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한국 박대웅 기자] 신인과 최고참의 벽은 찾아볼 수 없었다. 한화의 마무리캠프에서 벌어진 이야기다.
한화는 지난 11월30일 일본 미야자키에서 열린 마무리훈련 일정을 모두 마치고 인천공항을 통해 귀국했다.
대부분의 팀들이 젊은 유망주와 백업 멤버를 중심으로 교육리그 및 마무리캠프를 차리는 반면 한화는 김성근 감독 부임 이후 핵심 자원 및 베테랑들 역시 상당수가 이러한 일정을 함께 소화한 팀이다. 이번에도 한화는 김성근 감독의 지휘 아래 무려 66명이 일본으로 떠났으며, 귀국 당일에는 박종훈 신임 단장이 공항을 방문해 선수단을 일일이 따뜻하게 맞이하는 모습을 보였다.
선수단이 대규모로 꾸려졌지만 고참과 젊은 선수들 간에 벽을 허물면서 분위기도 그 어느 때보다 훈훈했다는 것이 한화 관계자의 설명이다. 특히 불혹을 넘어선 캠프 최고참 박정진(40)이 책임감을 갖고 선수들을 이끈 가운데 2017 신인드래프트 2차 지명회의에서 1라운드 5순위로 한화에 입단한 신인 김진영(24) 역시 적극적인 자세로 팀에 녹아들며 끈끈한 동료애를 쌓았다.
▶ ‘당찬 루키’ 김진영, 부담도 두려움도 없다시카고 컵스 출신 투수로 드래프트 당시부터 높은 기대를 불러 모았던 김진영은 귀국 직후 신인다운 당찬 패기는 물론 신인답지 않은 능숙한 말솜씨까지 선보이며 본인의 그릇을 드러냈다.
KBO리그에서는 처음으로 마무리캠프를 경험한 그는 “개인적으로 만족감을 느낀 캠프였다. 선수들끼리 이야기를 했을 때에도 다들 관심을 많이 가져주셨고, 그 덕분에 처음 경험하는 캠프에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뿌듯하다”는 소감을 남겼다.
특히 김진영은 고참 선수들의 합류가 배움의 측면에서 상당한 도움이 됐다고 털어놨다. 그는 “최고 선봉에 박정진 선배를 중심으로 안영명, 송은범 선배 등이 투수들을 이끌어주면서 엄청난 시너지가 났다고 생각한다”고 운을 뗀 뒤 “신인들이 주눅 들지 않고 팀에 잘 녹아들도록 분위기를 잡아주셨다. 선배들 뿐 아니라 투수조의 코치님들 역시 정신적인 부분에서 많은 것을 일깨워주셨다. 고참 선배들이 일반적으로 많이 오지 않는 캠프라고 하지만 함께할 수 있어서 큰 효과가 있었던 것 같다”며 만족감을 드러냈다.
드래프트 당시 김성근 감독으로부터 지도를 받는 점에 기대감을 전하기도 했던 김진영은 “사실 선수와 지도자가 서로 마음이 맞으면 좋지만 반대로 악영향을 미치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다. 하지만 김성근 감독님께서는 내게 필요한 부분들을 많이 채워주셨다”며 본인이 그동안 고집스럽게 가지고 있던 밸런스를 변화시킨 점에 대해 의미를 부여했다. 변화의 필요성을 확실히 깨달았고, 무엇보다 변화에 대한 두려움을 지워낸 점을 이번 캠프의 큰 소득으로 꼽았다.
감독부터 대선배들에 이르기까지 선뜻 다가서는 일이 쉽지 않을 법 했지만 김진영은 어려움이 전혀 없었다며 활짝 미소를 지었다. 그는 “어려움을 느끼는 자체에 오히려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는 당당한 발언과 함께 “하나라도 더 물어보고 내 것으로 만들려고 노력했다. 감독님께서도 내게 그런 자세가 필요하다는 뉘앙스를 계속해서 주셨다”고 전했다.
해외파 출신이라는 점에서 비롯되는 부담감도 전혀 느끼지 않는 모습이었다. 김진영은 “이미 해외파 출신의 선배님들이 (KBO에서) 차근차근 걸어오신 길이 있다. 마음 편히 야구를 잘 하게 되면 팬들께서도 더 관심을 가져주실 것이고 팀에도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며 과거의 커리어를 생각하기보다 묵묵히 본인의 길을 걷겠다는 다짐을 남겼다.
