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한국미디어 박대웅 기자] 올시즌 프로야구는 페넌트레이스 종료와 함께 그 어느 때보다 많은 구단들이 사령탑 교체를 단행했다.

계약 기간이 만료되는 감독들의 팀 성적이 대체적으로 좋지 못했을 뿐 아니라 두산 송일수 전 감독처럼 계약 기간을 채우지도 못한 채 경질되거나 KIA 선동열 전 감독같이 재계약을 이룬 뒤에도 악화된 여론을 의식해 자진사퇴하는 일도 벌어졌다. 분명한 사실은 포스트시즌에 진출하지 못한 5개 구단 모두가 새로운 출발을 알리며 프로야구계의 지각 변동을 예고했다는 점이다.

SK와 두산이 10월21일 나란히 김용희(59), 김태형(47) 감독 체제를 가장 먼저 선언했고, 한화가 그로부터 4일이 지난 뒤 김성근 감독(72)을 깜짝 선임하는 승부수를 던졌다. 또한 KIA가 28일 선동열 감독의 자진사퇴로 공석이 된 자리에 김기태(45) 감독을 앉히는 후속조치를 취했다. 그리고 내부적으로 큰 홍역을 겪어야 했던 롯데가 31일 마지막으로 이종운 감독의 선임을 발표했다.

5명의 새 사령탑들은 취임식 또는 구단을 통한 공식 발표를 통해서 본인이 가지고 있는 지도 스타일에 대해 언급하며 향후 팀에게 어떤 색상을 입힐 것인지에 대해서도 입을 열었다. 저마다 최소 한 가지씩의 뚜렷한 색깔을 가지고 있어 하위 팀들의 차기 시즌 명예회복 여부에 벌써부터 팬들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가장 발빠르게 지휘봉을 잡으며 차기 시즌 준비에 나선 SK 김용희, 두산 김태형 감독. 스포츠코리아 제공

▲ 김용희, 미스터 올스타? 이제는 젠틀맨 감독

SK 김용희 감독은 현역 시절 통산 두 차례나 올스타전 최우수선수로 선정되며 ‘미스터 올스타’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러나 한 팀의 수장으로서 그를 가장 제대로 묘사할 수 있는 단어는 바로 ‘신사적인 지도자’다.

김용희 감독은 롯데의 간판 프랜차이즈로 현역 시절을 보냈고, 이후 지도자 생활 역시 롯데에서 시작했지만 삼성과 SK로 둥지를 옮긴 뒤에도 구단의 신뢰를 받으면서 결국에는 1군 감독까지 올라서는 모습을 보였다.

취임 2년 만에 롯데를 한국시리즈로 이끌었다는 점과 역대 최연소 300승의 주인공이라는 점을 제외하면 감독으로서 남긴 뚜렷한 업적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어느 구단에 몸담고 있든 늘 선수들과 코칭스태프 등 상대의 입장에 귀 기울이려는 자세를 보여 지금껏 불협화음을 일으킨 적이 전무하다.

SK는 최근 몇 년 간 감독과 프런트의 마찰이 끊이지 않으면서 '프런트 야구'에 대한 비판을 유독 자주 받았던 팀이다. 소통에 대한 문제점을 김용희 감독 선임을 통해 확실하게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으며, 김 감독의 합리적인 지도력이 발휘되거나 추구하고 있는 시스템 야구의 정착이 제대로 이뤄질 경우 SK 선수단의 가을 DNA가 부활하는 것도 단지 시간 문제에 불과할 전망이다.

▲ 김태형, 두산의 모든 것 그의 손바닥에 있다

김태형 감독은 두산의 전신 OB 시절부터 무려 12년 동안 팀의 프랜차이즈 선수로 활약해왔다. 지도자 생활까지 포함한다면 무려 22년이라는 긴 세월을 두산과 보냈으며, 2011시즌 이후 SK 배터리코치로 있었던 3년여가 다른 유니폼을 입고 있던 유일한 시기였다. 최근의 흐름 정도만 읽어낸다면 누구보다 팀의 사정에 대해서 완벽히 파악한 뒤 차기 시즌을 준비할 수 있는 새 지도자가 바로 김태형 감독이다.

