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한국 조형래 기자] 그들이 겪은 숱한 경험과 세월 앞에 도전이라는 말이 맞는 표현인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그 누구도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했던 야구 대표팀과 농구 대표팀의 사령탑에 각자의 분야에서 명망이 높은 두 노장 김인식(68) KBO 기술위원장, 김동광(62) MBC 스포츠플러스 해설위원이 선임됐다. 쉽지 않은 길을 가는 것이기에 두 노장들에게도 도전임이 틀림없을 것이다.

대한민국 스포츠에서 대표팀 감독의 자리는 언제나 '독이 든 성배'로 불려왔다. 국제대회에서 국가를 대표하는 팀의 수장으로 가장 명예로운 자리다. 하지만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했을 경우 온 국민으로부터 받는 비난과 질타를 감수해야 한다. 그렇기에 명예롭지만 섣불리 나서지 못하는 자리였다.

축구의 경우 일찌감치 대표팀 감독전임제를 실시하며 대표팀의 연속성을 이어왔다. 현재 울리 슈틸리케 감독이 축구 국가대표팀을 이끌며 2018년 러시아 월드컵을 대비하고 있다. 축구는 A매치가 주기적으로 열리고 월드컵을 비롯해 아시안컵 등 굵직굵직한 대회와 그 예선이 해마다 열린다. 감독 전임제는 필수적이었다.

하지만 야구와 농구의 경우 대표팀 감독전임제는 '머나먼 꿈'이었다. 우선 축구와 같이 주기적인 국가대항전이 열리지 않았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이자 문제였다. 그러나 언제나 감독전임제를 통해 대표팀의 연속성을 유지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꾸준히 나왔다.

전례로 봤을 때 국가대항전, 국제 대회는 국내 프로의 열기를 고무시키는데 특효약이었다. 2008 베이징 올림픽 이후 국내야구는 중흥기를 맞이했다. 농구도 마찬가지다. 또한 국가대표팀 경기를 통해 대표팀의 대외 경쟁력을 강화시키는 효과도 낼 수 있다.

국가대항전의 중요성이 높아짐에 따라 감독 전임제의 목소리는 더욱 높아졌다. 결국 야구는 WBSC(국제야구·소프트볼연맹)에서 개최하는 ‘프리미어 12’와 중국 장사에서 열리는 남자 선수권 대회에서 대표팀을 전담할 감독을 뽑기로 협회 내부적으로 의견을 모았다.

야구는 그동안 '국가대항전이 열리는 이전 시즌 한국시리즈 우승팀 감독이 대표팀을 맡는다'는 기형적인 논리로 감독을 선임해왔다. 야구 규약 '국가대표팀 운영규정 3조 1항'에는 야구 국가 대표팀 감독은 KBO 총재가 전년도 우승팀 감독 혹은 준우승팀 감독순으로 선임하도록 돼 있다.

한국시리즈 우승팀 감독이 국내 최고의 감독이라는 사실임에는 부정할 순 없지만 프로팀에 몸담고 있는 상황에서 이들은 적잖은 부담을 느꼈다. 여기에 '프리미어 12'의 경우 올해 11월 8일부터 21일까지 일본과 대만에서 분산 개최된다. 장마철 등 변수가 많은 리그 일정 때문에 자칫 포스트시즌 기간과 겹칠 수 있다. 대표팀 감독을 맡는다면 소속팀을 내팽겨 치다시피 한 채 대표팀을 맡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지난해 한국시리즈 우승팀 감독인 삼성 류중일 감독은 이런 이유 때문에 대표팀 감독 얘기에 고개를 가로젓거나 웃어 넘기는 일이 많았다. 류중일 감독은 대표팀 감독이 선임된 이후 지난달 30일 목동 넥센전에 앞서 "한국시리즈에 간다고 가정을 하고 계산을 해보니 11월 5일에 일정이 끝나더라. 국내 선수들을 파악하기도 시간이 없고, 다른 팀 전력 분석할 시간도 촉박하다. 어쩔 수없이 거절했다. 김인식 감독님께는 후배 감독으로서 미안하다"고 말했다.

