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한국 김경동 기자] 한때 일본 최고의 투수로 군림했던 이가와 게이(37). 그도 시간의 매서움을 피해갈 수 없었다.

일본 독립리그 블루 선더스는 22일 "지난 15일 이가와와 연습생 계약을 맺었다"고 발표했다.

연습생 신분이기에 연봉을 받지 않는 이가와는 다음 시즌 시범경기 등 연습경기에는 출전할 수 있지만 4월 개막하는 리그 공식경기에는 뛸 수 없다. 우선 정상 컨디션을 회복해 정식 선수 계약을 추진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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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가와는 이날 효고현 미타시에서 열린 현지 언론과의 기자회견에서 "올해 1년 동안 계속 연습을 해왔다. 야구에 대한 생각은 여전하다"라면서 "블루 선더스에 힘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며 포부를 밝혔다.

흘러가는 세월은 어쩔 수 없다지만 이가와의 독립야구행은 시간이 얼마나 야속한 지 새삼 느끼게 한다.

이가와는 지난 1998년 일본프로야구(NPB) 신인 드래프트 2순위로 한신 타이거즈에 입단해 2006년까지 뛰었다. 2001년부터 6년간은 평균 198이닝을 소화하는 등 팀의 에이스를 넘어 일본야구를 대표하는 선수로 떠올랐다.

특히 2003년에는 20승 5패 평균자책점 2.80을 기록, NPB 최고의 투수에게 수여되는 사와무라상까지 받기도 했다.

뉴욕 양키스 시절 이가와 게이. 연합뉴스 제공
일본에서의 맹활약을 인정받아 2007년 포스팅시스템(비공개 경쟁입찰)을 통해 약 2600만달러의 입찰액을 제시한 메이저리그 뉴욕 양키스 유니폼을 입었다. 하지만 빅리그에서의 이가와는 완전히 실패한 선수였다.

데뷔 첫 해 이가와는 12경기 선발로 나서 2승 3패 평균자책점 6.25의 성적으로 웬만한 마이너리그 선수보다 못한 성적을 거뒀다. 이듬해 5월 디트로이트 타이거스를 상대로 다시 선발 기회를 받았지만 3이닝 동안 11피안타 6실점을 기록, 최악의 투구 내용을 보였다.

이후 마이너리그 강등된 뒤 6월말 콜업돼 뉴욕 메츠를 1이닝 무실점으로 틀어막았지만 역시 2피안타로 불안한 모습을 보였다. 당시 브라이언 캐시먼 양키스 단장은 공개적으로 "이가와 영입은 실패한 계약"이라고 단정지었다.

하지만 이가와는 포기하지 않고 마이너리그에 남아 계속해서 메이저리그의 문을 두들겼다. 그러나 문은 열리지 않았고 결국 지난 2012년 NPB 오릭스 버팔로스와 계약을 맺고 일본 복귀를 선언했다.

일본 무대로 돌아와 구위 회복에 힘썼지만 전성기 시절 모습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가 오릭스를 위해 올린 승수는 7개(12패)에 불과했다. 끝내 지난 10월 오릭스로부터 방출 통보를 받았다.

요미우리 자이언츠 시절 이승엽(왼쪽)과 이가와 게이. 연합뉴스 제공
이렇게 허무하게 자신의 선수 생활을 마무리할 수 없다는 생각에 독립야구를 선택한 이가와. 굴곡진 그의 야구 인생은 어떻게 마무리될 지 향후 행보가 주목된다.

한편 이가와는 한국 팬들에게는 지난 2006년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뛰던 이승엽(40·삼성)의 한·일 통산 400번째 홈런의 희생양이 된 투수로도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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