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예 지키면서 구단의 부담을 덜어내려는 고육책 마음먹은 듯...불명예 퇴진은 아쉬워

선동열 감독은 25일 구단을 찾아가 감독직에서 물러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19일 재계약 발표 이후, 1주일만에 사퇴의사를 표명한 것이다. 스포츠코리아 제공
[스포츠한국미디어 김성태 기자] KIA 선동열 감독이 전격사퇴했다. 사흘전 팀 발전 방향을 제시하는 공약을 '팬들에게 드리는 편지' 형식으로 발표했던 선 감독이기에 사퇴는 다소 충격적이다.

시즌이 끝난 뒤 서울에 머물고 있던 선동열 감독은 25일 광주에서 허영택 단장과 점심식사를 같이 했다. 결국 재계약 이후의 여론 악화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으면서 사임의사를 밝혔다. 지난 19일 재계약 발표 이후 꼭 1주일만에 퇴진을 결정한 것이다.

선 감독은 구단을 통한 사퇴 발표를 앞두고 전날 허영택 단장에게 전화로 사퇴 의사를 표시한 뒤, 이날 광주에 내려가 허 단장에게 최종 결심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허 단장은 선 감독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간곡하게 만류했지만 최근 극심한 괴로움에 시달린 흔적이 역력한데다 결심이 강해 사퇴 의사를 되돌리는 데 실패했다. KIA는 지난 19일 총액 10억6,000만원(계약금 3억원, 연봉 3억8,000만원)에 선 감독과 2년 재계약을 했었다.

선 감독의 사퇴는 악화된 여론이 가장 큰 이유였다. 그는 재계약과 더불어 공약 발표 이후에도 구단 홈페이지에서 팬들을 중심으로 사퇴 릴레이 청원운동이 벌어지는 등 악화한 여론이 수그러들지 않자 감독직 수행이 어렵다고 판단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로써 선 감독은 고향팀을 맡은 지 꼭 3년만에 불명예 퇴진을 하는 아쉬움을 남겼다.

특히 지도자로서 화려한 성공시대를 열고도 그에 못지 않는 큰 흠집을 남겼다는 점에서 당분간 선동열 감독의 행보는 힘겨울 전망이다. 그러나 이번 사퇴 결정이 향후 재기 과정에서 불리하게 작용할지는 단언할 수 없다. 국내 최고투수로서의 명성과 지도자로서도 큰 업적을 남긴 만큼 그만한 상품성 있는 감독 후보도 흔치 않은 것이 사실이다.

선동열 감독은 지난 2004년 김응용 당시 삼성 라이온즈 감독의 부름을 받아 수석코치로 부임하면서 지도자 생활을 시작됐다. 이듬해 삼성 사령탑에 올라 2005년과 2006년 정규시즌과 한국시리즈 통합우승을 달성하면서 최고의 성과를 올렸다.

삼성에서만 6시즌 동안 지도자로 활동하며 5번이나 가을야구에 진출했고, 3차례 한국시리즈 무대에 나가며 최고의 선수이자 최고의 감독으로 인정받았다.

기대는 컸다. 그렇기에 고향팀으로 돌아오는 선 감독을 고향팬들은 두손을 들어 반겼다. KIA에게 새로운 앞날이 펼쳐질 것이라는 확고한 신뢰가 가슴 밑바닥에 깔려 있었던 것은 두말할 나위 없었다. .

하지만 결과는 처참했다. 3년 동안 2012년 5위, 2013년과 2014년은 각각 8위를 기록하며 선 감독은 팬들의 기대감을 실망감으로 바꿔주었다.

▲ 재계약 나오자 여론 악화…무책임한 처사로 비난 받아

재계약 발표가 나오자 팬들은 거세가 반발했다.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는 무책임한 처사라는 비판과 함께 "재계약 철회 릴레이'를 펼치면서 책임회피에 대한 의견을 강력하게 표명했다. 여론이 계속 좋지 않자, 선 감독은 구단 홈페이지에 있는 '호랑이 사랑방' 게시판에 글을 올려 향후 2년간의 팀 운영에 대한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했다.

