을 리 만무하다.

예를 들어 시속 150km가까이 강속구를 던지는 정통파 투수들은 강한 어깨를 타고 났지만, 빠른 구속만큼이나 부상의 위험도가 기교파 투수들에 비해 상당히 높은 선수들이다. 이러한 선수가 10년 이상 일정한 구속을 유지하기 위해선 투구 수 관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하지만 팀의 우승과 명문 학교 진학이라는 명목 아래, 선수들은 매번 혹사에 쉽게 노출 돼 있다.

여기서 한 가지 강조하고 싶은 것은 징크스와 좋은 습관을 착각해선 안 된다는 점이다. 간혹 일부 선수들은 징크스와 좋은 습관, 이른바 루틴의 차이점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경우가 더러 있는데, 징크스는 검증되지 않은 나만의 행동으로서 일종의 강박증으로 생각하면 된다. 하지만 루틴이라는 것은 근거 있는 습관이라 할 수 있다. 이를 테면 매일 매일의 시간표를 설정해 놓고 그대로 행동한다면 좋은 습관인 셈이다. 매일 아침 일정한 기상 시각과 수면 시간을 정해두는 것은 물론 규칙적인 스트레칭 시간대 설정이 바로 좋은 루틴의 예가 될 것이다.

중·고교 엘리트 야구에도 보직의 전문화가 필요해 보이지만 이 역시 이뤄지지 않고 있다. 몇몇 눈에 띄는 일부 투수들을 경기 마다 보직을 돌려가며, 각종 대회를 치르고 있는 것이 현실. 어린 시절부터 체계화되고 일관된 교육을 받는다면 그만큼 성공확률도 높아지기 마련. 이제는 육성 체계의 근본부터 바뀔 필요가 있다. 류현진 같은 준수한 선발 투수가 있다면, 오승환처럼 최고의 마무리 투수도 필요한 법이다.

대다수의 중·고교 야구 선수들이 이른바 수도권 야구 명문고에 편중돼 있는 현상 역시 문제다. 70~80여명의 하나의 고등학교에 몰려있는 경우도 흔치 않게 볼 수 있는데, 선수단 숫자에 비해 이들을 지도할 코치들은 턱 없이 적다. 대형 선수로 자라날 재목들이 제대로 된 교육도 받지 못한 채 사장될 가능성도 적지 않은 것.

이제는 진학의 흐름도 달라져야 한다. 학교의 이름을 보고 진학할 것이 아니라 좋은 코치가 있는 학교로 진학하려는 움직임도 필요하다.

지난 2006년 혜성 같이 등장해 한국을 대표하는 대형투수로 성장했던 김광현과 류현진. 스포츠코리아 제공
여기에 체계적 트레이닝 시스템의 부재도, 대형 투수 부재라는 고질적 문제점을 낳은 가장 큰 원인 중 하나다.

쉽게 말하면 트레이닝 시스템의 기조가 존재하지 않는다. 미국의 근력 위주 트레이닝 시스템, 밸런스와 유연성 강화에 중점을 두는 일본 야구처럼 기본 트레이닝 기조가 잡혀있지 않다.

하지만 무조건 미국의 예 혹은 일본의 예를 맹목적으로 따라갈 필요는 없다. 한국 선수들은 대체로 체격과 근력 면에서 미국과 일본 선수들의 중간 지점에 서 있기 때문. 따라서 선수의 투구 특성을 파악해 알맞은 훈련법을 소개한다면 선수들의 잠재력을 훨씬 더 많이 끌어 올릴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예를 들어 체격이 여느 미국 선수들 못지않은 선수가 있다면, 굳이 무리하게 하체를 이용하는 투구법을 가르칠 필요가 없는 것이다. 혼란만 가중시킬 뿐이다. 이러한 선수에게는 상체를 적극 활용하는 투구, 즉 미국식 근력 위주 트레이닝 시스템을 적극 도입해야 한다. 반대의 경우에는 일본식 밸런스·유연성 강화 훈련법을 소개하면 그만이다.

문제는 일부 지도자들은 선수들의 특성에 맞추는 지도법을 개발하는 것이 아닌 자신이 현역 시절 해왔던 대로 선수들이 따라가길 바라고 있다는 점이다. 심지어 특정 훈련법을 강요까지 하는 경우도 더러 있는데 이러한 주입식 교육은 선수들의 창의력 부재를 낳는 가장 큰 문제점으로 작용한다.

창의성이 결여된 채, 프로구단에 입단한 들 무슨 소용이겠는가. 프로 입단 이후에는 선수 스스로 자신의 발전 방향을 찾아야 한다. 코칭스태프는 어디까지나 보조적인 역할만을 담당 할 뿐이다. 주입식 교육에 익숙해져 있는 선수는 당장 자신이 개인의 발전을 위해 뭘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한다. 결국 아마추어 시절에 배웠던 것으로 승부를 내려하는 데, 이래선 ‘우물 안 개구리’만 될 뿐이다.

실제로 일부 KBO리그 투수들은 기술 개발에 다소 소극적인 면이 있다. 특히 구종 개발은 생존은 물론 발전의 핵심인데, 이를 등한시 하고 있는 것. 누군가에게 물어볼 생각조차 못하고 있다. 경직된 분위기에서 성장해왔기에 궁금해 하지도 움직이지도 않는다.

이번 WBC에서 여타 야구 강국의 투수들은 벌써 직구만 해도 3가지(투심패스트볼, 포심패스트볼, 커터)를 구사할 수 있었지만, 한국의 투수들은 그렇지 못했다. KBO리그가 여타 야구 강국들에 비해 기술적으로 뒤쳐져 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였다.

이처럼 틀에 가둔 채 자신의 발 앞만 바라보게 하는 주입식 교육은 멀리 내다본다면 선수 본인은 물론 한국 야구 전체에 큰 마이너스가 아닐 수 없다.

2017년 WBC에서의 실패는 한국 야구의 역사에서 상당히 뼈아픈 순간으로 기록될 것이다. 하지만 한 번 부러진 뼈가 회복돼 다시 붙을 때는 훨씬 단단해 지는 것처럼, 한국 야구 역시 WBC의 실패로 더욱 단단해질 기회를 잡았다고 생각해 볼 수는 없을까. 4년 뒤에도 대형 투수가 없다고 불평만 늘어놓을 것인가. 재목은 여전히 많다. 이를 제대로 사용하지 못했던 '목수' 야구 선배들이 문제였다. 육성법의 근본적 개혁이 절실한 한국야구다.

박명환 스포츠한국 야구 칼럼니스트·해설위원/ 現 야구학교 코치, 2017 WBC JTBC 해설위원

박명환 야구 학교 코치, 2017 WBC JTBC 해설위원. 사진=이혜영 기자 lhy@hankook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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