그러자 지난해 한국시리즈 준우승팀인 염경엽 감독에게도 대표팀 감독 제의가 왔었다. 하지만 염 감독 역시 KBO에 거절 의사를 내비쳤다. 염 감독은 "저에게는 정말 좋은 기회다. 이장석 대표 역시도 '좋은 기회이지 않냐. 구단은 감독님의 뜻대로 움직이겠다'고 하셨다"고 말했다. 넥센 구단도 사실상 '오케이 사인'을 냈다. 하지만 염 감독은 장고 끝에 대표팀 감독 제의를 거절했다. 그는 "나는 아직 3년차에 불과한 감독이다. 열심히는 할 수 있지만 정말 잘 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더 많은 경험을 쌓고 다음 기회를 생각해보겠다"고 하며 거절의 이유를 내비쳤다.

결국 KBO는 전임감독제를 위해 김인식 KBO 기술 위원장을 선임했다. 김인식 감독이 누구인가. 2006 WBC를 4강으로 이끌고, 2009 WBC 때는 다른 감독들이 대표팀 감독을 고사한 가운데 뇌졸증 후유증으로 거동이 불편함에도 대표팀을 이끌고 준우승이라는 업적을 달성했다. '국민 감독'으로 칭송 받았다.

남자 농구의 경우는 야구보다 상황이 심각했다. 주먹구구식으로 대표팀 감독을 선임해왔다. 지난 2013년 FIBA 아시아 선수권 때부터 시작해서 지난해 2014 FIBA 월드컵까지 모비스 유재학 감독이 사실상 전임 감독처럼 맡아왔다, 하지만 유재학 감독은 계속된 대표팀 운영으로 인태 소속팀에 신경 쓸 시간을 갖지 못했다. 지난 2014-2015시즌 챔피언결정전에서 모비스를 챔피언으로 이끈 뒤 가진 기자회견에서 유 감독은 올해 비시즌만큼은 쉬고 싶다는 의견을 내비쳤다.

결국 FIBA 남자 아시아 선수권을 앞두고 대한농구협회 경기력향상위원회는 감독을 공개 모집하는 상황까지 이르렀다. 하지만 이마저도 여의치 않았다. 공개 모집에는 단 한 명만이 지원하는 촌극이 발생했고 결국 어쩔 수없이 후보 추천을 통해 감독을 선임해야 했다. 그리고 농구 원로 김동광 해설위원이 대표팀을 맡게 됐다.

이들 모두 쉽지 않은 상황에서 대표팀 감독 제의를 수락했다. 김인식 감독은 지난 2009년 한화 감독에서 물러난 이후 KBO 기술위원회에 몸담으면서 대표팀과 가까이 있었다. 그리고 대표팀 감독의 무게를 알고 있었고 비난의 화살도 자신에게 쏠릴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누구도 맡지 않는 여건 속에서 직접 총대를 멨다. 김동광 감독도 마찬가지. 해설을 하면서 한국 농구를 위해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던 그는 대표팀 감독을 통해 2013-2014시즌 서울 삼성 감독에서 물러난 이후 다시 현장으로 돌아왔다.

'프리미어 12'는 약 4개월, FIBA 남자 아시아 선수권은 두달 가량 남았다. 경쟁자들은 일찌감치 준비를 하고 있다. 일본 야구는 고쿠보 히로키 감독을 선임한 이후 지난 비시즌 메이저리거들과의 경기를 통해 경쟁력 향상을 도모했다. 남자 농구 농구 역시 중국은 일찌감치 리빌딩을 통해 전력의 완성도를 높였고 필리핀은 NBA 출신 안드레이 블라체(29)를 귀화시켜 우승을 노린다.

하지만 한국은 한 발짝, 아니 두 발짝 이상 뒤쳐져 있다. 대표팀 선수 구성부터 시작해 코칭스태프와 훈련 방식까지. 갈 길이 멀다. 두 대회 모두 리그 일정에 일정부분 영향이 있기에 기존 구단들의 협조 역시 불투명하다.

김인식 감독과 김동광 감독,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모두 겪은 두 노병들에게도 쉽지 않은 도전이다. 대가를 바라기도 힘들고 한 순간에 명예도 잃을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은 사명감 하나만으로 대표팀의 부름에 응했다.

과연 이들은 ‘독이 든 성배’를 들고 대표팀을 화려한 피날레로 이끌 수 있을까.

사진=스포츠코리아·KBL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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