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한국 포항=박대웅 기자] 이승엽이 일본 프로야구에 도전하지 않았다면 KBO 통산 홈런 기록은 얼마나 더 늘어났을까.

이같은 가정 자체가 다소 무의미할 수는 있지만 600개를 훌쩍 넘어 700개에 도전장을 던지고 있었을 것이라는 추측도 나오고 있다.

이승엽에게는 야구 선수로서 최전성기라고 볼 수 있는 시기를 포함해 무려 8시즌의 KBO 공백기가 있었다. 지난해까지 12시즌 동안 평균 32.5개의 홈런을 생산했고, 이를 단순히 8시즌에 대입하더라도 260홈런을 더 보탤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700홈런을 넘보고 있을 것이라는 예측이 결코 허투루만 들리지 않는다.

하지만 아쉽게도 일본에서 때린 159홈런은 KBO의 공식 집계에 반영될 수 없다. ‘한일 통산’이라는 별도의 타이틀을 붙였을 때에만 그가 프로에서 지금껏 기록한 559홈런의 가치를 온전히 인정받을 수 있다.

그렇다면 그가 일본에서 보낸 지난 8년의 세월은 대기록에 좋지 않은 영향만을 미친 것일까. 이승엽 스스로가 “그렇지 않다”고 잘라 말했다.

이승엽은 “일본 프로야구에 진출하지 않았다면 홈런 개수는 더 늘었을 수도 있겠지만...”이라는 말을 꺼내면서도 “일본에서 힘든 기억이 많았기 때문에 오늘날 내가 40세가 되어서도 이처럼 선수 생활을 이어올 수 있었던 것 같다”고 털어놨다.

그는 일본 리그 경험이 결코 헛되지 않았다고 다시 한 번 강조했다. 또한 단순히 홈런을 수치로만 판단하고 싶지 않다는 뜻을 드러냈다.

이승엽은 우물 밖 세상에서 그동안 경험해보지 못한 좌절감을 맛봤다. 언제나 최고의 타자로만 평가받았지만 아직 멀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자신을 되돌아볼 시간을 충분히 가진 그는 더욱 부단한 노력과 독기 속에서 프로 생활을 이어왔고, 결국 ‘롱런’을 통해 이처럼 오랜 기간 팬들에게 사랑받을 수 있는 이승엽을 만드는데 성공했다.

한국 무대 복귀 2년 차인 2013시즌에도 이승엽은 급격한 하락세를 나타내며 1997년 이후 처음으로 한국 무대 20홈런 달성에 실패했지만 은퇴에 대한 압박감을 받는 상황에서도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타격폼을 다시 한 번 새롭게 고치는 모험을 통해 이듬해 곧바로 30홈런 고지를 재정복, ‘클래스는 영원하다’는 말의 의미를 증명해냈다. 이같은 의지가 나타난 것도 일본에서의 경험이 큰 밑거름으로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종목은 다르지만 미국 프로농구(NBA)의 전설적인 스타 마이클 조던 역시 최전성기에 접어들 무렵 약 두 시즌 가량의 공백기가 있었다. 1차 3연패에 방점을 찍은 1992~93시즌을 마친 뒤 그에게는 더 이상 이룰만한 뚜렷한 목표가 없었고, 아버지의 사망 충격까지 겹치면서 농구 황제 타이틀을 스스로 내려놨다.

이후 1994년 야구 선수로 전업한 그는 이렇다 할 족적을 남기지 못한 채 1994~95시즌 막판 다시 농구계로 돌아왔으며, 이듬해부터 또다시 2차 3연패의 대업을 이뤄냈다.

농구 팬들 역시 ‘조던이 은퇴하지 않았다면 시카고 불스가 보스턴 셀틱스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8연패 달성에 성공했을까’와 같은 가정을 자주 하곤 한다. 또한 조던의 통산 기록 및 수상 실적 등에서도 더 위대한 기록이 나올 수 있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을 갖는다.

하지만 조던이 야구에 도전했던 시즌과 뒤늦게 복귀한 시즌에 우승을 차지했다고 가정을 해도 8연패로 이어졌을 것이라는 단언을 할 수 없다. 결국 선수 구성 자체가 실제 역사와 다르게 흘러가거나 조던 스스로가 매너리즘에 빠졌다면 2차 3연패 기간에 똑같은 성과를 남겼다고 절대 보장할 수가 없는 상황이다.

한 가지 중요한 것은 조던은 은퇴와 복귀를 통해 더욱 완벽한 인간 드라마를 써내는 데 성공했다는 사실이다. 파이널 6회 진출에 6회 우승이라는 무결점 커리어를 완성시켰고, 복귀 후 2차 3연패의 가치를 더욱 극적으로 끌어올렸다.

이승엽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팀의 가장 핵심적인 전력은 아니었을지언정 그의 복귀가 삼성의 통합 4연패 달성에 분명 큰 힘을 보탠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수많은 이들이 이승엽의 시대는 지났다고 단언했지만 그는 여전히 베테랑의 관록을 뽐내며 일본 진출 이전에도 단 한 차례밖에 누려보지 못한 한국시리즈 우승을 4번이나 추가로 경험했다.

이승엽이 한국에서 선수 생활을 줄곧 이어갔다면 분명 더 좋은 기록을 남겼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2015년 6월3일 포항구장에서 홈런을 터뜨리는 이승엽의 모습은 볼 수 없었을 지도 모를 일이다. 아쉬움을 느낄 수 있을 시간에 그는 다시 일어날 힘을 얻었다. 스스로가 내린 선택에 더 이상의 후회가 없도록 이를 악물었다.

사진=스포츠코리아, ⓒAFPBBNews = News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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