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인의 직격 야구] 세대교체 등 WBC가 남긴 교훈들

‘대통령 탄핵 후폭풍’에 2017WBC(월드베이스볼클래식) 패배는 수그러들었지만 다음 대회에 대비한 문제점과 발전책을 몇가지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공수신퇴(功遂身退) 못한 김인식 감독; 2,700여년전 노자(老子)가 말했다. ‘공수신퇴 천지도(功遂身退 天之道)’라고. 공을 세우면 몸은 물러나는 것이 하늘의 뜻이라는 말이다.

결과론이지만, 2년전 프리미어리그 12에서 우승한 뒤 김인식 감독이 은퇴했다면 그는 ‘야구 영웅’으로 영원히 추앙받았을 것이다.

2002년 아시안게임(부산)에서 6전승으로 우승하며 명장 반열에 올라선 김인식 감독은 2006년 제1회 WBC에서 미국, 일본을 잇따라 격파하며 4강에 올라 국민들을 열광시켰다. 2009년 WBC 준우승, 2015 프리미어리그 우승을 따내 ‘국민감독’의 영예를 안았다. 결과론일수도 있지만 김 감독의 지휘는 여기에서 멈춰야 했다. 정상에 있을 때 갈채를 받으며 떠났어야 했다.

그러면 왜 2017 WBC 사령탑을 맡았을까? 사실상 임명권자인 KBO(한국야구위원회) 구본능 총재의 무한 신뢰가 뒷받침됐다. 거기에다 김 감독 개인의 현역 복귀 욕심이 더해졌다(마땅한 후임도 없었지만).

김인식 대표팀 감독이 선동열, 이순철 코치와 함께 근심어린 표정을 지으며 대만전을 지켜보고 있다.

김 감독은 다른 야구인들과 마찬가지로 대회 열리기 전 WBC 1라운드에서의 졸전은 전혀 예상을 못했고, 2라운드에서 일본과 잘 싸운다면 이를 바탕으로 2009년 이후(한화) 8년만의 감독직 복귀를 노렸다는 게 지인들의 전언이다.

5년 선배인 김응용, 김성근이 70대 초반에 현역 복귀한 것을 보며(실패를 했지만) 자신감을 가진 건 어찌 보면 당연하다고 봐진다.

3년 계약이면 약 20억(계약금과 연봉)의 거금이 손에 쥐어진다. 거기에다 감독은 야구단에서는 ‘황제’ 아닌가. 한참이나 제자인 40대 중반 ‘애송이 감독’들과의 승부에서는, 그의 경륜과 지략만으로도 5할 승률은 충분히 가능하다고 여겼을 것이다.

하지만 2005년 뇌경색 후유증으로 판단력이 크게 떨어졌다는 것을 본인이 느끼지 못했다. 사실상 야구 현장을 떠나는 그를 신랄하게 비판하는 것은 옳지 않아 적당한 선에서 그친다. 하지만 다음 대회 대비를 위해 잘못된 사례를 간략히 짚어보겠다.

네덜란드와의 2차전 선발로 사이드암스로인 우규민을 낸 건 큰 패착이었다. 우규민이 중요한 2차전 선발로 낙점된 건, 떨어지는 체인지업이 메이저리거들이 대부분인 네덜란드 선수들에게 먹힌다고 봤기 때문이다.

크나큰 오산이었다. 떨어지는 체인지업이라도 시속 145km의 빠른 볼이라면 제 아무리 메이저리거라도 헛스윙을 하겠지만 130~133km의 ‘오줌볼(야구인들의 느린볼에 대한 속된 표현)’이라면 고교야구 선수도 안타를 만들어 낼수 있다.

설사 투수코치가 건의를 했더라도, 3차전 선발 예정인 양현종을 애초부터 앞당겨 등판시켰어야 했다. 결과론이 아니라 너무나 어이없는 판단이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양현종이 네덜란드 타자들을 못 막았을수도 있지만, 구위가 좋은 투수를 일찍 등판시키는 것은 웬만한 팬들도 아는 상식).

2013년 WBC 이후 FA(자유계약선수) 몸값이 최고 150억원으로 급등해 특급 선수들이 몸을 사릴 가능성, 올해부터 규정상 1월도 비훈련기간으로 바뀌어 대표선수들의 사전 준비가 소홀할 우려 등을 간과한 것도 감독의 불찰이다.

2라운드에 진출하지 못한 책임을 전적으로 김인식 감독에게 덮어 씌워서는 안되지만, 연로하고 컨디션이 안 좋은 감독에게 과거 명성만 믿고 너무 집착한 것은 야구계의 오판이다.

*시급한 세대교체; 김인식 감독이 언급했듯이 이제 50대 사령탑으로 세대교체가 되야 한다는 게 야구계의 중론이다. 하지만 50대 감독들이 김성근, 김인식 감독만큼 야구에 대한 열정이 없고 연구와 노력을 안 한다는 게 문제다. 지휘 능력을 믿을수 없으니 맡기지 못하는 것이다.

감독직을 마치고는 편안한 경기운영위원 자리나 엿보고, 방송 해설이나 하고, 책임감이 크게 없는 대표팀 코치나 노리는 젊지도 늙지도 않은 50대 감독 출신들이 있는 한 한국프로야구의 앞날은 결코 밝지 않다.