그는 "주전과 백업 선수의 기량 차이를 좁혀 기초가 튼튼한 팀을 만들겠다. 절대 포기하지 않는 근성을 가진 끈질긴 팀을 만들겠다. 선수와 소통하면서 선수를 믿고 배려해 끈끈한 팀 분위기, 공동체 문화를 형성하겠다"고 약속했다.

또한 "내년 시즌 성적이 부진하면 사퇴도 불사한다는 마음가짐과 각오로 감독직을 수행해 반드시 달라진 KIA의 모습을 보여 드리겠다"고 마무리 지었다.

하지만 선 감독의 제계약에 대한 여론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비난의 글은 여전했고, 개인이 감당하기에는 힘든 상황이었다.

▲ 팀 역사상 최악의 성적…팀 리빌딩은 허울뿐인 명분

선 감독은 지난 2012년부터 팀을 이끌며 명가의 자존심을 회복하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결과는 그리 좋지 못했다.

팀을 이끌었던 3년 동안 확실한 성과를 보여주지 못했다. 팀의 중심이 되었던 주축선수들은 모두 부상으로 빠지면서 역할을 해주지 못했다. 타 팀에 비해 부실했던 선수 관리에 대한 허점이 여실히 드러났고, 전반적인 세대교체와 백업선수들의 구성 역시 부족하기만 했다.

팀을 상징했던 김상훈, 유동훈과 같은 베테랑 선수들 역시 은퇴했고, 윤석민과 이용규 역시 각자의 길을 걸어갔다. 최희섭처럼 부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선수들까지, 여전히 팀 사정은 좋지 못하다.

구단에서는 리빌딩이라는 명분을 내걸고 그의 재계약 이유를 밝혔다. 물론 신인급 선수들이 경기에 모습을 비추긴 했지만, 주축으로 성장하거나 팀 성적을 위한 성과를 보여준 적은 없었다. 제대로 자리를 잡지 못한 채, 1군과 2군을 오고갔다.

게다가 내년에는 더 힘들다. 양현종이 해외 진출의사를 분명하게 밝혔고, 안치홍과 김선빈은 각각 경찰청과 상무에 입대했다. 리빌딩을 구단의 장기적인 목표로 세운 것은 좋지만 팀 전력의 차포가 다 빠진 상황에서 내년 시즌은 올해보다 못하면 못했지 개선될 가능성은 불투명하다.

▲재신임 반발 무릎쓴 KIA의 선택에 어떤 배경이?

선 감독의 사퇴로 여론을 외면하고 선 감독과의 재계약을 밀어부쳤던 KIA도 다소 곤란하게 됐다. 사실 KIA구단이 선 감독과의 계약 과정에서 팬들의 반발을 모를리는 없었다.

그러나 구단은 팬심이 경질로 모아지는 상황에서도 일체 함구를 했다. 허영택 단장은 재계약 발표 수일전까지도 "그룹과 상의할 문제다. 심사숙고하고 있다"는 말로 기자들의 질문을 빗겨갔다. 누가 어떤 이유로 선 감독의 재계약을 결정했을까.

KIA구단에 대해 정통한 한 인사에 따르면 KIA구단은 정몽구 현대-기아차그룹 회장이 구단주이기는 하지만 그룹 업무가 많아 스포츠 관련 업무는 아들인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의 지시를 받고 있다. 아버지가 맡고 있던 양궁협회도 물려받는 등 스포츠에 대한 애정이 남다른 정 부회장은 3년 전 선동열 감독의 영입은 물론이고 이번 재계약 과정의 최종 결정권자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 부회장이 팬들의 저항을 무릎쓰고 이같이 결정한 데는 선 감독에 대한 무한한 애정이 작용했다. 선동열 감독과 고려대 동문인 그는 선 감독이 KIA 유니폼을 입었을 때 누구보다 반겼다는 후문이다. 전폭적인 지원은 말할 것도 없었다.

