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심양면 도와주는 구단과 실력으로 보답하는 선수… '모범적인 사례'

[스포츠한국 김성태 기자] 말 그대로다. 정말 이런 외국인 타자가 또 있을까? 뒤지고 있는 상황임에도 팬들은 그가 타석에 들어서면 기대감과 희망을 감추지 못한다. 이러한 희망을 고스란히 승리로 가져다줬다. 그게 바로 KIA 필이다.

KIA는 29일 광주에서 열린 SK와의 경기에서 9회말에 터진 필의 끝내기 2타점 적시타로 역전에 성공, 5-4로 승리를 거뒀다. 28일 경기에 이어 2경기 연속 9회말 끝내기 승리를 일궈낸 KIA는 43승 47패를 기록하게 2연승을 달리게 됐다.

실제로 전날 KIA의 타선은 형편없었다. 선발 양현종이 7이닝 4실점의 역투를 펼쳤음에도 타선은 7회까지 11안타 2득점이라는 초라한 성적을 보여줬다. 하지만 이러한 타선의 난조를 단 한 방에 해결한 선수가 바로 필이었다.

9회, 타석에 들어서기 전까지 4타수 무안타로 침묵을 지키고 있었지만, 그는 후반으로 갈수록 더 날카로운 집중력을 유지했다. 대타 황대인이 신인의 패기가 담긴 시원한 헛스윙을 선보이며 물러났지만 팬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리그 최고의 마무리 중 한 명인 정우람을 상대로 낮은 공을 쳐서 적시타를 쳐내는 장면은 챔피언스 필드를 뜨겁게 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말 그대로 KIA에서 필의 무게감은 단순한 외인 타자 수준이 아니다. 필은 팀 내 규정타석을 채운 타자 가운데 유일한 3할대 타율의 보유자이며 득점권 타율은 3할7푼3리를 기록하고 있다. 특히 만루상황에서 그의 타율은 무려 8할. 5타수 4안타 2홈런 13타점의 기록은 그의 클러치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를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다.

실제로 타 팀에서 충분히 눈독을 들이며 노릴 수 밖에 없는 선수이기도 하다. 실제로 모 구단의 감독은 외인이 트레이드 시장에 나오면 어떻겠냐는 질문에 "사실 큰 차이가 없기에 생각할 필요가 없다. 그래도 굳이 말하자면 중하위권 팀에서는 KIA의 필 정도가 나오면 생각해 볼 수 있다"라고 말할 정도.

KIA 팬들은 벌써부터 내년 시즌에도 필이 KIA에서 뛰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꺼내고 있다. 그만큼 필이 보여주는 모습이나 실력은 타 팀 외인타자들이 부럽지 않은 수준. 하지만 필이 KIA에서 좋은 모습을 보이고 있는 이유는 구단 보이지 않는 노력이 매우 컸다.

지난 2014년 7월 27일, 필은 딸 킨리를 한국에서 얻었다. 일반적으로 외국인 선수들이 미국에서 아이를 낳고 다시 리그에 복귀하는 반면, 필은 광주에서 낳았다. 무엇보다 구단에서 지극정성으로 도와주었다는 것이 관계자의 말. 필 역시 구단에 상당히 고마워했다고 알려졌다.

또한 지난 6월 11일, 광주 넥센전에서는 필의 아버지인 마이클 필(56)이 손녀인 킨리와 함께 시구를 하며 팬들의 박수를 받기도 했다. 당시 KIA는 필의 아버지인 마이클 필과 어머니 켈리 필의 일정에 맞춰 이들을 시구자로 초청을 했다. 성사가 됐고 필 역시 아버지와 딸의 시구를 뒤에서 지켜봤다. 가족이 와서 시구를 하는 것 자체가 선수에게는 기쁜 일이 될 수 밖에 없다.

그 외에도 필과 KIA의 인연은 깊다. 지난 7월, 2015 하계유니버시아드 대회가 열린 광주에서 미국 대표팀으로 필의 모교인 캘리포아니아주립대 풀러턴캠퍼스(Cal State Fullerton)의 선수들이 참가했다. 일정상 만남이 쉽지 않을 것이라 여겨졌지만, 대표팀이 일정을 바꿔 직접 챔피언스필드를 찾아 필을 만나기도 했다. 짧은 시간의 만남이었지만 필에게는 매우 인상적인 순간이었다.

거기에 지난 27일에는 딸 킨리의 돌잔치가 광주 근처의 한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열렸다. 선수단과 구단 직원, 그리고 지인 등 50여 명이 모인 자리에서 필은 부인과 함께 한복을 입고 행사를 치렀다. '청진기'를 집어든 킨리의 모습에 현장 분위기 역시 화기애애 했다고 알려졌다.

이처럼 하나하나 알뜰살뜰 챙겨주는 구단이 있었기에 필 역시 더욱 쉽게 적응했고, 심리적으로 안정감을 찾을 수 있었다. 결국 야구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면서 필은 팀을 위해 활약할 수 있었다. 필이 KIA에서 지금의 성적을 낼 수 있는것도 구단이 물심양면으로 도와줬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실제로 필은 홈에서 유독 강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가 기록한 15개의 홈런 가운데 무려 12개가 챔피언스필드에서 터졌다. 필 역시 챔피언스필드에 오면 마음이 편하다는 이야기를 꺼낼 정도. 또한 팀이 만들어낸 7번의 끝내기 승리 가운데 3번을 필이 만들어냈다. 이쯤 되면 KIA에서 필의 무게감이 어느 정도인지를 쉽게 알 수 있다.

프로세계는 냉정하다. 자신의 가치를 알아주고 그에 걸맞는 대우가 주어지면 팀을 옮기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선수에게는 그 팀과의 궁합 역시 매우 중요하다. 금전적인 부분이 전부가 아닌, 구단이 진심을 다해 자신을 생각해주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어느 누구든 최선을 다해 뛸 수 밖에 없다.

어떤 스포츠를 놓고 보더라도 KIA와 필은 모범 사례가 되기에 충분하다. 최선을 다해 뛰는 필이 있기에 KIA가 현재의 성적을 유지하고 있고 KIA가 있기에 지금의 한국무대에서 뛰고 있는 필이 있다.

사진 = KIA 필, 유니버시아드 대회에 참여한 대학 후배를 만나고 있는 필. 스포츠코리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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