두산 김승영 사장은 김태형 감독이 두산 주장을 역임하던 시절, 선수들을 훌륭히 이끄는 모습을 높이 평가한 바 있다. 김태형 감독도 취임식 당시 이와 같은 점에 대해 언급하면서 선수단과의 소통에 강한 자신감을 드러냈다.

또한 현역 시절 ‘군기 반장’으로 통할만큼 강한 카리스마를 갖춘 김태형 감독이기 때문에 선수들을 똘똘 뭉치게 하거나 동기부여를 심어주는 데에는 더욱 탁월한 능력을 발휘할 가능성이 높다. 최근 실종된 ‘허슬두’ 정신이 부활할 수 있을 것이라는 높은 기대가 모아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다른 감독들과 달리 한 팀의 수장을 책임지는 것이 처음이라는 점에서 우려를 낳고 있는 점도 있지만 그는 “시작도 하기 전에 걱정부터 하는 것은 잘못됐다고 생각한다. 경험 부족은 경기를 하면서 극복할 수 있는 부분이다”며 당당하고 패기 있는 모습을 선보이기도 했다. 스스로가 밝힌 롤모델 김인식, 김경문 감독처럼 훌륭한 지도자로 성장해나갈 그의 앞날에 기대가 모아진다.


최하위 한화가 최고의 승부사 김성근 감독에게 지휘봉을 맡겼다. 한화의 지옥 훈련은 이미 시작됐다. 스포츠코리아 제공

▲ 김성근, 지옥을 거쳐 천국으로 한화 인도할 구세주

한화 김성근 감독은 따로 부연 설명이 필요 없는 프로야구 최고의 승부사다. 본인은 ‘잠자리 눈깔’이라는 별명이 더 좋다며 너털웃음을 지었지만 야구의 신을 뜻하는 수식어 ‘야신’이 그의 모든 것을 설명해주고 있다.

김 감독의 독보적인 카리스마는 취임식이 열리기 전부터 이미 뿜어져 나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꼴찌에게 휴가는 없다”는 한 마디와 함께 곧바로 마무리캠프 일정을 잡았으며, 선임된 지 이틀 만에 ‘김성근 사단’을 이끌어갈 주요 코칭스태프를 꾸리기 시작했다.

김응용 사단의 핵심 인물들은 물론이거니와 다수의 한화 프랜차이즈 스타 출신 코치들과도 과감하게 재계약을 포기하는 등 강단 있는 선택을 통해 ‘성적 끌어올리기’에 모든 초점을 맞추는 행보를 이어갔다.

취임식에서도 다시 한 번 지옥 훈련을 예고한 김 감독은 선수단의 헤어스타일에 대해서까지 쓴 소리를 우회적으로 내뱉으며 이들을 소위 공포의 분위기로 몰아넣었다. 하지만 공포심을 준 것이 전부는 아니었다. 그동안의 안일했던 마음가짐을 뜯어고치고 이제는 당당히 날개를 펼 수 있는 독수리로 거듭나기를 당부해 짧은 순간 한화 선수들에게 ‘우리도 할 수 있다’는 믿음을 함께 심어줬다.

“반쯤은 죽을 것이다”고 지목당한 김태균도 “우리는 프로다. 고된 훈련이 두려운 것은 아니다. 고참들이 감독님을 잘 모시고 후배들을 잘 이끌어 강팀으로 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며 책임감 있는 모습을 드러냈다.

시작부터 지옥을 예고했지만 “내년 가을야구 최종 경기를 승리하는 목표를 세우자. 마지막에는 웃자”고 밝힌 김성근 감독이다. 승부사 김성근 감독이 김응용 감독조차 구제하지 못했던 ‘만년 꼴찌팀’ 한화에 기적을 불어넣을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KIA 김기태 감독과 롯데 이종운 감독은 위기에 놓인 팀의 구세주가 될 수 있을까. KIA 타이거즈(좌), 스포츠코리아(우) 제공

▲ 김기태 감독, 돌아온 광주 큰 형님의 카리스마

KIA는 내부적으로 뒤숭숭한 상황에서 발빠르게 김기태 감독을 새로운 사령탑에 앉히며 분위기 쇄신에 나섰다. 지난 시즌 LG를 11년 만에 가을 야구로 이끌며 탁월한 지도력을 인정받았던 김 감독은 ‘형님 리더십’의 대표적인 선두 주자로서 이번에도 KIA 선수들의 큰 형님 같은 역할을 소화해낼 것으로 기대를 불러 모으고 있다.

