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단 사장의 역할은 구단 성패에 엄청난 비중을 차지한다. 그런데도 1982년 프로야구 출범 이후 지금까지 야구와 무관한 인사들이 사장으로 선출돼 명문 구단으로 가는 길을 막기도 했다.

사실 감독이나 야구단 단장이 할 일을 제대로 수행하면 사장은 그야말로 ‘무임승차’를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런 복받은 사장은 10년에 한명 있을까 말까이다.

일단 사장 선출 과정을 살펴보자. 그룹 오너인 구단주는 자신과 그룹에 충성심 강했던 참모나 계열 회사 임원을 마지막 보직으로 ‘보은(報恩) 인사’ 형식으로 대부분 임명한다.

그들은 주로 홍보, 유통, 건설 업무를 담당해와 야구단 운영은 생소하다. 초창기엔 언론인 출신이 오기도 했고 오너 일가도 있었다.

야구단의 생리를 잘 모르기 때문에, 취임 후엔 야구 마니어인 지인들과 지연, 학연으로 연결되는 야구 해설가, 기자들로부터 ‘과외 수업’을 받게 된다. 이 과외 수업이 제대로 된 학습이면 좋지만 대개는 편협된 정보나 이론일 수 있어 운영 방침을 잘못 잡는 수도 있다.

김진욱(가운데) kt 감독 취임식에서 김준교 사장(오른쪽)과 임종택 단장이 나란히 앉아있다. 스포츠코리아 제공
이른바 ‘선무당이 사람잡는 격’이다. 오래된 이야기지만 필자가 목격한 바로, 서울대 법대 출신인 어느 사장은 경기중 실점을 많이 한 투수를 자신의 집무실로 불러 일본투수 교습서를 손에 들고 투구폼을 수정해주기도 했다.

어떤 사장은 야구 기능을 익혀야 한다며 경기전 선수들이 훈련하는 옆에서 양복을 입고 직접 캐치볼을 하기도 했다. 또 어떤 사장은 경기중 투수 교체의 메모를 덕아웃의 감독에게 전달해 팀이 발칵 뒤집히기도 했다.

이런 사장의 심정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구단 책임자이기도 하거니와 구단 성적에 따라 자신의 재계약 여부가 정해지므로 무언가 영향력을 발휘할려고 노력하지 않을 수 없다.

구단 사장과 초선 국회의원은 닮은 꼴이 있다.

예를 들어 대학교수 출신은 의정 활동이 생소하기 때문에 상임위에서 엉뚱한 질문을 하는 경우를 더러 볼 수 있다. 대여섯명 보좌관의 보좌를 받긴 하지만 첫해 국정감사를 진행해봐야 의정 활동의 감을 잡는다고 한다(개원후 약 6개월).

야구단 사장 역시 6개월간 우여곡절의 한 시즌을 보내고 트레이드, 마무리훈련, 외국인 선수와 FA(자유계약선수) 영입, 또 선수들과 감정싸움까지 일으키는 연봉 계약을 손수 겪어봐야 제대로 된 야구단 운영의 그림을 그릴 수 있다.

그러나 그 중요한 취임 첫해에 제대로 된 역할을 하지 못하면 팀의 목표인 4~5강 진출은 힘들게 된다. 지금 한국시리즈 우승을 다투는 두산과 NC의 사장은 이른바 야구전문가다. 두산 김승영 사장은 구단 직원 출신으로 운영부장, 단장을 거쳐 야구단을 강하게 만들 수 있는 ‘A~Z'를 꿰뚫고 있다.

NC 이태일 사장은 오랜 야구전문기자 출신으로 예리한 야구 분석력과 현장 감각을 바탕으로 팀을 창단 4년만에 한국시리즈에 올려놨다.

반면 야구단 전력의 핵심인 감독 선정을 잘못해 우울한 한해를 보내고 있는 SK, 롯데는 사장의 부실한 역할이 도마위에 오르고 있다.

2연속 10위의 수모를 당한 kt는 가장 잘못된 선임 케이스가 아닌가 싶다. 초대 김영수 사장은 LG스포츠 대표 4년 경력을 인정받아 영입됐으나(4년간 4강 진출은커녕 최하위 두 번 기록) 사상 첫 10위의 부진에 그쳐 2년만에 도중하차한다.

그러나 후임 김준교 사장은 뜻밖의 인물이어서 야구인들의 구설수에 올랐다. 그는 중앙대 예술대학장, 예체능 부총장 출신으로 디자인 전문가다. 그런 만큼 야구의 매커니즘을 전혀 몰라 하위 탈출에 목말라하는 kt 위즈를 구원하지 못했다.

그는 특히 시즌 준비가 완료된 야구 개막 한달전에 취임해 야구단 운영을 그냥 지켜 볼 수 밖에 없었다. 팀이 초반부터 부진에 빠지니 야구에 대한 흥미마저 잃어 홈경기 때는 자신의 집무실에서 야구가 아닌 다큐멘터리를 시청하기도 해 직원들이 고개를 갸우뚱거리기도 했다.

필자는 왜 디자인전문가를 사장으로 영입했는지 의아해했는데, 몇 달전 조선일보에 실린 ‘조용헌 살롱’을 잃고서야 궁금증이 풀렸다.

kt 위즈 구단주인 황창규 회장은 ‘한국 반도체 신화의 주역’이지만 예술에 조예가 깊다고 한다. 그는 구한말 궁궐 화원(花員)이었던 조부의 이쁨을 받고 자라 5세 때 장구를 치고 최근까지도 예술인들과 교류를 해오고 있다. 그 예술인중 한명이 김준교 전 부총장이었을 거고 삭막한 야구 승부를 예술과 브랜드마케팅으로 접목시켜보자는 의도에서 그를 전격 영입했을 것으로 보인다.

물론 김준교 사장이 1년의 오리엔테이션을 단단히 거친 만큼 새 감독 부임과 더불어 내년에 성적과 관중동원에서 솜씨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야구단 운영을 ‘장님 코끼리 만지듯’하는 비전문가는 팀의 재건, 회복과는 거리가 먼 시행착오를 거듭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입증시키는 것 같아 씁쓸함을 감출수 없다.

필자가 내부 사정을 비교적 잘 아는 kt 위즈를 모델 케이스로 내세워 야구계 안팎의 현상을 시리즈로 엮으려고 했으나 특정 구단을 집중 분석하는 작업이 적절치 않다는 생각이 들어 kt 관련 기고는 2회에서 그칠까 한다. 야구 칼럼니스트/전 스포츠조선 야구大기자 si8004@naver.com

저작권자 © 스포츠한국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