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시즌을 끝으로 KBO리그는 두 개의 큰 별을 떠나보내야 한다. 바로 ‘영원한 국민타자’ 이승엽(41)과 ‘호부지’ 이호준(41)이 그 주인공들. 두 선수는 2017시즌이 채 개막하지도 않은 시점에 자신의 퇴장 시점을 못 박았다.

나와 동시대에 살면서 현역 선수로 전성기를 맞았던 두 명의 절친한 야구인들이 은퇴를 결정했다는 사실이 무척 아쉬우면서도 쉽게 믿기지 않는다. 프로 데뷔로는 두 선수가 나의 선배였는데, 은퇴는 내가 두 선수에 비해 먼저 경험했다는 사실 역시 흥미롭다.

삼성 이승엽(왼쪽)과 NC 이호준. 스포츠코리아 제공
일찌감치 떠날 날짜까지 정했다고는 하나 그라운드와 작별하는 것은 생각만큼 쉽지 않다. 프로에서만 17시즌을 보냈던 나조차도 은퇴를 결심했던 벅차오르는 감정을 주체하기 힘들었는데, 두 선수는 오죽할까.

하지만 나는 이별의 시점을 자의로, 그것도 미리 정할 수 있는 두 선수들이 무척 부럽다. 한국 프로야구 35년사를 통틀어 은퇴 시점을 자신이 직접 정한 선수들이 얼마나 될까.

당대를 호령했던 수많은 슈퍼스타들이 있었지만, 이들 중 은퇴시점까지 직접 정했던 선수는 사실상 거의 전무하다. 일본에서의 생활을 마무리하고 미련 없이 글러브를 벗었던 선동열 선배(前 KIA 감독)를 제외하고는 잘 떠오르지 않는다. 여타 선수들의 은퇴 과정들을 감안한다면 이승엽과 이호준은 쉽게 말해 축복 받은 선수들이다.

이승엽 이호준 두 선수를 가리켜 축복을 받은 선수들이라 평했지만, 그 중에서도 더욱 축복을 받은 선수는 이호준이라 생각한다. 이승엽의 아름다운 이별을 예상했던 팬들은 이전에도 많이 있었지만, 이호준의 아름다운 이별까지 예상한 이는 그리 많지 않았기 때문.

기록상으로는 크게 밀려도 ‘국민타자’와 함께 동등한 축하를 받으며 현역 은퇴를 아름답게 장식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호준이 더욱 큰 축복을 받은 선수가 아닐는지.

따라서 이호준의 아름다운 은퇴를, 최근 자주 쓰이는 단어로 비유하자면 ‘흙수저의 기적’이라 칭할 수 있을 것이다. 철저한 자기관리를 통해 데뷔 이래부터 지금까지 ‘금수저’의 길을 걸었던 이승엽에 비한다면 이호준의 커리어는 ‘흙수저’에 가깝다.

신인 시절 이호준은 팀 훈련을 피해 도망을 다닌다고 해서 ‘빠삐용’이라는 별명을 얻었을 정도다. 절대적인 훈련량이 적었기에 성적 역시 좋을 리가 만무했다.

프로 10년차가 훌쩍 지나서야 비로소 꽃을 피웠던 ‘대기만성형’ 타자가 은퇴를 앞두고, 수년간 리그 정상의 자리를 놓치지 않았던 이승엽과 주변으로부터 비슷한 대접을 받게 된 점은 다시 한 번 생각해도 정말 뜻밖이다.

이유와 대우가 어떻든 이승엽과 이호준의 이른바 ‘예고 은퇴’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KBO리그에 긍정적인 효과를 불러올 것으로 기대된다.

삼성 이승엽. 스포츠코리아 제공
가장 기대되는 부분은 선수들의 은퇴 문화 변화다. 이승엽과 이호준의 예고 은퇴는 메이저리그의 전설적인 존재 마리아노 리베라, 데릭 지터의 은퇴 과정을 연상하게 한다. 특히 ‘은퇴 투어’가 논의 중인 이승엽의 경우는 더욱 메이저리그 전설들의 은퇴 과정을 쏙 빼닮았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지만, 그동안 KBO리그의 선수들의 은퇴 과정은 ‘준비 없는 이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선수들은 자의반 타의반으로 등 떠밀리듯 은퇴하는 경우가 잦았다. 때문에 선수들의 은퇴 과정이 아름다웠던 적은 찾아보기 힘들다.

비단 과거의 일만도 아니다. 2016시즌을 끝으로 유니폼을 벗은 이병규, 홍성흔, 용덕한 등의 은퇴 과정을 생각해보자. 모두 매끄러움과는 거리가 멀었다. 느닷없는 통보식의 준비 없는 이별은 선수 본인은 물론 해당 선수를 아끼는 팬들에게도 큰 슬픔이자 아쉬움이다.

자신의 땀과 노력으로 일궈낸 인생의 한 페이지를 정리하는 것은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는다. 예상보다 꽤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화려했던 과거를 회상하며 생각을 가다듬는 것은 물론, 인생의 2막을 구상하는 일은 단 시간 내에 매듭지을 수 없는 일.

이승엽과 이호준의 예고 은퇴는 크게 보자면 KBO리그의 바람직한 은퇴 문화 형성에 큰 도움을 줄 것이라 확신한다. 좋은 선례로 리그 역사에 기록될 전망. 미래에 은퇴를 결정하게 될 모든 선수들 역시 두 선수의 전철을 밟아나가길 기원한다.

NC 이호준. 스포츠코리아 제공
이승엽과 이호준의 예고 은퇴가 굳건하게 정착만 될 수 있다면 이는 KBO리그 전체 흥행에도 분명 도움이 될 것이라 확신한다. 무엇이든지 희소성이 존재의 가치를 높이는 법. 해당 시즌이 아니면 볼 수 없는 선수들의 모습을 직접 눈에 담고자하는 팬들의 수요가 증가해, 이전에 비해 전체 관중수가 많아질 것이라 예상하는 것이 과연 나만의 공상에 불과할까.

두 선수의 은퇴 사례가 좋은 선례로 남아 미래에도 ‘예고 은퇴’가 일종의 전통처럼 이어지기를 기원한다. 지금 당장 은퇴를 고려하라는 의미는 결코 아니지만 이승엽과 이호준처럼 명예롭게 예고 은퇴를 충분히 계획해 봄직한 선수들이 벌써부터 눈에 들어온다. 당장 30대 중반인 이대호만 해도 수 년 뒤 자신들의 선배들이 그랬듯 명예로운 퇴장이 가능해 보인다.

욕심을 덜어내고 인생 1막의 마무리를 앞둔 이승엽과 이호준. 다시없을 두 선수의 현역 마지막 시즌인, 2017시즌이 각자의 ‘커리어 하이’로 매듭지어질 수 있기를 바란다. 기왕 박수를 받으며 떠나는 것이라면, 최대한 큰 갈채 속에서 떠나기를 진심으로 응원한다.

사진 이혜영 기자 lhy@hankooki.com

박명환 스포츠한국 야구 칼럼니스트·해설위원/前 NC 2군 보조코치, 現 야구학교 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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