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호. 스포츠코리아 제공
[스포츠한국 이재현 기자] 미국 메이저리그(이하 MLB)로부터 1,285만 달러라는 포스팅 금액을 받아든 ‘홈런왕’ 박병호(29·넥센). 하지만 이 같은 평가는 거저 얻어낸 것이 아니다. 한국 무대가 좁아 보일 정도로 맹활약을 펼쳤던 그의 경기력이 뒷받침 됐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미국 메이저리그 진출을 선언한 ‘홈런왕’ 박병호(29·넥센)의 포스팅 결과가 밝혀졌다. 그를 원하는 팀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넥센은 7일 오전 KBO로부터 1,285만 달러라는 포스팅 응찰액을 통보 받았다. 한화로 약 147억원에 달한다. 과거 한솥밥을 먹었던 강정호(28·피츠버그 파이리츠)의 포스팅 금액(500만 2,015달러)을 훌쩍 뛰어넘는 액수. 넥센은 즉시 이 조건을 수용하기로 결정했다.

‘강정호 효과’ 역시 분명 있었음을 부정할 수는 없지만, 박병호의 KBO리그 기록을 조금이라도 살펴본다면 그를 향한 거액의 포스팅 금액은 ‘거품’이 아닌 ‘당연한 대우’였다.

지난 2005년 LG의 부름을 받아, 프로에 데뷔한 그는 정의윤(현 SK)과 더불어 팀을 이끌 차세대 거포로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그는 LG의 기대와 달리 ‘미완의 대기’로 남고 말았다. 2009년에 들어서야 ‘2할대(2할1푼8리)’의 타율을 기록했을 정도로 그의 타격감은 저조했다.

2010년에는 다시 1할대 타율로 곤두박질 친 그는 2011년 마지막을 재기를 노렸다. 하지만 2011년 7월 19일까지 1할2푼5리의 타율, 1홈런에 그쳤던 탓에 그는 밀려나듯 LG를 떠나야 했다. 같은 달 31일 2대2 트레이드를 통해, 넥센의 유니폼을 입은 것.

하지만 넥센 입단은 그의 인생 최대 전환점이었다. ‘미완의 대기’가 ‘초대형 거포’로 다시 태어나는 순간이기도 했다.

2011시즌 2할5푼4리의 타율을 기록하며 부활의 기지개를 켠 박병호는 2012년에는 2할9푼의 타율 31홈런을 기록하더니 2013년에는 마침내 3할 타율(3할1푼8리)을 넘고 홈런 역시 37개를 기록하게 된다. 2시즌 연속 홈런왕은 물론 타점왕까지 오르는 겹경사를 맞기도 했다.

2014년에도 그의 활약은 계속됐다. 불 붙은 타격감은 식을 줄 몰랐다. 정규시즌에서 52개의 홈런을 때려낼 정도로 그는 불방망이를 자랑했다. 강정호와 더불어 맹활약을 펼친 그는 넥센을 정규리그 2위에 올려놓고 생애 첫 한국시리즈 무대까지 밟게 된다.

비록 삼성에 밀려 우승에는 실패했지만, 충분히 인상적인 한 해였다.

팀 동료였던 강정호가 2015시즌을 앞두고 피츠버그 파이리츠로 떠났지만, 박병호의 활약은 계속됐다. 강정호의 MLB 진출이 오히려 더 강한 자극제가 됐다. 매 경기 전 훈련에서 구슬땀을 흘리며, 공을 치고 또 쳤다.

기량은 한층 성숙해졌다. 2015 KBO리그는 그야말로 박병호의 무대였다. 그는 프로 데뷔 이래 최고의 타율(0.343)을 기록한 데 이어 리그 최다 홈런(53개)과 타점(146타점)을 올린 완성형 거포가 됐다. 리그 내 최고의 타율(0.381)을 자랑했던 ‘괴물타자’ 테임즈도 박병호의 홈런과 타점 기록을 따라갈 수 없었다.

이렇게 압도적인 실력을 과시했지만 박병호는 시즌 내내 MLB 진출에 대해 극도로 함구했다. 오로지 주어진 일, 즉 팀 성적을 올리는 데만 집중했다. MLB 진출 선언이 자칫 팀에 악영향을 끼칠지 모른다는 생각이 앞섰던 것.

그의 판단은 결과적으로 옳았다. 리그 4위로 포스트시즌에 진출한 넥센은 와일드카드 결정전에서 SK를 꺾고 준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비록 1승3패로 두산에 밀려, 플레이오프 진출이 좌절됐지만 박병호 만큼은 준수했다. 준플레이오프 2차전에서는 ‘포스트시즌 극강의 투수’ 니퍼트를 상대로 홈런을 기록하기도 했다.

다사다난했던 2015시즌이 완벽하게 종료된 시점에서 박병호는 MLB 진출의 첫 관문을 무사히 넘었다. 선수들을 평가하는 데 있어 무서울 정도로 냉정하다는 MLB 구단들을 매혹시키는 데 제대로 성공했다. 정규시즌 동안 박병호의 홈런을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던 MLB 스카우트들의 반응은 거짓이 아니었다.

이제는 조금 홀가분해져도 괜찮을 법도 하지만, 박병호는 여전히 진중한 모습을 유지했다. 바로 자신이 속한 한국 대표팀의 야구 국제 대회인 프리미어 12 때문이었다. 오는 8일 일본과의 개막전을 앞두고 있는 만큼, 당분간 MLB 진출 보다는 대표팀에 ‘올인’ 하겠다는 책임감을 드러냈다.

포스팅 관련 소식을 통보 받은 박병호는 “지금까지 메이저리그 진출을 위해 도와주신 구단과 주위 분들께 감사드린다”며 “포스팅 결과가 좋게 나왔는데, 그만큼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 아직 MLB진출까지 여러 과정이 남아있는 만큼 신중하게 고려하고 결정 하겠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8일부터 삿포로돔에서 시작되는 프리미어 12에 참가하기 때문에 지금은 대표팀 구성원으로서 맡은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여 팀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도록 집중하겠다”라고 덧붙였다. 그의 포스팅 소감에서는 MLB 진출에 대한 기쁨 보다는 강한 책임감이 묻어나왔다.

‘대기만성’의 표본으로 KBO리그를 호령했던 박병호가 이제는 다소 좁게 느껴지는 한국 무대를 떠나는 것은 당연한 수순처럼 보인다.

박병호는 곧 MLB 사무국으로부터 포스팅 최고 응찰액을 제시한 구단명을 통보 받게되면 이후 공식 에이전트를 통해 30일 동안 연봉 협상을 진행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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