김진영은 “입단식에서도 말했지만 신인이기 때문에 타이틀에 대한 욕심보다는 1군에서 활약할 수 있도록 우선 노력을 할 계획이다. 선발, 중간, 마무리 어느 곳이든 기회만 주신다면 최선을 다할 수 있도록 준비를 열심히 하겠다”는 올시즌 목표를 전하면서 씩씩하게 공항을 빠져나갔다.
▶박정진의 마지막 꿈, “시작처럼 끝도 우승”동안의 얼굴을 자랑하는 박정진이지만 2017년이면 그도 어느덧 한국식 나이로 42세가 된다. 2017시즌을 끝으로 은퇴를 조기에 선언한 삼성 이승엽, 친정팀 KIA에서 마지막 불꽃을 태우고 있는 임창용과 나이가 같으며, 투수 중에서는 최영필(41) 다음으로 리그 최고령에 해당된다.
1999시즌 한화의 구단 사상 처음이자 마지막 우승을 신인 시절에 경험하는 행운을 누린 박정진은 2003년 6승7패 3세이브 11홀드 평균자책점 4.31을 기록하며 두각을 나타내는 듯 했지만 연세대 시절부터 시작된 고질적인 어깨 부상 탓에 기대만큼의 활약을 펼치지 못했다. 그러나 2010년대 이후 중간과 마무리를 오가는 필승조로서 뒤늦게 기량을 꽃피웠고, 최근 2년 동안에는 혹사에 대한 수많은 우려 속에서도 도합 190이닝을 소화하는 불꽃 투혼을 발휘했다.
물론 2015시즌에 비해 2016시즌에는 전반적인 기록에서 하락세를 나타낸 것이 사실이지만 권혁, 송창식 등 필승조가 차례로 부상을 당하는 악재 속에서도 묵묵히 마운드를 지켜내며 기록 그 이상의 가치를 인정받았다.
매시즌이 마지막일 수 있다는 생각을 머릿속에 품어왔지만 2017시즌에 임하는 박정진의 각오는 그 어느 때보다도 비장하다. 특히 이번 마무리캠프에서는 고참으로서 후배들을 훌륭히 이끌며 김성근 감독이 지목한 캠프 MVP로 우뚝 섰다.
박정진은 “투수는 일단 공을 던지는 것이 중요한데 던지고 나서 감독님께서 흡족해 하셨다. 나 역시 피칭 페이스가 좋아서 만족한다”고 소감을 전한 뒤 “캠프 분위기가 이런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좋았다. 홍남일 코치님과 따로 훈련을 했는데 케어를 잘 해주셔서 회복을 빨리 할 수 있었다. 솔선수범해야겠다는 생각도 있었지만 젊은 선수들에게 뒤지지 않으려는 마음도 함께 먹었다”고 이번 캠프에 임한 마음가짐과 분위기 등을 전했다.
특히 그는 “코치님들은 많이 던질 필요가 없지 않느냐고 하셨다. 원래는 캠프에 가는 게 아니었는데 자청했다. 공을 많이 던지고 싶었고 감독님께서도 허락해주셨다”며 의욕적으로 이번 캠프에 참여하게 된 점도 털어놨다.
박정진은 마무리캠프를 통해 어깨를 만들어놓고 밸런스의 기복을 잡는 첫 번째 목표를 무사히 달성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많은 숙제가 있음을 전하면서 스프링캠프가 시작될 때까지 현재의 감각을 유지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2016시즌 우승이라는 간절했던 목표와 달리 박정진은 많은 아쉬움이 있었음을 되돌아보면서 초반 페이스가 좋지 못했던 점에 동료들에게는 미안함, 본인에게는 속상함을 드러내기도 했다. 2017시즌만큼은 더욱 철저히 준비해 팀이 좋은 성적을 내는데 보탬이 되고 싶은 마음이다.
이제 박정진에게 주어진 시간은 그리 많지 않다. 특히 올해는 이병규, 홍성흔과 같은 시대를 풍미한 노장 선수들이 은퇴를 선언하면서 이같은 현상이 더 이상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박정진은 “야구를 못하면서 자리를 차지할 수는 없는 일이다. 몸 관리를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팀에 도움이 안 되면 스스로 준비를 해야 할 것 같다”고 냉정히 본인을 되돌아본 뒤 “데뷔 첫 해 우승을 했고, 이제는 우승을 하고서 은퇴를 하고 싶다”는 야구 선수로서의 마지막 목표를 힘주어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