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사상 첫 구단 핵심 책임자 동시 퇴진...엄정한 진실규명으로 팬심 돌려놓아야

롯데 제공
[스포츠한국미디어 조형래 기자] 멍이 제대로 맺혔다. 야구를 사랑하는 부산의 야구 팬들의 가슴엔 대못을 박았다. 성난 분노를 표출하기 위해 삭발식까지 거행한 팬들도 나타났다. 지난달 말부터 이어진 롯데 사태로 인한 아픈 결과들이다.

롯데는 올해 5월부터 구단 안팎으로 바람 잘 날이 없었다. 당초 우승후보까지 거론됐고, 최소한 4강은 들 것이라는 예상을 받은 팀이었지만 올시즌 7위로 시즌을 마치며 자멸했다. 지난 2년간 팀을 이끌었던 김시진 감독은 롯데를 떠났다.

지난 5월 선수단이 경기 보이콧을 요구하면서 롯데의 치부는 서서히 수면 위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선수단의 원정 숙소 CCTV를 통해 선수들을 감시한다는 소문이 선수단 주위로 돌기 시작했다. 또한 모 코치의 강압적인 훈련 방식에 대한 불만까지 동시에 터져나오며 선수들은 경기 거부 의사를 표시하기도 했다. 이 때 구단은 선수들이 지목한 코치와 간부를 일선에서 물러나게 하며 사건은 일단락 되는 듯 했다.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롯데 사태의 뇌관은 정규시즌이 끝나고 본격적으로 '펑펑' 터지기 시작했다. 선수단은 구단이 특정 코치를 신임 감독으로 선임하려는 시도를 알고 이에 반기를 들었다. 선수단은 성명서까지 발표했다. 선수단의 성명서에는 구단 운영을 담당하는 간부들의 실명을 직접 거론하며 구단과 정면으로 대립각을 세우기 시작했다.

이후 구단이 신임 감독으로 선임하려던 코치가 현장을 떠났고, 구단은 팬들에 직접 사과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후 이종운 코치가 롯데의 새 감독으로 임명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 사태를 지켜보고 있던 롯데 팬들의 분노는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활동하던 롯데의 팬들은 직접 거리로 뛰쳐나와 구단 프런트의 퇴진을 요구하고 나섰다. 서울 잠실 제2롯데월드와 부산 서면의 롯데백화점 앞, 부산 사직구장에는 1인 시위를 하는 팬들이 늘어났다. 삭발식까지 거행한 팬들도 생겼다.

하지만 롯데는 팬들의 바람에 제대로 된 응답을 하지 않았다. 여기에 CCTV 불법 사찰이 구단 대표이사가 지시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팬들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구단이 원정 숙소 관계자를 통해 CCTV로 선수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했고 보고서까지 받았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프로 구단에서 '동반자'로 함께 나아가야 하는 프런트와 선수단이 '갑과 을'의 종속관계로 돼버렸다. 이 사실과 함께 프로 구단의 중추적인 삼각관계라고 할 수 있는 프런트와 선수, 팬으로 이어진 보이지 않는 끈은 완전히 끊어졌다.

구단을 향한 성난 팬들의 토로는 더욱 목소리를 높여 갔고, 급기야 지난 5일에는 사직구장 앞에서 약 150여 명의 팬들이 단체 시위에 나서기도 했다.

그동안 버티던 구단 간부들 역시 성난 팬심과 비난 앞에 버티지 못했다. 배재후 단장이 5일 오후 전격 사퇴했고 최하진 대표이사도 6일 오전 사퇴 의사를 밝혔다. 이문한 운영부장도 사의를 표명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롯데가 사상 초유의 거친 풍파를 겪으며 변화의 조짐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조짐만으로는 그쳐서는 안된다. 팬들을 납득시키고 정상으로 돌아서기 위해선 뼈를 깎는 고통이 수반돼야 한다.

4강 티켓을 확보하지 못한 구단들은 11월부터 다음 시즌 준비와 잠재력을 가진 유망주들을 발굴하기 위해 마무리 캠프를 차린다. 이 시기를 통해 지나간 시즌을 돌아보고 돌아올 시즌을 대비하는 과정을 거친다. 롯데는 현재 지난달 27일부터 롯데의 2군 구장인 김해 상동구장에서 마무리 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하지만 갖은 내홍과 낱낱이 밝혀지는 구단의 실상으로 인해 어수선할 수 밖에 없다. 훈련이 제대로 진행될 리가 만무하다.

조속한 구단의 정상화가 선수단을 안정시키는 길이다. 제대로 된 진상 규명을 통해 드러난 사실이 아닌 '진실'을 파헤쳐야 한다. 꼼수가 아닌 정수로 이 상황을 타개해야 한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는 속담이 있듯이 롯데가 새롭게 나아가기 위해선 파국의 원인들을 퍼내는 것 만이 답이다. 칼 같은 개혁을 통해 환부를 도려내야만 상처가 사라질 수 있다. 그래야만 선수들도 다시 스파이크 끈을 동여매고 다음시즌을 위한 훈련에 몰입할 수 있다.

'구도(球都)'라 불리는 도시가 부산이다. 열정적으로 롯데를 응원하고 그 어느 도시보다 야구에 뜨거운 관심을 보인다. 하지만 잘못된 것이 있다면 팬들의 관심은 차갑게 식어버린다. 2000년대 초반 '암흑기'라고 불리던 시대에는 경기에 두자릿수 관중에 그치기도 했지만 2000년대 후반 성적이 좋아지자 사직구장은 언제나 만원에 가까운 관중이 들어찼다.

그러나 롯데는 겨우 끌어올린 팬심을 스스로 버렸다. 언제 사직구장이 '암흑기' 시절로 돌아갈 지 모르는 일이다.

롯데는 존립을 걱정할 정도로 창단 이래 최악의 위기에 처했다. 롯데를 지탱해 오던 팬심은 그간의 사태에 지쳐 돌아서기 시작했다. 아니, 이미 돌아선 팬들이 더 많을지도 모른다. 정치권까지 개입하기 시작하면서 이번 사태는 돌아가기엔 먼 길을 왔다는 것이 자명해졌다. 완벽한 사태 수습과 개혁을 통해 '구도'라 불리던 부산의 명예를 회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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