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한국 박대웅 기자] 한국이 프리미어12 초대 우승의 기쁨을 만끽했다.

김인식 감독이 이끄는 한국 야구대표팀은 21일 일본 도쿄돔에서 열린 미국과의 프리미어12 결승전에서 8-0으로 승리를 거뒀다.

지난 8일 삿포로돔에서 열린 일본과의 개막전에서 영봉패로 아쉽게 첫 발을 내딛었던 대표팀은 대만 입성 이후 분위기를 빠르게 수습했고, 도미니카, 베네수엘라, 멕시코를 연달아 무너뜨리며 쾌조의 3연승 행진을 내달렸다.

이후 미국에게 패해 B조 3위로 내려앉았지만 8강에서 격돌한 쿠바를 무너뜨린 뒤 4강에서는 일본에 9회 극적인 뒤집기 승리를 따내며 설욕에 성공했고, 미국에게 다시 한 번 지난 패배의 아픔을 되돌려주며 대회 정상에 올랐다. 총 2주 동안의 다사다난했던 한국 대표팀의 우승 과정과 그 속에서의 명장면들을 정리해봤다.

도미니카전에서 극적인 역전 투런포를 쏘아 올리며 대표팀의 타격 침묵을 깨뜨린 이대호. 연합뉴스 제공
▶①‘조선의 4번타자’ 이대호, 침묵을 깨다

한국은 일본과의 개막전 영봉패에 이어 예선 라운드 2차전 상대였던 도미니카에게도 6회까지 점수를 뽑아내지 못하며 총 15이닝 연속 무득점의 수모를 이어갔다. 그러나 대표팀의 4번타자 이대호가 이같은 침묵을 걷어냈다.

0-1로 뒤진 7회초 선두타자 이용규의 볼넷과 김현수의 2루수 땅볼로 만든 1사 2루 기회에서 타석에 선 이대호는 도미니카 두 번째 투수 론돈의 2구째를 통타, 좌측 담장을 넘어가는 투런 홈런을 쏘아 올렸다. 이 강력한 한 방으로 대회 첫 득점에 성공한 한국은 분위기가 완벽히 살아났고, 결국 8회에는 5점, 9회에도 3점을 추가로 보태는데 성공하며 10-1 완승을 가져갈 수 있었다.

베네수엘라전에서 멀티포를 쏘아올린 황재균. 연합뉴스 제공
▶②황재균, 배트 플립 대신 연타석포 선보이다

베네수엘라전에서는 황재균의 활약이 가장 빛났다. 선발 7번 3루수에 배치된 황재균은 3-2로 불안한 리드를 지켜가던 4회말 선두타자로 나서 상대 3번째 투수 로베르토 팔렌시아로부터 좌월 솔로 홈런을 쏘아 올리며 안정을 찾는데 기여했다.

그는 5회에도 다시 한 번 4번째 투수 카라바요로를 상대로 좌측 담장을 넘어가는 아치를 그려내는 등 4타수 4안타(2홈런) 3타점 2득점을 기록, 승리의 일등공신이 됐다. 메이저리그까지 소개가 될 정도로 화제를 낳았던 ‘배트 플립’ 대신 이번에는 진정한 괴력을 선보이며 본인의 이름을 떨쳤다. 결국 팀 내에서 중심타선을 제치고 홈런 1위를 차지한 것도 황재균이었다.

경기 직후 한 대만 기자의 배트 플립 질문에 황재균은 “한국에서 오래 야구를 하며 버릇처럼 가지고 있던 습관이다. 하지만 소속팀 외국인 선수들에게서 그런 액션을 취하면 되돌려받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아직 생각만큼 잘 고쳐지지는 않는다”며 쑥스러운 듯 미소를 지었다.

멕시코전에서 3이닝 8탈삼진을 솎아내는 괴력을 발휘한 차우찬. 스포츠코리아 제공
▶③차우찬, KBO리그 탈삼진왕의 위엄

이번 대회 롱릴리프로서 가장 존재감을 떨친 선수는 단연 차우찬이다. 총 4경기에 등판해 9이닝 4피안타 4볼넷 12탈삼진 1실점의 호투를 선보이며 대표팀을 여러 차례 위기에서 구해내고 반격의 발판을 마련했다.

특히 멕시코전 등판이 백미였다. 이날 차우찬은 5회 1사 1루에서 3번째 투수로 등판해 볼넷 및 폭투 실책 등으로 실점(비자책)을 내주기는 했지만 3이닝 동안 단 1피안타 1볼넷 밖에 허용하지 않은 가운데 탈삼진을 무려 8개나 솎아내며 KBO리그 탈삼진왕의 위엄을 한껏 드러냈다.

쿠바와의 8강전은 두산 선수단이 KBO리그 우승팀의 자존심을 한껏 드러내며 팀 승리를 이끌었다. 연합뉴스 제공
▶④‘두산민국’의 힘

미국과의 예선 라운드 마지막 경기에서 패하며 B조 3위로 밀려난 한국은 경기 직후 경기장에 화재가 발생하면서 8강전이 열리는 장소가 타이중 인터컨티넨탈구장으로 급히 변경되는 사태에 휘말렸다. 버스로 경기장까지는 최소 2시간이 넘는 이동 거리. 반면 A조 2위 쿠바는 예선 라운드를 줄곧 타이중 지역에서 소화했기 때문에 한국으로서는 컨디션 관리에 보다 어려움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KBO리그 우승팀 두산 선수단이 맹활약을 펼치며 쿠바전 승리의 중심에 섰다. 선발 마스크를 착용한 양의지는 3타수 3안타(1홈런) 2타점 2득점 1볼넷의 불방망이를 휘둘렀고, 김현수(3타수 2안타 1타점)와 민병헌(4타수 2안타 1타점 1득점), 김재호(2타수 1안타 1득점) 역시 각자의 위치에서 제 몫을 다해내며 승리를 뒷받침한 것.

