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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한국 김성태 기자] 뭐든 궁합이 잘 맞아야 한다. 어울리지 않는 짝과 함께 있다보면 괜시리 불편해지고 어색하기만 하다. 하지만 정말 마음이 맞고 어울리는 짝과 함께라면 매사가 행복하고 모든 일에 자신감이 생긴다.

프로야구도 비슷하다. 한 팀을 이끄는 감독과 수장, 그리고 프런트까지 삼박자가 모두 궁합이 맞아야 한다. 그리고 이를 절묘하게 실현시키며 정규시즌 우승을 이끌었다.

두산 야구를 흔히 `뚝심야구'라고 부른다. 날렵하거나 약삭 빠르지 않고 임기응변에도 서투른 느낌이다. 하지만 중량감이 배어나는 묵직하고 단단한 야구는 자신들의 약점을 너끈히 메우고도 남는다.

프로야구 출범 이후 오랜 세월이 흘렀어도 한번 각인된 이미지는 변함이 없다. 지난해 한국시리즈 우승에 이어 정규시즌 우승을 차지한 두산의 `뚝심야구', 그 중심에는 올해도 어김없이 김태형 감독이 있었다.

두산은 22일 올시즌 정규리그 우승을 확정했다. 두산은 이날 잠실에서 열린 kt와의 경기에서 승리를 거두며 마지막 매직넘버 `0.5'가 지워졌다.

두산 팬들에게 잠시 아픈 기억을 꺼내야겠다. 지난 2014시즌 두산은 송일수 감독과 호흡을 맞췄다. 송일수 감독의 스타일은 번트를 위주로 하는 '스몰볼'이었다. 두산의 야구 스타일과는 너무나 큰 차이가 있었다. 두산을 거쳐간 기라성 같은 선배 선수들은 물론이고 프런트마저도 생소한 현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선수들도 적응하지 못한 것은 당연했다. 게다가 송 감독 본인이 일본어만 구사가 가능하다보니 소통에 있어서도 문제가 많았다. 그렇게 두산은 그 해, 59승 68패를 기록하며 리그 6위로 가을야구 진출에 실패했다. 두산이라는 팀과 송일수 감독은 궁합이 맞지 않았다.

1년 만에 두산은 새로운 감독을 데려왔다. 1988년 2차 4라운드 지명을 받고 전신인 OB에서 프로 생활을 시작해 2001년 두산에서 은퇴한 프랜차이즈 포수 출신인 김태형 감독을 선임했다. 막상 주변의 여론은 좋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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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과 SK에서 배터리코치로 활약한 경력은 있었지만 인지도가 너무 없었고 40대 감독으로 부임하기에는 다소 무게감이 떨어진다는 이야기도 많았다.

정작 두산의 내부는 달랐다. 이름값은 중요하지 않았다. 곰처럼 넉넉하고 푸짐한 풍채는 자연스럽게 두산 이미지를 발산했고, 여기에 현역 시절 보여줬던 그만의 `뚝심'은 위기에 빠진 두산 야구를 일으켜 세울 적임자라는 데 이견이 없었다.

예상대로 김태형 감독은 밖에서 들려오는 쑤근거림 따위에는 신경쓰지 않고 조용히 제 갈 길을 걸었다. 취임 인터뷰에서 "두산이 가지고 있는 본래의 야구를 다시 찾겠다"고 말한 데서 `두산 야구'의 부활을 짐작케 했다.

그리고 지난해 `초보 감독' 김태형은 준우승만 다섯 차례나 했던 두산을 정규시즌 3위로 이끌었고 모두 14번의 포스트시즌 경기를 치르며 14년 만에 두산에 한국시리즈 우승컵을 바쳤다. KBO리그에서 최초로 같은 팀에서 선수와 감독으로 우승을 차지한 감독이라는 큰 훈장도 달았다.

그렇게 두산은 김태형 감독의 지휘 하에 2년차에 접어들었다. 지난 해는 삼성이 스스로 무너지면서 그 빈틈을 잘 노렸던 것이 두산의 우승 비결 중 하나였다. 하지만 올해는 박석민을 영입한 NC를 비롯해 대거 선수를 사들인 김성근 감독의 한화까지 프런트 내에서도 올해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김태형 감독은 그런 나약한 예상을 보기 좋게 날려버렸다. 21일 기준, 팀 타율 1위(0.297), 팀 평균자책점 1위(4.38), 팀 안타 1위(1411개), 팀 타점 1위(824점), 팀 최소실책 1위(70개), 팀 홈런 2위(172개), 팀 득점권 타율 2위(0.306) 등 투타에서 정상급 실력을 선보였고, 니퍼트-보우덴-유희관-장원준까지 도합 4명의 선발진이 모두 15승 이상의 성적을 거두며 리그를 초토화 시켰다.

누구보다 두산을 잘 알고 있는 감독이었다. 그만큼 두산이 어떤 스타일의 야구를 해야 이길 수 있는지를 알았다. 올해가 가장 대표적이었다. 뚝심 있게 믿고 버텨냈다. 잔플레이가 없었다. 지고 있는 상황, 혹은 박빙의 승부에서도 김태형 감독은 강공을 지시했다.

리그 최고의 타선을 앞세워 경기를 이끌어가니 상대 팀이 이를 버텨내기가 어려웠다. 자신들의 스타일이 아닌 두산의 경기에 끌려가는 양상이었다. 프런트와 팬이 바라는 두산의 상징인 곰 같은 야구, 뚝심 있고 묵직하게 걸어나가는 야구를 김태형 감독은 보여줬다.

전날 kt와의 경기 전에도 김 감독은 "순간적인 판단으로 상황에 맞게 대응하고 전략을 짜는 방법도 좋지만, 생각보다 선수들에게 즉각적으로 전달되는 경우는 많지 않다. 그저 두산베어스 같은 '그런 야구'를 하는 것이 더 나은 것 같다"라고 두산의 야구를 정리하기도 했다.

그 결과가 바로 1995년 이후 21년 만에 차지한 정규시즌 우승이었다. 외모나 인상, 여러모로 곰과 닮은 김태형 감독이다. 그만큼 두산과의 궁합이 잘 맞다. 구단 역사상 최고의 두산으로 일컬어지고 있는 2016시즌의 두산이다. 김태형 감독, 그리고 두산의 시대가 열렸다.

김태형 감독과 김승영 사장. 스포츠코리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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