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대가 어떤 학교인가. 단순히 `야구 명문교'라고만 규정짓기에는 고려대 야구부의 역사는 깊고 넓다. 어쩌면 대학야구의 처음과 끝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로 존재감은 단연 으뜸이다. 이런 고려대가 2년제가 주축인 2부 리그의 동강대에 참패를 당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동강대는 지난 9일 춘천 의암야구장에서 펼쳐진 고려대와의 대회 1회전에서 11-4, 7회 콜드게임승을 거뒀다. 2년제 대학인 동강대는 지난 2004년 3월 팀 창단 이래 처음으로 고려대를 꺾었다.
현장에서 경기를 지켜보던 야구인들은 이구동성으로 “역사에 남을 만한 승리다”라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고려대 출신 야구인들이 받은 충격은 더 컸다.
1982년 프로야구 원년 개막전 끝내기 만루홈런의 주인공으로 지금은 설악고 야구부를 지휘하고 있는 이종도 감독은 모교를 응원하기 위해 속초에서 한걸음에 달려왔다가 콜드게임 패배가 확실해지자 믿을 수 없다는 듯 허탈한 표정을 지은 채 경기가 끝나기도 전에 서둘러 속초로 떠났다. 이 감독은 모교 야구부가 승리할 것으로 믿고 후배들을 격려하기 위해 춘천에서 하루를 묵을 계획이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런 이변이 발생하게 된 것일까. 첫 번째로 2년제 팀의 두터운 선수층을 꼽을 수 있다. 절대적인 선수단 규모뿐만 아니라 질적으로도 이미 4년제 대학팀이 뒤지지 않는다.
대학야구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최근 4년제 대학팀이 가장 무서워하는 팀이 2년제 대학팀이다. 실력이 좋은 선수가 4년제에 진학하는 것은 옛말이다”라고 전했다.
2년제 대학에 입학하는 선수들의 유형은 크게 두가지로 나뉜다. 이 관계자는 “실력이 다소 부족해 4년제 대학 진학에 실패한 뒤, 2년제 대학을 진학을 선택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뛰어난 실력을 갖추고 있음에도 프로구단의 지명을 받지 못해 잠시 거쳐 가는 곳으로 2년제 대학을 선택하는 선수들의 사례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그는 “이런 유형의 선수들은 어느 대학팀에 있더라도 주전을 뛸 수 있는 선수들이다. 2년을 마치고 프로구단 입단 재도전을 목표로 2년제 대학을 선택했을 뿐이다”라고 말했다. 일부 대학에서는 팀 전력을 상승시키기 위해 전략적으로 프로 진출에 아깝게 실패한 선수들을 중심으로 입학시키고 있다고 한다.
두 번째 이유로는 절실함으로 무장한 선수단의 정신력을 들 수 있다. 동강대 홍현우 감독은 고려대를 꺾은 요인으로 선수단의 절실함을 꼽았다. 그는 “2년제 대학 선수들은 4년제에 비해 경기에 나설 기회가 상대적으로 적다. 간절함의 차이가 승패를 가른 것으로 생각한다”라고 밝혔다.
그러나 그는 고려대와의 경기가 끝난 뒤 선수단을 모아 놓고 불호령을 내렸다. 경기 막바지 큰 점수차 리드에 방심한 탓에 2점을 내줬기 때문. 흡사 대패를 거둔 팀의 덕아웃처럼 냉기가 돌았다.
홍 감독은 “우리는 2학년이 끝나면 더 이상의 기회는 없다. 끝까지 최선을 다해야한다. 매 경기 독한 마음을 먹고 나서지 않는다면 고려대전 승리는 단순한 추억에 불과할 것이다”라고 선수들을 다그쳤다. 선수들 역시 홍 감독이 지적에 순순히 수긍했다.
환경적 요인에 의한 전력강화와 강한 정신력으로 무장한 2년제 대학팀들은 이번 대회에서 '제2의 동강대'를 꿈꾸고 있다. 동강대를 제외하고 직전 대회인 춘계 2부 리그에 참가했던 팀은 6개팀. 이중 2부 리그 우승팀인 한중대와 대학야구 관계자들 사이에서 다크호스로 꼽히는 영동대는 ‘동강대 발 태풍’을 이어갈 유력 후보들로 꼽고 있다.
과연 동강대가 몰고 온 2부 리그의 돌풍이 이번 대회를 어디까지 강타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현재 대학야구는 4년제 팀으로 이뤄진 1부 리그와 2년제 팀 주축인 2부 리그로 나눠져 있다. 4년제 대학으로 창단 3년이 지나면 1부 리그로 승격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