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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한국 박대웅 기자] 25번을 등에 새긴 푸른 피의 에이스는 이제 옛 이야기가 됐다. 한화에서 37번을 달고 당찬 새 출발을 선언했지만 지난 2년 동안 실질적으로 보여준 것은 없었다. 배영수가 등번호를 33번으로 또 한 번 교체하며 마지막 독기를 품었다.

지난 2014년 FA를 통해 한화로 이적한 배영수는 입단식에서 37번이 적힌 새 유니폼을 들며 활짝 미소를 지었다. 당시 “유니폼이 잘 어울리는 것 같다”고 운을 뗀 배영수는 “등번호를 바꾸게 된 것은 기분 전환이 필요했고, 나름의 의미도 있다. 이유는 나중에 말해주도록 하겠다”고 밝혀 궁금증을 불러 일으켰다.

이후 배영수에게 등번호에 얽힌 사연을 몇 차례 더 물어봤지만 그는 “시즌 10승을 거두게 된다면 말해주도록 하겠다”며 답변을 피했다.

그 이유는 끝내 들을 수 없게 됐다. 배영수는 이번 스프링캠프에서 37번이 아닌 33번을 달고 또 한 번 새 출발을 알렸다. 33번은 지난해까지 내야수 최윤석이 달았던 번호다. 37번은 신인 김진영에게 전달됐다.

배영수는 지난해 11월 일본 미야자키에서 열린 마무리훈련 일정을 마치고 귀국한 당시 등번호 교체를 암시하는 발언을 남긴 바 있다. 당시 그는 “사실 등번호를 바꿀까 하는 생각도 가지고 있다. 특별히 징크스를 믿는 것은 아니지만 어떤 방식으로든 잘 풀렸으면 하는 마음이 있다”며 부활에 대한 절박함을 드러내기도 했다.

37번의 비밀을 공개하지 않았듯 33번으로 교체한 이유 역시 배영수 본인만 알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이 있다. 올해 배영수의 한국 나이가 37세라는 점, 그리고 4년 전 33세였던 2013시즌에 다승왕을 차지했다는 점이다.

2013시즌은 배영수에게 뜻 깊은 해로 기억되고 있다. 그는 2004년 17승2패 평균자책점 2.61의 성적으로 정규시즌 MVP에 등극했고, 2006년에는 삼성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견인하는 등 한 때 최고의 영광을 누렸다. 그러나 팔꿈치 부상으로 인해 급격한 내리막을 걸었고, 특히 2009년에는 1승12패 평균자책점 7.26의 참담한 성적으로 은퇴 기로에까지 섰다.

하지만 기적이 일어났다. 2012년 12승을 따내며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선 배영수는 이듬해 14승4패 평균자책점 4.71을 기록하며 2004년 이후 8년 만에 생애 두 번째 다승왕 타이틀을 품에 안았다. 시즌 전까지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단지 추측일 뿐이지만 모두의 비웃음 속에서도 기적을 이뤄냈던 나이를 등번호에 새기고 당시의 마음가짐과 자신감을 떠올리기 위해 33번을 택했을 가능성도 있다. 또한 남은 현역 기간 동안 33승을 추가해 정민철(통산 161승, 역대 2위)과 어깨를 나란히 해보겠다는 뜻이 숨어있을 수도 있다.

어떤 속내가 담겨있든 배영수의 팬들은 그가 2013시즌의 기적을 또 한 번 재현해줄 수 있기를 간절히 기원하고 있다. 팀의 에이스로 도약하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다. 마운드 위에서 건강한 모습으로 공을 던지고 활짝 미소 지었던 모습을 다시 보여주길 희망할 뿐이다.

배영수는 2016시즌 단 한 번도 1군 마운드에 서지 못했다. 시즌을 통으로 날린 것은 지난 2007년 이후 커리어 두 번째로 경험한 일이다.

때문에 시즌 후에는 교육리그와 마무리 훈련을 모두 소화하면서 그 어느 때보다 이를 악물었고, 현재 스프링캠프에서도 송신영, 오간도와 함께 계형철 코치의 지도를 받으며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2017년은 야구 인생에 있어 정말 중요한 해가 될 것 같다”며 마지막 승부를 선언한 배영수가 올시즌 후에는 33번 등번호의 비밀을 속시원히 밝힐 수 있을지 기대가 모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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