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한국 윤지원 기자]한국 프로야구는 출범 첫 해인 1982년부터 2015년까지 팬들과 같이 울고 웃으며 국민 스포츠로 자리잡았다. 여러 팀이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지만, 두고두고 회자되는 포스트시즌은 열 손가락 안에 꼽는다. 2015년, 영예로운 '기억할 만한 포스트시즌' 리스트에 두산이 추가됐다. 24년 간 두산의 영욕을 함께한 김승영 사장이 털어놓는 2015 두산 가을야구의 뒷얘기를 들어본다.

인터뷰에 앞서 잠실야구장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두산 베어스 김승영 사장. 사진=이혜영 기자 lhy@hankooki.com
▶ 스와잭, 메이저리거답지 못한 자세
두산 외국인 선수에 대해 대화를 나누던 김승영 사장은 앤서니 스와잭 얘기가 나오자 얼굴을 약간 굳혔다. 스와잭에 대한 평가는 단호했다. “메이저리거답지 못했다. 실망했다.”

스와잭이 제외된 것은 태업 때문임이 드러났다. 같은 메이저리그에서 뛰었던 한화 에스밀 로저스와 자신의 연봉을 비교했다는 볼썽사나운 말이 돌기도 했다. 그러나 김승영 사장은 "로저스를 들먹일 정도까진 아니었다"고 잘랐다.

사연은 이랬다. 넥센과의 준플레이오프가 끝나고 스와잭은 팔에 근육통이 있어 아파서 던지지 못하겠다고 버텼다. 그러나 덧붙인 말이 화근이 됐다. “내가 아픈데도 불구하고 나간다면 상대팀에게 점수를 많이 허용할 수 있다. 내가 큰 점수로 지면 나도 두산에게 미안하고 두산도 내게 미안하지 않겠느냐. 서로 미안해질 바에는 던지지 않겠다”고 말했다.

스와잭의 황당한 논리에 할 말을 잃은 김태형 감독은 “그럼 나오지 말라”고 세게 나갔다. 김 사장도 전폭적으로 감독을 지지했다. 두산은 스와잭 없이 가을야구를 하면서 투수진의 공백을 느꼈지만 오히려 스와잭의 이기적인 태도가 선수들에게 더욱 응집력을 만들어줬다.

김 사장은 스와잭이 메이저리그 출신으로서 한국 야구에 대해 진지하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지난 6월 두산 입단후 첫 경기, 롯데전에서 불펜투수로 나온 스와잭의 초구는 전광판에 148km을 찍었고 연이어 투 스크라이크를 만들었다. 관중들은 ‘와’하는 탄성을 질렀다.

거기까지였다. 3구째부터는 타자가 공을 커트했다. 아웃카운트를 잡아내긴 했지만 과정이 좋지 않았다. 이후에도 포수 양의지의 사인을 무시하고 던질 정도의 자부심과 자존심으로 마운드에 섰지만 스와잭의 공은 좋지 않았고, 결국 코칭스텝이 ‘포수 리드대로 하라’고 충고하고 나서부터는 좀 나아졌다고 한다.

김 사장은 “생각대로 안되니까 자존심이 좀 상한 것 같다. 그걸 티내기는 싫고 혼란스럽기도 하니까 그런 핑계를 댄 것 같다. 남자답지 못하더라”고 평가했다. 선수가 아프다는데 ‘우승을 위해 참고 던져라’고 모른 척 할 두산이 아니다. 그러나 그런 태도와 인성으로는 두산에 더 이상 남을 필요가 없었다. 스와잭은 이미 10월 말 출국했다.

▶ 2013년만큼은 반복할 수 없다! 서울에서 끝내자
두산 야구를 보는 모든 사람들이 그랬겠지만, 김승영 사장은 “대구만큼은 다시 내려가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고 회고했다. 아마도 시리즈가 대구까지 이어진다면 우승은 힘들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떨치지 못했다. 3승1패로 앞서다 3연패를 당해 허망하게 우승컵을 삼성에 넘겨줬던 2013년 악몽을 그는 잊을 수가 없었다.

가을에 부활한 니퍼트가 정규시즌 부진을 만회하겠다는 각오로 NC 4차전과 삼성 2차전에서 상대를 ‘윽박지르는’ 구위를 보여줬지만 5차전에서 페이스가 조금 떨어졌다. 김 사장은 "니퍼트와 장원준이 힘들어하는 것이 보였다. 무조건 서울에서 끝내야 했다"고 말했다.

김 사장은 포스트시즌에서 가장 중요했던 경기로 삼성을 4-3, 1점차로 이긴 한국시리즈 4차전을 뽑았다. 9회초 만루의 위기상황에서 경기를 끝내버린 허경민과 김재호의 호수비가 백미였다고 한다. 평소 접전 상황에서 스트레스를 크게 받아 종종 경기를 눈이 아닌 귀로 듣는다는 김 사장은 "야구를 못 보는 줄 알았다"며 다시 한 번 짜릿했던 상황을 떠올렸다.

인터뷰에 앞서 잠실야구장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두산 베어스 김승영 사장. 사진=이혜영 기자 lhy@hankooki.com
▶ `미신베어스', 사장도 예외란 없다
우스갯 소리로 두산을 나타내는 말로 ‘미신 베어스’가 있다. 대부분의 스포츠팀이 그렇듯 두산도 열혈팬과 더불어 안팎으로 징크스가 많다.

포스트시즌 중 ‘직관승(직접 관전한 경기에서 승리했다는 줄임말)할 때 입었던 옷을 그대로 입는다’, ‘이겼을 때 먹고 있던 치킨만 계속 시키겠다’는 팬들이 많았고, 선수들은 인터넷에 돌아다니던 ‘두산 우승 점친 점쟁이 이야기’를 문자로 공유했으며 김 감독과 프런트 직원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김승영 사장도 징크스가 있었다. “플레이오프 때 새벽 잠결에 머리맡에 있는 디지털 시계를 봤는데 4시 44분이었다. ‘4가 이렇게 많은데 이건 4번째 우승을 예시하는 건가’라고 생각했다”면서 껄껄 웃었다. 카톨릭 신자인 김 사장은 한국시리즈를 서울에서 치르는 3일 내내 새벽 미사에 나가 간절히 기도했다.

김태룡 단장의 에피소드도 들려줬다. 준플레이오프 때 김 단장이 조금 늦길래 이유를 물으니 점을 보고 왔다며 좋은 점괘가 나왔다고 기뻐하더란 것이다. 점괘를 들려주지 않던 김 단장은 나중에 넌지시 “보살이 ‘NC전 표를 구해달라’고 했다”고 한다. 넥센과 전적이 1승1패였던 때였다. 기가 막히게 들어맞은 셈이다.

김 사장은 “징크스죠 뭐, 상황이나 여러 요소들을 유리하게 합리화하는 거예요”라고 무심한 듯 말했지만 내심 뿌듯한 표정이었다. 김 사장은 지난 7월 5일 주위서 풍수지리적으로 좋은 터라는 곳으로 이사했는데, 이것저것 서류상의 문제로 이전 신고를 10월 22일에야 했다. 같은 날, 두산은 플레이오프 4차전에서 NC를 7-0으로 압승하며 한국시리즈에 진출했다. 그날은 김 사장의 생일이기도 했다.

[위클리베이스볼]'24년 뚝심' 두산 김승영 사장이 말하는 두산 야구 그리고 우승

저작권자 © 스포츠한국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