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한국미디어 박대웅 기자] 펑고를 직접 때리는 노령의 감독, 흙투성이의 유니폼을 입은 채 죽을상을 짓고 있는 선수들. 이번 프로야구 오프시즌을 가장 뜨겁게 달구고 있는 팀은 단연 한화다.

과장을 조금 보태면 "한화 소식이 프로야구 기사 전체의 절반이다"는 말까지 나올 만큼 일본에서 '지옥 훈련'을 하고 있는 한화 선수들의 일거수일투족이 자세하게 소개되고 있다. 팬들 역시 인터뷰 또는 사진 기사 등을 통해 선수들이 변화하는 과정을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다.

최근 6년 동안 5번이나 꼴찌에 머문 팀에게 이처럼 가장 눈부신 스포트라이트가 연일 쏟아지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 화제의 지분 8할은 김성근 감독

무엇보다 한화가 화제의 중심에 선 데에는 '야신' 김성근 감독의 영향력이 절대적으로 작용했다. 이미 그가 지휘봉을 잡기 전부터 한화 팬들은 김 감독의 선임을 기원하는 유튜브 동영상 제작에 나서는 한편 각종 청원 운동, 1인 시위까지 벌일 만큼 뜨거운 열망을 표출했다.

김성근 감독이 한화의 성적을 끌어올려줄 유일한 구세주라는 확신이 그만큼 팬들 사이에서도 강하게 깔려있던 것. 이는 당초 김 감독을 새 사령탑 후보 목록에서 배제하고 있었던 구단 수뇌부의 마음을 뒤바꾸는 계기가 됐다.

김성근 감독은 취임식을 갖기도 전부터 김광수 수석코치, 박상열, 아베 오사무 투수·타격 코치를 차례로 영입하는 등 즉각적인 변화의 바람을 불어넣었다. 이후 기존 한화의 레전드 출신 또는 전임 김응용 감독의 사단으로 구성됐던 코칭스태프를 대대적으로 갈아엎는 등 본인의 색깔을 더욱 강화시켰다.

취임식에서도 김 감독은 "김태균은 이제 3루에서 반 죽을 각오를 해야 한다", "이 자리에 나오기 전 (용모가 단정하지 못한) 선수들에게 근처에는 이발소가 없는지를 물어봤다"와 같은 말을 통해 강력한 카리스마를 발휘, 다시 한 번 화제의 중심에 섰다. 선수단의 정신적인 자세부터 모두 뜯어 고쳐야겠다고 다짐한 김성근 감독의 언변은 그만큼 거침없이 강력하게 표현됐고, 실제 선수단의 정신적인 투지에 실망했던 팬들에게는 이보다 행복하게 다가오는 엄포도 없었다.

단순히 겁을 주기 위한 표현이 아니라 실제 첫 마무리훈련부터 한화 선수단은 지옥을 경험해야만 했다. 선수들의 유니폼이 더러워지고 표정이 일그러질수록 한화 팬들의 차기 시즌에 대한 기대치와 희망은 점점 더 부풀어갔다.

공포의 훈련 외에도 김성근 감독은 끊임없이 다방면에서 이슈를 생산해냈다. 한화가 송은범, 권혁, 배영수에게 투자를 감행해 스토브리그를 뜨겁게 만든 것은 김성근 감독의 외부 FA 영입에 대한 강력한 의지가 반영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또한 비활동기간 당시에는 단체 훈련의 필요성을 제기하며 프로야구선수협회와 팽팽한 신경전을 펼치는 등 이번 겨울 내내 김성근 감독은 프로야구 최고의 화두로 떠올랐다. 현재 진행 중인 한화의 스프링캠프는 그 관심도가 최고 정점에 위치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한화, 얼마나 도약할 수 있을까

선수의 능력을 극대화하는데 일가견이 있는 김성근 감독이기 때문에 한화의 순위 도약에 기대가 모아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현상이다. 그러나 통산 최다승에 빛나는 김응용 감독조차 총체적 난국을 해결하지 못한 채 쓸쓸히 물러나야 했던 팀이 바로 한화다. '해답이 보이지 않던 팀 vs 마법의 발자취를 남겨온 감독'의 구도에서 이제 어느 쪽이 본래의 본능을 더욱 강하게 발휘할지를 놓고 팬들의 이목이 집중돼 있다.

한화의 전력에서 올시즌 우선적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는 쪽은 바로 투수 파트다. FA를 통해 가세한 배영수, 송은범, 권혁은 아직까지 보직이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저마다 선발과 불펜에서 큰 힘이 될 수 있는 자원들이다. 특히 우승 경험이 풍부하다는 점에서 패배 의식에 젖어있던 한화 선수단에게 정신적으로도 많은 도움이 될 전망. 기량이 다소 하락세에 놓여있다는 평가가 있지만 김성근 감독과의 만남으로 인한 동기부여가 확실하다는 점에서 부활에 대한 희망을 낳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태양, 유창식과 같은 젊은 자원들의 성장, 군 복무 이후 합류한 양훈의 존재, 대박 대신 늘 쪽박만을 안겼던 새로운 모험 대신 '검증된 자원' 유먼, 탈보트를 합류시킨 것도 전체적인 안정감을 더해주는 요소다.

재활군에 속해있던 투수가 다소 많아 우려를 낳기도 했지만 이들이 서서히 고치 캠프로 합류하고 있는 가운데 김 감독 역시 이번 스프링캠프에서는 투수 지도에 가장 큰 중심을 두면서 지난해 역대 최악의 팀 평균자책점(6.35)을 기록했던 팀을 개조해나가고 있다.

이 밖에 지옥의 펑고를 통해서는 지난해 유일하게 세 자릿수 실책(101개)을 기록했던 야수들의 수비 능력을 집중적으로 끌어올리고 있으며, 득점권 타율을 높이기 위해 팀 배팅 역시 게을리 하지 않고 있다. "나쁜 기록은 전부 1등이다"던 김 감독의 한숨 섞인 발언처럼 총체적 난국에 빠져있는 한화지만 부족한 시간을 쥐어짜내면서까지 이를 해결하기 위해 모두가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김성근 신드롬이 계속해서 이어지기 위해서는 페넌트레이스 초반 스타트가 상당히 중요하다. 2년 전 김응용 감독 취임 당시에도 팬들의 기대감은 상당히 컸고, 김응용 감독 역시 강한 자신감을 드러냈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결과는 처참했다. 2012시즌 개막과 함께 13연패의 늪에 빠지며 모든 기대감을 산산조각 낸 것.

'역시 우린 안 돼'라는 마음이 싹 트는 순간 신드롬도 거기서 끝이다. '달라졌다'라는 인식을 초반부터 강하게 심어줬을 때 한화 선수단 스스로도 자신감을 완벽히 회복할 수 있고, 상대 팀들 역시 만만히 볼 수 없게 된다. 무엇보다 그동안 절대적인 지지를 보내준 팬들의 눈에 두 번 다시 눈물이 맺히도록 해서는 곤란하다. '과정'으로 주목받고 있는 한화가 과연 2015시즌이 종료되는 시점에서는 '결과'로도 주목받을 수 있을지 기대가 모아진다.

사진=한화 이글스, 스포츠코리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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