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식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대표팀 감독은 지난 11일 과거 해외 원정도박으로 물의를 빚은 오승환(35·세인트루이스)을 2017 WBC(월드베이스볼클래식) 대표팀에 합류시킬 뜻을 내비쳤다.

2006년 미국과의 WBC 2라운드 2차전에서 투구하고 있는 오승환의 모습. 스포츠코리아 제공
얼마 지나지 않아 오승환은 28인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오승환은 지난 2006년 1회 대회부터 4회 대회까지 한 번도 빠짐없이 출전하게 됐는데 여기에 맞춰 제1회 WBC에서의 추억들을 꺼내보고자 한다.

지금도 절친한 사이지만 당시에도 나는 오승환과 친분이 두터웠다. 순진하고 착한 심성을 지닌 선수로 기억된다. 오승환을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기억은 WBC 대표팀의 첫 공식 피칭 훈련이다.

각 팀의 최고 선수들이 한 데 모인 탓에 대표팀 선수들은 아무래도 서로를 견제하기 마련이다. 특히 투수들은 선수의 공을 유심히 지켜본다.

오승환이 마운드에 올랐다. 이때 놀라운 일이 있었다. 그가 당시 홈플레이트에서 공을 받았던 홍성흔 선배에게 두 발자국 뒤로 물러나라고 요구하는 것이 아닌가.

야구팬들도 잘 알다시피 마운드에서 홈플레이트간의 거리는 정확히 18.44m다. 여기서 포수가 두 발자국 물러나 앉는다면 마운드와 홈플레이트간의 거리는 족히 20m가 넘는다. 오승환이 상당히 긴 거리에서 던질 채비를 하기에 홍성흔을 포함한 모든 선수들은 크게 놀랄 수 밖에 없었다.

당시 나는 오승환의 모습을 보며 “설마 공이 힘이 실린 채 날아가겠어?”라고 중얼거렸다. 하지만 예상과는 달리 오승환의 공은 힘이 가득 실린 채, 20m를 가볍게 날아갔다. 말 그대로 ‘돌직구’였다.

2006년 3월 2일 도쿄돔에서 훈련에 임했던 오승환의 모습. 그의 모습 뒤로 봉중근, 김선우 해설위원의 모습이 보인다. 스포츠코리아 제공
공을 아무리 세게 던져도 스피드가 서서히 떨어지기 마련인데 오승환은 달랐다. 오승환 돌직구는 힘 있게 날아가다 포수 미트 바로 앞에서 큰 폭으로 떨어졌다.

여기에 릴리즈 포인트가 늦고 타자의 타격 타이밍을 반 박자 정도 빼앗는 고유의 키킹 동작은 오승환을 더욱 뛰어난 투수로 성장할 수 있도록 했다.

재미있는 점은 1회 WBC 대표팀에는 강력한 돌직구를 보유한 오승환도 혀를 내두른 선수가 있었다. 지난해 어깨 부상으로 현역 은퇴를 선언한 전병두(현 SK 전력분석원)였다.

일반적으로 투수들의 자존심은 구위다. 얼마나 멀리 강하게 던지느냐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한 번은 오승환과 전병두가 롱토스(두 사람이 먼 거리에서 공을 주고받는 훈련) 훈련을 했는데 오승환이 던진 공이 바운드가 돼 전병두에게 향한 적이 있었다.

간단히 말해 오승환이 100m를 던지면 전병두는 120m를 던질 수 있는 선수라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지난해 어깨 통증이 가시지 않아, 힘겨워했던 전병두의 모습을 생각해보면 좀처럼 상상이 가지 않으나 당시의 건강한 전병두는 ‘멀리 던지기’ 1인자였다.

이른바 내가 ‘슬리퍼 사건’으로 명명한 일화도 기억이 난다. 당시 나는 오승환과 쇼핑에 나선 적이 있었는데, 하루는 나와 오승환 모두 슬리퍼를 사기로 했다. 재밌게도 오승환은 당시 명품 브랜드에서 만든 플립플랍(엄지발가락과 둘째발가락 사이로 끈을 끼워 신는 슬리퍼의 일종)을 고집했다.

슬리퍼에 많은 돈을 들이는 것을 이해하지 못해 1만~2만원대의 슬리퍼를 추천했지만, 오승환은 끝내 당시에 유행하던 값비싼 명품 플립플랍을 구입했다.

2006년 당시만 하더라도 만 24세의 앳된 오승환은 세월이 흘러 베테랑이 됐고, 나는 은퇴하고 코치 생활을 하고 있다. 어떻게 보면 오승환은 선수들 중 가장 부담이 큰 마무리 투수라는 중책을 맡았지만, 충분히 잘 이겨낼 것이라고 믿는다.

수준 높은 일본 프로야구와 메이저리그를 경험하면서 많은 발전을 이뤄낸 부분은 메이저리거들의 다수 이탈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대표팀에게 가장 큰 자산일 것이다. 만 35세의 나이지만, 철저한 자기관리로 유명한 만큼 몸 상태에는 큰 이상이 없을 것이다.

박명환 현 야구학교 코치. 사진=이혜영 기자 lhy@hankooki.com
특히 메이저리그에서 던지는 모습을 보면 한국에 머물던 당시보다 훨씬 발전됐음을 느낀다. 구위는 예전 젊은 시절과 동일한데 공이 떨어지는 궤도와 휘는 궤도가 크게 달라졌다. 시속 150km 초반대의 공이 제법 익숙한 미국 타자들이 오승환에게 고전했던 이유는 바로 이 때문. 오승환 돌직구의 위력은 여전히 국제대회에서도 통용될 것이다.

오승환이 해외 원정도박으로 인한 징계를 이행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발탁 반대 여론이 일기도 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현재 오승환이 KBO리그에서 뛰는 것도 아닌데다 뛸 수도 없는 상황이기에 징계는 나중의 문제로 생각할 수는 없을까.

물론 이번 대회를 참가하는 오승환의 태도도 중요하다. 그는 이번 WBC를 ‘속죄의 장’이 아닌 ‘반성의 장’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한 번의 실수는 되돌릴 수 없지만, 다시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자세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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