이 밖에 마운드에서는 선발 장원준이 4.2이닝 4피안타 2볼넷 3탈삼진 2실점으로 한국의 기선제압을 이끌었고, 이현승이 마무리투수로 등판해 0.2이닝 1피안타 1탈삼진 무실점으로 경기를 매듭짓는 등 험난한 포스트시즌 일정을 치르며 생긴 부상 및 피로 누적에 아랑곳하지 않고 챔피언팀의 자존심을 지켜냈다.

일본과의 4강전에서 9회 대역전 드라마의 시작을 알렸던 오재원. 연합뉴스 제공
▶⑤‘국민 식빵’의 탄생

평소 두산이 아닌 상대팀 팬 입장에서 오재원은 얄미움의 대상이었다. 오재원 특유의 허슬플레이가 때로는 과도하게 표출되면서 논란을 일으킬 때도 많았다.

그러나 오재원은 일본과의 4강전 활약을 통해 ‘국민 식빵’이라는 새로운 별명을 얻었다. 8회까지 단 1안타 밖에 터뜨리지 못하며 패배의 벼랑 끝까지 몰려있던 상황에서 김인식 감독은 9회 선두타자로 대타 오재원 카드를 꺼내들었고, 오재원은 일본 프로야구 2년 연속 탈삼진왕 노리모토 다카히로를 상대로 좌전 안타를 터뜨리며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대반격의 시작을 알리는 한 방이었다.

이후 타자일순하며 다시 한 번 타석에 들어선 오재원은 비록 중견수 플라이에 그치기는 했으나 중앙 담장 깊숙한 곳까지 타구를 때려낸 뒤 화려한 배트 던지기를 선보이며 한국 팬들의 마음을 시원하게 뚫어줬다.

이대호가 일본시리즈 MVP이자 '조선의 4번타자'로서의 위용을 뽐내며 4강 역전 적시타를 때려냈다. 연합뉴스 제공
▶⑥이대호, 약속 지킨 일본시리즈 MVP

일본과의 4강전은 명장면이 하나 더 탄생했다. 오재원이 반격의 시작을 알리는 포문을 열었다면 이대호는 승부를 뒤집는 타점을 터뜨리며 일본시리즈 MVP의 위엄을 뽐냈다.

개막전 패배 이후 이대호는 깨끗한 패배를 인정하면서도 “앞으로 갚아주면 된다. 쪽팔리게 두 번 일본에게 당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며 강한 어조로 복수에 대한 의지를 불태웠다.

그는 이같은 일본전 설욕 약속을 기어이 지켜냈다. 2-3으로 뒤져있던 9회초 무사 만루에서 마쓰이 히로토시의 4구째 시속 136km 포크볼을 그대로 받아쳐 좌전 안타를 기록, 주자 2명을 홈으로 불러들인 것. 극적인 역전 드라마를 완성시킨 그는 이날 경기 최우수선수로 선정되며 승리의 기쁨을 두 배로 만끽했다.

온갖 어려움을 딛고 당당히 세계 정상에 우뚝 선 대한민국 야구대표팀. 연합뉴스 제공
▶⑦완벽했던 결승전 그 자체

대표팀의 마지막 베스트 장면은 미국과의 결승전, 시작과 끝 모든 순간으로 선정했다. 일본이라는 숙적을 이미 격파했지만 야구 강국이 총출동하는 대회에서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 이후 7년 만의 세계 정상 탈환을 이루기 위해서는 미국이라는 마지막 벽을 넘을 필요가 있었다. 예선 라운드 마지막 경기에서도 연장 10회 승부치기 끝에 패배를 안겨줬던 팀이 바로 미국이다.

당시 2루심의 다소 석연찮은 판정에 짙은 아쉬움을 삼켜야 했던 한국으로서는 결승 무대에서 완벽한 설욕전을 꿈꿨고, 결국 8-0이라는 압도적인 실력 차를 선보이며 당당히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특히 이날 경기에서는 그동안 부진했던 선수들이 대거 살아나며 마지막까지 믿음을 보낸 김인식 감독의 기대에 부응했다. 준결승까지 팀 내에서 가장 저조한 타율을 기록 중이던 이용규는 미국을 상대로 4타수 2안타 1타점 2득점 1볼넷 1사구를 기록하며 자존심을 회복했고, 마찬가지로 1할대 타율에 1타점 밖에 생산하지 못한 박병호 역시 쐐기 스리런포를 쏘아 올리며 메이저리그 진출을 앞둔 자의 위용을 뽐냈다. 김광현 역시 두 차례 실패를 딛고 5이닝 무실점의 완벽투를 선보이는 등 결국 모든 선수들이 제 몫을 다해내면서 ‘팀 대한민국’의 위력을 세계에 떨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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