김 감독은 지난 28일 구단 사무실에 인사차 방문했지만 공식적인 취임식은 약 한 달 뒤에 여는 것으로 결정했다. 격식보다는 29일부터 시작된 마무리훈련이 더욱 중요하다는 점을 인지했기 때문. 그는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잘 알고 있다. 팬들이 즐거워하는 야구를 하겠다”는 말로 18년 만에 돌아온 고향 광주에서 모든 것을 쏟아내겠다는 각오를 전했다.

현재 KIA는 양현종이 해외 진출에 대한 의사를 밝힌 상황일 뿐 아니라 안치홍, 김선빈 등이 군 복무로 인해 차기시즌부터 전력에서 제외되기 때문에 리빌딩이 필요한 팀이라고 볼 수 있다.

험난한 길이 눈앞에 놓인 것은 사실이지만 이미 LG에서 감독 2년 차 만에 팀을 7위에서 2위까지 끌어올리는 등 능력을 입증한 적이 있고, 높았던 고참들의 비중을 젊은 선수들 쪽으로 옮겨 ‘신구조화’를 이루는 데에도 힘을 쏟아냈던 만큼 KIA에서 리빌딩과 성적,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절대 아니다.

올시즌 초 사정을 떠나 LG에서 돌연 자진사퇴하며 오점을 남기기도 했지만 명예회복의 기회를 잡게 된 만큼 김기태 감독의 의지도 그 어느 때보다 굳건할 수밖에 없다.

▲ 이종운 감독, 하얀 도화지 위에 그려낼 그림은?

이종운 감독은 구단 프런트와 선수단의 갈등이 최악으로 깊어진 상황에서 롯데의 제16대 사령탑에 선임됐다. 지난 5월 호텔 CCTV 사찰 파문에서부터 출발한 문제는 최근 선수단이 구단 내 특정 간부와 현직 코치의 이름을 직접 거론하면서 수많은 야구 팬들에게까지 구체적인 소식이 전해졌다. 그동안 곪아있던 상처가 완전하게 터지며 선수단과 구단 프런트가 이미 루비콘 강을 건넌 분위기다.

롯데는 이종운 기존 1군 주루코치가 이와 같은 내부 갈등을 추스르기에 가장 적합하다고 판단하고서 그를 감독으로 승격하는 조치를 취했다. 1992년 우승 멤버이자 통산 9시즌이나 롯데에서 활약한 프랜차이즈 출신이지만 2003년부터 2013년까지 경남고 감독을 역임하는 등 롯데 3군 코치진으로 합류하기 전까지는 오랜 기간 아마 야구계에 몸담고 있어 오히려 내부갈등 봉합에 적격일 수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이 감독은 2008년 캐나다 에드먼튼 세계야구선수권 대회에서 한국의 우승을 이끌며 지도력을 인정받았고, 고교 시절 장성우, 이상화, 이재곤, 신본기(이상 롯데), 한현희(넥센)를 키워낸 지도자라는 점에서도 기대를 모으는 구석이 있다.

하지만 반대로 프로무대에서의 코치 경력 자체가 3년 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우려의 목소리도 함께 제기되고 있다. 무엇보다 내부 화합을 이루지 못한 상황에서 ‘초짜 감독’이 얼마나 카리스마를 제대로 발휘할 수 있을까에 대한 의문부호를 많은 팬들이 던지고 있다.

새롭게 선임된 감독들이 저마다의 색깔을 가지고 있다면 이종운 감독은 하얀 도화지를 책상 위에 펼쳐놓고 이제 막 손에 크레파스를 쥔 상태라고 봐도 무방하다. 이 감독은 “기본을 중시하는 야구를 하겠다”며 야구 내, 외적 양 측면에서 기본이 바로서야 좋은 야구를 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제 본인이 생각하는 야구를 도화지에 그려 멋진 작품을 팬들에게 보여줄 일이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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