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 이글스 제공
[스포츠한국 청주=박대웅 기자] 2013시즌을 최하위로 초라하게 마친 한화가 화끈하게 돈 보따리를 풀었다. 정근우와 이용규를 총액 137억원에 FA 영입하며 순식간에 국가대표 테이블 세터진을 구축한 것.

당시 두산(172도루)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70도루에 그치며 독수리가 아닌 거북이 군단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 있었기 때문에 한화 팬들은 두 선수가 불러올 시너지 효과에 부푼 기대감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나 첫 해의 결과는 아쉬웠다. 먼저 어깨 부상으로 지명타자로만 나섰던 이용규는 2014시즌 104경기에서 타율 2할8푼8리(358타수 103안타) 20타점 62득점 12도루에 그쳤다. 정근우의 경우 125경기 타율 2할9푼5리(464타수 137안타) 6홈런 44타점 91득점 32도루로 나름 분전했으나 역대급 타고투저 시즌이었음을 감안했을 때 마찬가지로 기대치를 온전히 충족시키지 못한 것은 사실이다.

무엇보다 2014시즌에는 두 선수가 테이블 세터로서 호흡을 맞추는 모습조차 자주 목격할 수 없었다. 이용규는 1번에서 총 374타석을 소화했지만 정근우의 경우 1번(178타석), 2번(177타석), 3번(181타석)을 계속해서 오가며 팀에 부족한 부분을 채우는데 주력했기 때문.

한솥밥을 먹은 지 2년 차인 올해는 분명 두 선수 모두 3할 타율을 훌쩍 넘어서는 등 마침내 몸값과 클래스에 걸맞은 활약을 펼쳐주고 있다. 단, 테이블 세터로서의 시너지라는 측면에서만 놓고 보면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뚜렷한 파급 효과를 내지 못했음을 부정하기 어렵다.

시즌 초반에는 정근우에게 예기치 못한 악재가 있었다. 스프링캠프에서 하악골 골절 판정을 받은 그는 최대한 복귀를 앞당겨봤지만 5월까지 타율 2할1푼5리에 머물며 냉정히 팀 전력에 마이너스 요소나 다름없었다. 4월 후반부터 본격적으로 2번에 배치됐으나 이용규와는 이렇다 할 시너지를 내지 못했다.

이후 정근우는 일정을 거듭할수록 빠르게 폼을 끌어올렸지만 6월부터 두 달 동안 2번 타자로 단 6타석에 들어섰을 뿐이다. 김경언의 부상 공백을 채우기 위해 3번(145타석)에 사실상 고정적으로 배치됐으며, 김경언이 돌아온 이후로도 한동안은 타순에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이는 3번 자리에서 정근우가 완벽한 부활을 알린 것도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으며, 희생번트를 중시하는 김성근 감독의 성향과도 밀접한 연관이 있다. 즉, 이용규의 타율과 출루율이 뛰어나기 때문에 그를 2루까지 안착시키려는 시도 역시 자연적으로 늘어나게 됐는데 정근우에게 희생번트를 자주 지시하기에는 그의 역량을 썩히는 결과를 낳을 수 있었던 것. 김 감독은 주로 강경학과 권용관에게 이 역할을 대신 맡겼다.

이용규와 정근우가 테이블 세터로 다시 호흡을 맞추기 시작한 것은 이용규가 부상에서 돌아온 8월 후반부터다. 물론 이 시기에도 김 감독은 계속해서 타순 변경을 시도하며 이용규와 정근우를 매번 나란히 붙이지는 않았다. 두 선수가 테이블 세터로 배치된 경우에도 평소와 달리 침묵을 지킬 때가 많았고, 팀 역시 승리와 줄곧 인연을 맺지 못했다. 실제 이용규-정근우 테이블 세터진이 나란히 안타를 신고한 가운데 팀 승리까지 이끈 것은 지난 5월5일 kt전 이후 이번이 처음이다.

이처럼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말과 정반대의 길을 걷고 있던 두 선수였기 때문에 KIA전의 동반 맹활약(정근우 4타수 3안타 3득점 1볼넷 1도루, 이용규 5타수 4안타 2타점 1득점)은 분명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이들은 1회와 3회, 6회와 8회 안타 또는 볼넷 등을 연달아 기록하며 지속적으로 KIA 수비를 뒤흔드는 모습을 선보였다.

비록 팀은 패했지만 지난달 29일 두산전에서도 한화는 1번 이용규가 4타수 2안타, 2번 정근우가 3타수 2안타를 터뜨리며 시너지에 대한 기대감을 불러 모은 바 있다. 최근 번트 작전이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이용규→정근우, 또는 정근우→이용규로 곧장 연결되는 테이블 세터진 가동이 시즌 막판 한화의 새로운 득점 공식으로 자리 잡을 가능성도 한층 더 높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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