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근 감독이 한화의 제10대 사령탑으로 선임됐다. 최고의 승부사와 패배의식에 젖어있는 선수단이 조화를 이루게 된 가운데 과연 한화는 3년 내에 기나긴 어둠의 터널에서 빠져나올 수 있을까. 스포츠코리아 제공
[스포츠한국미디어 박대웅 기자] 성적만큼은 확실히 보장되는 승부사가 최하위 구단과 손을 마주 잡았다. 역대 최다승을 보유한 김응용 감독도 이뤄내지 못한 한화의 ‘영광 되찾기 미션’을 과연 야구의 신으로 통하는 김성근(72) 감독이 이뤄낼 수 있을까.

한화는 25일 “팀의 새로운 변화와 혁신을 위해 제10대 사령탑으로 김성근 감독을 선임하고, 3년간 총액 20억원(계약금 5억원, 연봉 5억원)에 계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두산과 SK 등 각 팀이 새로운 감독을 선임하는 동안 한화는 적극적인 움직임 없이 잠잠한 행보를 이어왔다. 김성근 감독과 접촉 중이라는 소문을 비롯해 이정훈 2군 퓨처스 감독, 한용덕 단장특별보좌역 등 기존 구단의 레전드 출신의 내부 승격이 유력하다는 이야기까지 수많은 소문들만 무성히 떠돌았을 뿐이다.

결국 한화 그룹이 내린 최종 선택은 김성근 감독이었다. 1984년 OB 감독을 시작으로 국내 프로야구 5개팀 사령탑을 역임한 김 감독은 프로통산 2,807경기에서 1,234승 57무 1,036패를 기록, 김응용 감독(1,567승)에 이어 최다승 2위에 올라있는 한국 프로야구의 대표적인 명장이다. 특히 지난 2007년부터 2011년까지 SK 감독 재임시절에는 3차례나 팀을 우승으로 이끌기도 했다.

한화 역시 프로야구계 최고의 승부사로 꼽히는 김성근 감독의 원칙과 소신을 바탕으로 한 강력한 리더십 및 특유의 강한 훈련과 철저한 전략으로 팀의 조직력을 극대화하는 능력을 높이 평가한 것으로 보인다. 최근 6년 동안 5번이나 최하위에 머물렀던 한화로서는 팀을 승리로 이끄는데 최적화된 김성근 감독을 선임함으로써 1999시즌의 우승 영광을 되찾겠다는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김성근 감독 역시 계약 체결 직후 “마지막까지 기회를 주신 한화에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성원해 주신 팬들에게도 고맙다. 많은 분들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도록, 또한 한화를 명문 구단으로 만들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소감을 밝혔다.

▲ 선임 꺼려졌던 현장 분위기, 놀라운 대반전

한화와 김성근 감독의 만남은 프로야구계를 뒤흔들 만큼 놀라운 사건이다. 사실 2년 전 김응용 감독을 선임했던 당시에도 한화는 김성근 감독과 몇 차례 접촉을 시도했지만 협상이 원활하지 못했고, 결국 한화가 그를 다시 찾을 일은 없을 것으로 보였다.

여러 구단의 팬들이 김성근 감독을 간절히 원했지만 두산과 SK가 내부사정에 정통한 인사를 새 감독으로 선임하는 등 현장의 분위기는 팬들의 생각과 다른 방향으로 흘러간 것도 사실이다. 무엇보다 각 구단 프런트 입장에서는 소신과 원칙이 뚜렷한 김성근 감독을 부담스러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경향이 있었다.

최근 대전에서 김 감독을 목격했다는 제보가 팬들 사이에서 떠돌았던 순간까지도 그는 “어느 구단으로부터도 감독 제의를 받은 적이 없다”며 여러 목격담들을 루머라고 일축했다. 김성근 감독의 한화행은 이렇게 뜬소문으로 모든 것이 마무리되는 듯 했다.

하지만 각종 SNS를 통해 한화 팬들이 김성근 감독 영입을 염원하는 동영상을 올리는가 하면 한화 본사 앞에서 김성근 감독 영입을 추진하라는 1인 시위까지 일어나는 등 팬들의 간절한 마음만큼은 좀처럼 식을 줄을 몰랐다.

이같은 팬들의 숙원이 마침내 현실로 다가왔다. 실제 팬들의 단합된 힘이 한화의 김성근 감독의 선임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쳤는지 현재로서는 파악하기 힘들지만 그룹 고위층이 김성근 감독 쪽으로 시선을 다시 되돌리도록 만든 것만큼은 분명해 보인다. 무엇보다 최하위 탈출 및 과거의 영광을 되찾고자 하는 바람만큼은 팬들 뿐 아니라 그룹 내에서도 절실한 상황이었음이 이번 김성근 감독의 영입을 통해 드러났다.

▲ 김성근 감독의 한화행, 김응용 감독과는 또 다른 기대감

김성근 감독의 선임 소식에 한화 팬들은 벌써부터 축제 분위기에 젖어있다. 김 감독이 2009시즌부터 한화에게 찾아온 암흑기를 걷어 내줄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고 있다.

하지만 뚜껑은 열어봐야 알 수 있다. 2년 전 김응용 감독의 선임 당시에도 한화 팬들의 기대치는 현재만큼이나 뜨거웠지만 결과는 참담함 그 자체였다. 한국시리즈 10회 우승에 빛난 ‘우승 청부사’ 김응용 감독조차 2년 간 한화에서 남긴 성적은 91승3무162패에 그쳤고, 순위 역시 단 한 단계라도 끌어올리기는커녕 9개 구단 출범의 시작과 끝을 최하위로 장식하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팬들이 김성근 감독에게 높은 기대를 걸고 있는 부분은 바로 그가 김응용 감독과 지도 스타일에서 뚜렷한 차이를 나타내기 때문이다. 김응용 감독이 한국형 자율야구의 원조격으로 통한다면 김성근 감독은 치밀한 데이터를 중시하며 선수 관리에 최적화된 감독으로 평가받고 있다.

또한 강도 높은 훈련을 통해 선수들의 기본기는 물론 정신력까지 함께 끌어올리는 데에도 능한 지도자가 바로 김성근 감독이다. 패배의식을 떨쳐내는 것이 급선무인 한화 선수들에게 어떤 스타일의 지도자가 필요한지는 정답이 나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무엇보다 김성근 감독은 태평양, 쌍방울, LG 등 당시 약체로 평가받은 팀들을 강팀 반열에 올려놓은 수많은 경험이 있다는 점에서 높은 기대를 받고 있다.

이 밖에 김응용 감독이 9년 만에 감독으로 선임되면서 현장 감각이 다소 무뎌질 수 있었다면 김성근 감독은 2011년 SK 이후 3년 만에 프로무대로 복귀했다는 점에서도 둘의 차이는 분명하다. 김성근 감독은 올해까지도 독립구단 고양 원더스에서 여러 선수들을 프로로 진출시키며 탁월한 지도력을 발휘해왔다.

이기는 야구에 가장 능했던 감독과 패배의식에 빠져있던 선수단의 만남. 참으로 절묘한 조합이 아닐 수 없다. 김성근 감독이 무너지는 모습은 물론 한화가 단숨에 순위를 끌어올리는 모습도 쉽게 상상이 가지 않는 상황에서 과연 한화는 향후 3년 간 암흑기를 뚫고 명문 구단의 반열에 오를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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