지난해 팀 순위가 8위에 그쳤을 때 KIA는 관례를 깨고 감독이 아닌 단장을 교체하는 이례적인 처방을 내렸다. 그래서 올해는 선 감독의 경질 가능성이 높게 점쳐졌다. 선 감독의 재신임으로 KIA는 팬들의 말처럼 성적부진에 책임지는 사람이 없게 됐다.

정 부회장의 논리는 다분히 '인간적'이다. 주변에서 들리는 얘기로는 정 부회장은 선 감독이 재계약을 안할 경우 야구인생에 치명상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했다고 한다. `야구 국보'를 함부로 내치면 안된다는 일종의 책임감과 함께 재기의 기회를 줘야 한다는 배려가 맞물린 셈이다. 계약기간을 2년으로 줄인데서도 정 부회장의 의중을 읽을 수 있다.

정 부회장은 `구단주 야구'라는 비난을 감수한 만큼 선동열 감독을 신뢰했고 제계약을 진행했다. 하지만 많은 감독들이 성적부진을 이유로 옷을 벗고, 팀을 떠난 상황이었기에 선감독의 석연찮은 제계약은 많은 팬들의 반발을 사기에 충분했다.

▲ 가라앉지 않는 여론…사퇴는 가장 현실적인 대안

선 감독은 구단을 통해 발표한 사퇴의 변에서 "감독 재신임을 받은 후 여러 가지로 많은 고민을 했다. 고민 끝에 지난 3년간 성적 부진의 책임을 지고 물러나는 것이 옳은 것이라고 판단해 사임을 결정했다. 그동안 성원해 주신 팬 여러분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고 말했다.

선 감독은 "타이거즈 유니폼을 벗지만 영원한 타이거즈 팬으로서 응원을 아끼지 않겠다. 야구명가 타이거즈의 부활이 조속히 이루어지도록 미력한 힘이나마 도움이 되도록 하겠다"며 "이곳 광주는 나의 야구인생을 시작한 곳이라 남다르게 애착이 갔다. 꼭 좋은 성적을 올려 팬들을 웃음짓고 기쁘게 해 주고 싶었는데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며 고향팀을 떠나는 인간적인 고뇌를 숨기지 않았다.

재계약 이후 일주일 동안 선 감독은 많은 고민을 했다. 본인도 시즌 막바지부터 내년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지 않을만큼 재계약 여부를 의심했다. 사퇴문제를 놓고 지인들과도 많은 의논을 거친 것으로 알려졌다.

팀을 떠나는 입장에서는 아쉬울 수 있지만, 지금 나가는 것이 오히려 선 감독에게는 사는 길이 될 수도 있다. 한때, 국내 최고의 투수로 군림했던 선 감독이었다. 그렇기에 고향팀이자 KIA에서 감독으로 보여준 아쉬운 성적은 스스로의 자존심에도 큰 상처였다.

그러나 사퇴 결정은 가장 현실적이면서도 선 감독 스스로 자존심을 지키는 현명한 선택이 될 수도 있다. 구단의 짐도 벗어주는 결정이기도 했다. 누구보다 이런 상황을 잘 알고 있는 선 감독이었기에 무책임한 처사라는 비난을 받고 자신의 명예마저 실추되는 것보다 깔끔하게 물러나는 것이 모두를 위한 행동이라는 판단을 했다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선 감독이 자리에서 물러나면서 구단은 후임 감독 선임에 착수할 예정이다. 그 중에서도 이순철 전 KIA 수석코치(현 SBS 해설위원), 김기태 전 LG 감독이 유력하며 김성근 고양 원더스 감독 역시 후보대상에 올라올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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