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최희섭, 서재응, 김병현. 스포츠코리아 제공
[스포츠한국 김성태 기자]광주일고 메이저리그 3인방 가운데 두 명이 정든 그라운드를 떠났다. 김병현 홀로 남았다. 팬들은 그저 아쉬울 따름이다.

지난 28일 최희섭에 이어 서재응이 공식적으로 은퇴를 선언했다. 후배들의 길을 터주기 위해 은퇴를 결심했다고 밝힌 서재응은 연봉협상까지 하며 차분하게 몸을 만들었지만, 선수협회장 자리에서 내려오면서 은퇴를 결심했고 조용히 선수생활의 종지부를 찍었다.

광주일고 출신 최희섭(37), 김병현(37), 서재응(39)은 한때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뛰며 국내 팬들을 즐겁게 해줬다. 최희섭은 1999년 고려대 중퇴 후, 시카코 컵스에 입단해 한국인 최초로 메이저리그 내야수로 뛰었다.

2002년부터 2005년까지 모두 4년간 모두 363경기에 출전해 타율 2할4푼 40홈런을 기록했다. 투수에서는 박찬호가 선구자 역할을 했지만 야수 가운데서는 이렇다할만한 선수가 없었다. 그 장벽을 깨고 빅리그에서 뛰었던 최희섭은 한국 최고의 타자였다.

서재응 역시 마찬가지다. 1996년, 해태의 우선 지명을 받았지만 인하대에 진학했고 이후 뉴욕 메츠에 입단했다. 이후 싱글A부터 트리플A를 거쳐 마이너리그에서 5년을 뛰었던 서재응은 2002년에 처음으로 메이저리그 무대를 밟았다.

이후 6년간 118경기를 뛰며 606.1이닝을 던지며 28승 40패 평균자책점 4.60이라는 기록을 남겼다. 한 때, 템파베이 레이스의 2선발로 주목을 받기도 했던 서재응의 존재감은 박찬호에 이어 한국 투수의 자존심을 살린 대표적인 케이스였다.

그러나 진짜는 따로 있었다. 바로 김병현이다. 성균관대 재학 중에 미국으로 건너간 김병현은 1999년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에 입단했고 2007년까지 보스턴, 콜로라도, 플로리다까지 4팀에서 모두 9시즌을 소화하며 모두 86세이브를 기록했다. 마무리와 더불어 특히 2001년 애리조나와 2004년 보스턴에서 두 번이나 월드시리즈 우승을 만끽하기도 했다.

미국에서 나란히 활약했던 광주일고 3인방의 첫 만남은 바로 KIA였다. 각각 2007년, 2008년에 KBO리그로 돌아온 최희섭과 서재응은 고향팀 KIA로 돌아왔다. 두 선수는 2009년에 함께 팀의 열 번째 우승을 이끄는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최희섭은 LG에서 트레이드 된 김상현과 함께 중심타선에서 제 역할을 해줬고 서재응 역시 선발진으로 뛰며 5승을 기록했다.

김병현은 미국과 일본을 거쳐 2012년 넥센 유니폼을 입고 한국 무대에 첫 발을 내딛었다. 2년간 뛴 후, 지난 2014년에 트레이드 되어 KIA로 왔다. 광주일고 3인방이 고향팀 KIA에서 다시 뭉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세 선수가 나란히 활약하는 모습은 보기 힘들었다.

최희섭은 고질적인 부상으로 인해 1군에서 모습을 감춘 지 오래였다. 서재응 역시 2012시즌부터 선발이 아닌 불펜에서 뛰었다. 세 선수가 겨우 함께 1군 무대에 선 것은 바로 2015시즌이었다. 하지만 오래가지 못했다. 최희섭은 5월까지 뛴 후, 부상으로 출전하지 못했다. 서재응은 모두 9경기에 출전했지만 1승 4패로 마감했다.

김병현 역시 23경기를 뛰었지만 승리 없이 5패 평균자책점 6.98로 기대에 미치지 못한 성적을 냈다. 끝내 최희섭은 2015시즌이 끝나고 은퇴를 선언했고 연봉협상까지 끝내고 현역 연장을 바랬던 서재응 역시 후배들에게 길을 내주기 위해 은퇴를 결심했다.

그렇게 김병현 홀로 그라운드에 남게 됐다. 광주일고에서 시작해 미국을 거쳐 한국으로 돌아와 KIA에서 선수생활을 마감하기까지, 세 선수의 야구인생은 그야말로 파란만장 했다. 그렇게 메이저리거 1세대가 저물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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