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한국 이재현 기자]생애 네 번째 골든글러브였지만, 만족스러운 표정은 결코 아니었다. 오히려 겸연쩍은 미소만 연신 지었을 뿐 이었다. 그 주인공은 바로 SK의 최정(29)이었다.

SK 최정. 스포츠코리아 제공
최정은 지난 13일 서울 양재동 더케이호텔 그랜드볼룸에서 열린 2016 골든글러브 시상식에서 3루수 부문 골든글러브를 수상했다. 총 138표를 획득한 것. 이로써 지난 2011년 골든글러브와 처음으로 연을 맺었던 그는 지난 2013년 이후 3년 만에, 생애 네 번째 골든글러브를 품에 안았다.

결코 흔치 않은 골든글러브 수상 기록을 보유하게 된 만큼, 수상 소감 역시 남다를 것으로 판단했다. 하지만 가족을 비롯해, 코칭스태프, 선수단에 감사를 표시했던 지극히 평범한 소감을 남긴 최정이었다. 오히려 수상했다는 사실을 당당해하기 보다 부끄러워하는 모양새였다.

시상식을 마친 최정은 지인들과 인사를 나누며 비교적 차분하게 주변을 정리했다. 비슷한 또래인 두산의 좌완 투수 유희관과 농담을 주고받기도 하던 그는 “오늘이 결혼기념일이라, 이번 수상이 특별한 것은 사실이다”라고 입을 열었다. 최정은 지난 2014년 12월 13일, 전직 기상캐스터였던 나윤희씨와 결혼식을 올린 바 있다.

하지만 이내 그의 표정은 굳었다. 분명 결혼기념일에, 아내에게 줄 선물까지 완벽하게 챙긴 그였기에 쉽게 납득이 되지 않는 표정이었다. 그러나 이내 곧 굳은 표정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떳떳하지 못한 상이라는 것.

최정은 “운이 좋아 받을 수 있었다. 같이 후보에 올랐던 황재균은 물론 이범호가 받아도 크게 이상하지 않았다”라고 답했다. 물론 아예 틀린 말은 아니다. 실제로 이번 투표에서 황재균과 이범호는 각각 106표와 92표를 받아 2,3위에 위치했다. 투표에서 최정은 압승을 거두지 못했다. 오히려 황재균에게 운이 조금만 더 따랐다면, 올해 황금장갑의 주인공은 달라졌을 가능성도 충분했다.

단순 기록만 놓고 평가해도, 최정은 황재균과 이범호를 크게 앞선다고 단언할 수 없었다. 올시즌 황재균은 127경기에 나서 타율 3할3푼5리, 27홈런, 113타점을 기록했다. 타율과 타점은 물론 여기에 홈런까지 개인 최고 기록을 경신한 것.

이범호 역시 만 35세라는 상대적으로 많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올시즌을 자신의 커리어 하이로 만들었다. 138경기에 나서 타율 3할1푼, 33홈런, 108타점을 기록한 것. 오히려 홈런은 황재균보다도 많았다. 이에 반해 최정은 타율 2할8푼8리, 40홈런, 106타점을 기록했다. 사실상 홈런왕 타이틀을 제외한다면, 크게 돋보이는 기록은 아니었다.

SK 최정. 스포츠코리아 제공
최정 역시 이를 순순히 인정했다. “냉정하게 말해 타율을 비롯해 여러 수치들이 상대 선수들에 비해 부족했다. 시즌 초반에는 득점권에서 고전하기도 했다. 총평하자면 씁쓸한 시즌이었다. 그럼에도 골든글러브를 운 좋게 받을 수 있었다”며 “결국 홈런 탓에 상을 받을 수 있던 셈인데, 홈런왕 타이틀이 이렇게나 큰 의미를 지닌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닫는 순간이었다”라고 답했다.

최정이 골든글러브를 받았음에도 씁쓸함을 느꼈던 또다른 이유는 바로 김용희 전임 감독 때문이다. 지난 2015시즌부터 SK의 지휘봉을 잡았던 김 전 감독은 올시즌을 끝으로 팀과 결별했다.

계약 기간을 연장하지 않기로 한 구단의 결정과 맞물려, 김 전 감독은 지난달 11일 트레이 힐만 신임 감독에게 지휘봉을 넘겨주고 홀연히 최정의 곁을 떠났다. 두 시즌 간 이어졌던 팀 성적 부진(2015년 5위, 2016년 6위)은 두 사람을 이별하게 만들었지만, 김 전 감독과 최정은 지난 두 시즌 간 강한 유대감을 형성한 사이. 최정은 수상 소감에서 가장 먼저, 재임 기간 동안 자신을 살뜰히 챙겼던 김용희 감독에게 고마움을 표시하기도 했다.

최정은 “지금도 가장 생각나는 사람은 김용희 전임 감독님이다”며 “올시즌 일찌감치 좋은 성적으로 믿음에 보답했어야 했는데, 그렇지 못해 정말 아쉽다”라고 밝혔다. 사실상 김 전 감독의 경질 책임에서 자신이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점을 언급한 것.

그렇다면 ‘홈런왕’ 최정의 다음시즌 목표는 무엇일까. 그는 홈런왕 재도전, 전 경기 출장, 통산 5번째 골든글러브 등 여러 기념비적 기록들을 열거한 질문들에 고개를 가로저었다. 단순히 수치로 드러나는 기록에 매몰되지 않겠다는 것이 그의 설명. 목표는 간단했다. 떳떳한 자신과 마주하고 싶다는 것이 그의 간절한 소망이었다.

“올해 물론 40홈런을 때려냈지만 숫자는 신경 쓰지 않으려고 해요. 올해가 유독 홈런운이 좋았을 뿐, 진정한 내 실력으로 이뤄낸 ‘타이틀’이라 생각하지 않아요. 내년에는 더욱 떳떳한 내가 되기를 바라고 있어요. 시상식도 모두 끝났으니 다시 개인훈련에 매진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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