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한국 이재현 기자] SK가 창단 이래 최초로 외국인 감독을 선임했다. 메이저리그에서 잔뼈가 굵은 트레이 힐만 감독을 선임한 것. 최근에는 미국에서 실패를 맛보기도 했지만, 적어도 인성 면에서는 큰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덕장’으로 불리며 빠르게 팀에 융화될 확률이 높아 보인다.

SK는 27일 트레이 힐만 휴스턴 애스트로스 벤치코치를 제6대 감독으로 선임했다. SK와 힐만 신임 감독은 2년간 계약금 40만달러, 연봉 60만달러(총액 160만달러, 약 18억2000만원)의 계약 조건에 합의했다. 지난 4시즌 간의 성적 부진을 털어내고자 거금을 투자한 SK다. 국내 감독으로서는 최고 대우다.

트레이 힐만 SK 신임 감독. ⓒAFPBBNews = News1

힐만 감독은 지난 2006년 니혼햄 파이터스의 일본시리즈 우승을 이끌며, 아시아에서는 감독으로 성공적 커리어를 쌓았다. 다만 메이저리그에서는 성적이 좋지 못했다. 지난 2008년 캔자스시티 로열스의 감독으로 부임했지만 팀 성적은 바닥을 기었다. 지난 2009년에는 아메리칸리그 중부지구 최하위.

지난 2010년에도 상황은 좀처럼 나아질 줄을 몰랐는데, 2010년 5월 13일 당시, 캔자스는 11승 23패로 일찌감치 포스트시즌 진출 희망을 잃어가고 있었다. 당시 데이튼 무어 캔자스 단장은 같은 날 힐만 감독을 자신의 집무실로 호출해, 향후 거취 문제에 대한 면담을 나눴다.

면담은 아침까지 이뤄졌지만, 그의 운명은 이미 결정돼 있었다. 14일 클리블랜드와의 경기를 마지막으로 경질이 확정된 것. 그를 대신해 곧바로 네드 요스트 신임 감독이 선임됐다. 이러한 사실은 지난해 10월 미국 캔자스 지역 매체인 캔자스 시티 스타와의 인터뷰를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지난해 10월 휴스턴의 벤치 코치였던 힐만 감독은 얄궂게도 아메리칸리그 디비전 시리즈에서 ‘친정’ 캔자스시티을 만나야 했다. 캔자스의 안방 카우프먼 스타디움을 상대팀 코치로서 재방문했던 것.

캔자스와의 이별 과정이 매끄럽지 못했기에 캔자스는 물론 무어 단장에 대한 악감정이 남아있을 만도 했지만, 힐만 감독은 크게 개의치 않았다. 개인의 의사 표시가 분명한 미국 사회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다소 이례적인 반응이었다.

그는 당시 인터뷰에서 경질 과정에 대해 “비즈니스의 세계에서는 있을 수 있는 일이다”라면서 구단의 경질 결정을 이해한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오히려 “나는 항상 카우프먼 스타디움을 사랑했다. 경기장이 정말 아름답다”라고 좋은 기억만을 떠올리고자 노력했다.

당시 캔자스시티를 상대팀으로 만난 사실에 대해 “오래 살고 볼 일이다”라고 말한 힐만 감독은 여전히 자신에게 첫 빅리그 감독직을 맡긴 ‘친정’ 캔자스시티에 대해 감사한 마음을 표시한 바 있다. ‘미국 신사’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힐만 감독을 향한 미국 매체들의 평가는 생각보다 나쁘지 않다. 특히 팀 성적이 처참했던 캔자스시티 재임 시절에도 선수들의 잠재력을 만개시키는 재능이 있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알렉스 고든, 빌리 버틀러 그리고 잭 그레인키는 그의 지도를 통해 기량이 만개한 대표적 사례다.

지난 2015년 아메리칸리그 디비전시리즈에서 캔자스 시티의 조니 고메스를 반갑게 맞이하는 트레이 힐만 당시 휴스턴 애스트로스 벤치 코치. ⓒAFPBBNews = News1
이제는 슈퍼스타가 된 잭 그레인키는 2009년 최악의 팀 성적에도 불구하고, 그해 아메리칸리그 사이영상을 수상했다.

지난해 10월 캔자스시티 스타와의 인터뷰에서 차기 감독직 도전 여부에 대한 질문에 틸만 감독은 “현재로서는 감독직에 대한 생각이 전혀 없다. 현재(휴스턴 벤치코치)에만 집중하고 싶다”면서도 “캔자스시티에서의 경험을 통해, 많은 것을 배웠다. 언젠가는 감독으로서 다시 한 번 도전할 기회가 찾아올 것이다”라고 밝힌 바 있다.

궁극적으로 틸만 감독은 미국에서의 성공을 바랐을 것이다. 하지만 한국에서 최고 수준의 대우를 받으면서 새로운 도전을 하는 일 역시 나쁘지 않아 보인다. 게다가 한국, 그리고 특히 SK는 외국인 선수들 혹은 코치들을 선발하거나 선임할 때, 인성 부분을 중점적으로 체크하는 경향이 있다. 악연으로 얽힌 ‘친정팀’마저 “기회를 줘 고맙다”라고 말하는 틸만 감독의 ‘신사’다운 모습이 한국에서도 긍정적인 힘을 발휘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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