50대인 이순철, 선동열, 류중일은 물론이고 60대 초반의 김용희 등 감독 경험이 풍부한 이들이 능력을 갖춰 좀 더 적극적으로 국가대표 감독직에 도전하기를 기대해본다(2대회 연속 1라운드 탈락을 야구인이면 누구든 극심한 수치심과 모멸감으로 받아 들여야 한다).

대학교수와 50대 감독들은 유사한 점이 있다. 최근 모 외국인 교수는 “한국 대학교수들이 수많은 논문을 써내고 있지만 그 대부분은 평범하거나 표절의 냄새가 나거나 여러 가지를 모아놓은 백과사전같은 수준일 뿐 새로운 석학들이 보이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한국 대학교수’를 ‘50대 감독’으로 바꿔 놓으면 의미가 와닿는다.

50대 감독뿐 아니다. 각팀 프런트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팀내 코치중에 감독감이 거의 보이질 않는다고 한다. 야구인들이 대오각성해야 할 시점이다. 24시간 야구를 생각하는 김성근감독을 10분의1이라도 닮아야 한다.

한국 대표팀선수들이 경기가 끝난 뒤 관중석을 향해 인사하고 있다.

*전임(專任)감독제 대두; 올해부터 2021년까지 해마다 굵직한 국제대회가 열린다. 오는 11월의 아시아 프로야구 챔피언십, 내년 자카르타 아시안게임, 2019 프리미어리그 12, 2020 도쿄올림픽, 2021 WBC에 대비해 전임감독제를 실시하자는 여론이 일고 있다.

일본이 이미 성과를 거두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은 2013년 유명 감독이 맡아오던 국제대회 사령탑을, 과감하게 코치 경력이 없는 42세의 ‘방송 해설위원’ 고쿠보 히로키로 선임했다.

그는 2015 프리미어리그 12에서 한국에 져 준우승에 머물렀지만, 이번 WBC에서 3전승으로 가볍게 2라운드에 진출, 일본 야구팬들의 기대를 한껏 모으고 있다.

전임 감독의 자격, 기간, 대우 등에 대해 상세히 언급하지 않겠지만 선출방법은 아이디어를 내보겠다. 이제까지 국제대회 감독은 KBO 기술위원회에서 위원들의 뜻을 모아 뽑았지만 앞으로는 경쟁 방식이 바람직하다.

먼저 공모를 해서 후보를 선정한 뒤 프리젠테이션을 통해 후보자들의 자질과 능력을 검증하는 것이다. 위원들의 견해에 따른 선출은 공정하지도 객관적이지도 않다(이번처럼 기술위원장인 김인식감독을 선임한 것은 KBO 총재의 입김이 좌우한 게 아닐까).

야구계 선후배들이 적당하게 감독, 코치직을 나눠 가진거나 진배없다. 뭐든지 밀실에서 이뤄지는 건 잡음이 나고 성과가 좋지 않다. 대표팀 코치 선임을 감독에게 일임하더라도 실력위주로 뽑아야 한다.

*WBC 대표 선발; 2021년 WBC 대표선수 선발에 관해 너무 이른 감이 있지만 건의를 해본다. FA 몸값이 80억원 이상 달하는 스타 플레이어들에게 무조건 애국심을 강요해서는 안된다.

개인별로 일찍 시즌을 시작하면 페넌트레이스 도중 부진하거나 부상을 당할 우려가 많은 만큼, 유명 선수들은 WBC 대회중 몸을 사릴 수밖에 없다. 메이저리그의 거액 선수들은 거의 다 미국 대표 차출을 꺼려 하고 또 팀에서도 가능한 출전을 금지시키고 있는 게 이를 잘 말해주고 있다.

그런 만큼 슈퍼 스타급과 ‘유망주+신인급’을 절반씩 뽑는 게 효과적이지 않을까? 유망주나 신인급들은 이번 이스라엘 대표선수들처럼, 자신의 몸값을 올리기 위해 열정과 투지로 경기에 임할 것이기 때문이다.

몇 년전 프로농구 kt 소닉붐은 1,2쿼터에서 상대에게 23점이나 졌다. 그러자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에 전창진 감독은 주전을 불러 들이고 모두 2진을 투입했다.

출전 기회가 적었던 2진들은 “이때가 내 실력을 발휘할 찬스!”라며 물불을 가리지 않고 뛴 결과 23점을 만회하고 기적같은 대역전승을 거둔바 있다. 2021 WBC때는 일찌감치 12월말에 선수를 선발해 이들이 일찍 컨디션을 끌어 올리게 하면 의외의 성과가 날수도 있다.

더구나 2021대회는 일본이나 대만에서 원정으로 1라운드가 치러질 가능성이 많으므로 힘과 투지, 자신감에 넘치는 신진들이 노장들보다 더 마음껏 기량을 발휘할 수 있지 않을까? 과감한 도루 시도나 날쌘 베이스러닝으로 득점력을 높일 게 틀림없다. 야구 칼럼니스트/前 스포츠조선 야구大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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