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하나의 국제대회 참사가 눈앞에 다가왔다. 2017 WBC(월드베이스볼클래식) 한국 대표팀은 지난 7일 오후 고척 스카이돔에서 열린 네덜란드와의 2017 WBC A조 2차전에서 0-5로 완패했다. 이로써 이스라엘전(1-2패)에 이어 2연패에 빠진 대표팀은 2라운드 진출이 사실상 어려워졌다.

2017 WBC(월드베이스볼클래식) 대표팀 선수단. 스포츠코리아 제공
오는 8일 오후로 예정된 네덜란드(1승)와 대만(1패)과의 경기에서 네덜란드가 승리를 거두는 즉시, 대표팀의 실낱같은 2라운드 진출 희망은 사라진다.

투·타 모두 아쉬움이 남는 경기였지만, 타선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날 대표팀은 하위타선(박석민-김하성-김태군)을 전면 개편했다. 기존 주축 선수인 김재호와 양의지의 부상으로 인해 불가피한 측면이 없잖아 있지만, 오히려 개편이 필요했던 라인은 중심타선이라 생각한다.

김태균과 이대호는 이날 경기에서도 나란히 3,4번 타자로 선발 출전했지만 도합 8타수 1안타에 그쳤다. 냉정히 말해 타격감이 기대 이하였다. 오히려 7번 타자였던 박석민과 이날 9회 대타로 나선 최형우가 3,4번을 구성했다면 어땠을까. 여기에 이날 8번 타자로 나섰지만 힘이 좋은 김하성의 타순도 7번으로 올렸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도 있다.

김인식 감독의 지도력은 이른바 ‘믿음의 야구’로 정의되곤 한다. 1,2회 WBC는 물론 프리미어 12까지 지금까지의 결과가 무척 좋았기에 그는 덕장으로서 명성을 쌓아왔다. 하지만 ‘믿음의 야구’는 한 치만 벗어나도 방관 혹은 방만으로 치부될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이번 WBC가 바로 ‘믿음의 야구’가 크게 휘청인 대회였다.

단기전이라는 특성에 맞춘 선수 운용의 묘가 부족했던 것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물론 김 감독 나름대로 최적의 선수기용을 했으리라 생각된다. 그러나 단기전은 이전의 누적 기록이 아닌 경기 당일 컨디션이 가장 좋은 선수들로 선발 라인업을 구성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단적인 예로 지난 1,2차전의 테이블세터 구성도 그렇다. 이용규가 잘 풀리면 서건창이 주춤했고, 서건창이 펄펄 날아다니면 이용규가 고개를 숙였다. 쉽게 말해 엇박자가 난 셈이다. 공격흐름이 너무도 좋지 못했다. 따라서 둘 중 컨디션이 나쁜 한 선수를 제외하고 파격적으로 오재원 카드를 쓸 수는 없었는지 궁금하다. 오재원의 누적 기록은 분명 이용규와 서건창에 밀리지만, 그는 큰 경기에 강한 멘탈을 지닌 선수인 만큼 단기전에서 나름 모험을 걸어볼 만한 선수라 판단된다.

물론 네덜란드와의 경기에는 승부를 걸어볼 만한 타이밍이 좀처럼 나오지 않았지만, 경기가 중반 이후로 넘어갈 때 대표팀이 가진 히든카드를 적극적으로 꺼내들 수는 없었는지 아쉬움이 남는다.

현재 대표팀은 장타력이 극도로 빈약했다. 하지만 대타 카드는 좀처럼 보기 힘들었다. 대표팀의 벤치에는 속된 표현으로 ‘큰 것 한 방’이 있는 선수들이 여럿 있었다. 박건우, 오재원 등이 그렇다. 대표팀에는 벤치 자원을 승부처에 대타로 기용할 베짱이 부족했던 것은 아닐까. 한 마디로 너무 소극적이었다. 단기전은 한 경기 한 경기의 승패가 무척 중요하다.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것. 이도 저도 안 된다면 파격적인 기용으로 승부를 거는 일도 주저하지 않아야 한다.

마운드 역시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우규민과 원종현이 각각 1회와 6회에 피홈런을 내주면서 사실상 경기 흐름이 네덜란드에 넘어갔다. 지난 이스라엘전 직후에도 공인구 적응이 부족했던 것은 아닌지 지적한 바 있는데, 이날 경기에서도 공인구 적응을 제대로 마치지 못했던 부분이 발목을 잡았다.

7일 네덜란드와의 2017 WBC A조 2차전에서 오뒤버르에게 홈런을 내주고 아쉬워하고 있는 WBC 한국 대표팀의 원종현. 스포츠코리아 제공
특히 6회 슬라이더를 던지다 오뒤버르에게 좌월 투런포를 맞은 원종현이 아쉬웠다. 1볼 상황에서 슬라이더를 택한 것은 적절했다. 다만 슬라이더가 밀려들어가며 상대 방망이에 정확히 걸려든 모양새다. 당시 투구가 공하나 정도의 공간만 바깥쪽으로 빠졌다면, 피홈런은 없었을 것이다. 실밥이 굵고 공이 상대적으로 크게 느껴지는 공인구를 제대로 컨트롤하지 못하면서 발생한 문제인 것으로 보인다.

우규민의 피홈런 장면은 공인구 적응 문제에서 기인한 것은 아닌 듯하다. 그는 몸이 상대적으로 덜 풀린 1회말 무사 1루 상황을 맞았다. 게다가 프로파르를 상대하다 볼카운트가 1스트라이크-3볼로 몰렸다. 아무래도 스트라이크를 얻어내고자 승부를 걸었을 텐데 여기서 문제가 발생했다.

게다가 좌우양타인 프로파르는 이날 좌타석에서 승부를 걸었다. 좌타자는 통상적으로 우완 사이드암의 공이 잘 보인다. 이날 경기는 선취점을 내주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했던 경기였다. 따라서 우규민에게는 무척 뼈아픈 1회였다.

오는 9일 대만전 승리도 중요하지만, 8일 네덜란드-대만전에서 대만이 반드시 이겨주기를 바라고 있다. 실낱같은 2라운드 진출 희망을 이어갈 수 있기 때문. 필요시에는 오는 10일로 예정된 플레이오프를 통해서라도 한국 대표팀이 도쿄행을 확정짓기를 기도해 본다.

박명환 해설위원. 사진=이혜영 기자 lhy@hankooki.com
박명환 스포츠한국 야구 칼럼니스트·해설위원/ 現 2017 WBC JTBC 해설위원, 야구학교 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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