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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한국미디어 이재호 기자] 2002년 9월 2일(이하 한국시각) 거구의 한국인 내야수가 7회초 1루 대수비에 나서면서 역사는 시작됐다. 최희섭이 시카고 컵스 유니폼을 입고 밀워키 브루워스와의 홈경기에 출전하면서 메이저리그 역사상 처음으로 한국인 선수가 빅리그 내야수비를 보는 광경이 펼쳐진 것.

이후 12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선발투수, 구원투수, 외야수 등 다양한 포지션에서 한국 선수들은 굵직한 족적을 남겼지만 내야수만큼은 여전히 불모지로 남아있다. 그만큼 내야수라는 포지션으로 빅리그 무대를 밟기에는 메이저리그의 장벽이 만만치 않았다.

그러나 그 높은 벽을 뛰어넘으려는 선수가 있다. 바로 넥센의 유격수 강정호(27)가 그 주인공. 특히 강정호는 내야수 중에서도 가장 힘든 포지션인 유격수로서 이 벽을 뛰어넘으려 한다.

올 시즌 강정호는 이미 34홈런을 넘기며 한 시즌 유격수 최다 홈런 기록을 보유하고 있던 이종범(현 한화 코치)의 30개를 넘어섰다. 타율은 3할4푼4리를, 출루율은 4할5푼7리, 장타율은 무려 7할5푼을 기록 중이다(모든 기록은 14일 경기까지). 그야말로 괴물 같은 시즌을 보내고 있는 것.

올 시즌 종료 후 포스팅 시스템을 통해 해외무대 진출이 가능한 강정호에게 자연스레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LA 에인절스,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등 빅리그 유수구단이 스카우트를 파견해 그의 동태를 지켜보고 있다. 그렇다면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들은 강정호에게 어느 정도 성적을 기대하는 것일까?

▶반토막 이상 줄어들 홈런… 그러나 경쟁력 있다

통산 장타율이 4할9푼9리로 5할에 근접하는 강정호는 흔치 않은 '거포' 유격수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한 시즌 평균 25홈런 내외의 홈런숫자는 빅리그에선 반토막이 날 것이라는 점이다.

일본 최고의 거포로 불렸던 마쓰이 히데키는 미국 진출 직전 시즌 일본에서 50홈런을 기록했지만 빅리그 데뷔 시즌에 16개밖에 기록하지 못했다. 신조 츠요시 역시 미국 진출 직전 28홈런을 일본에서 때렸지만 미국 진출 첫해 10홈런에 그쳤다. 마쓰이 카즈오도 미국진출 직전 시즌 33홈런을 기록했지만 빅리그 데뷔 시즌 고작 7홈런에 그쳤다.

한국보다 더 수준이 높다고 평가되는 일본프로야구의 거포들이 빅리그에서 홈런이 절반 이하로 떨어지는 이 상황은 강정호에게도 예외 없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홈런이 반토막이 되더라도 강정호의 포지션이 유격수라는 점에서 경쟁력이 있다. 지난 시즌 메이저리그 유격수 중 10홈런 이상을 때린 선수는 13명에 불과했다. 달리 얘기하면 강정호가 10홈런 이상만 때려주면 충분히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강정호가 빅리그 지난 시즌 유격수 평균(0.254)보다 조금 나은 타율인 2할6,7푼대와 출루율 3할2,3푼대 정도(메이저 평균 0.308), 10홈런 이상을 때릴 수 있는 파워만 보여준다면 충분히 통할 수 있다. 이 정도 공격력의 유격수를 드래프트 지명권도 없이 데리고 올 수 있다면 분명 빅리그 구단들의 구미는 당길 것이다.

▶강력한 어깨, 열악한 시설의 목동구장… '유격수' 강정호의 장점

강정호에게는 메이저리그에서도 통할만한 수비수의 장점이 있다. 바로 어깨. 강정호의 어깨는 데뷔시절부터 강견으로 평가 받으면서 포수와 내야수를 겸했다. 당시 장채근 배터리 코치는 "어깨가 워낙 강한 데다 미트에서 공을 꺼내는 동작이 빨라 견제능력은 최고다"며 포수 성장가능성을 높게 봤다.

또한 그라운드 상태가 가장 열악한 것으로 알려진 목동구장에서 꾸준히 수준급 수비를 보여줬다는 점도 후한 점수를 받을 만하다. 강정호는 공격력이 주목을 받지 못했던 데뷔 초 '수비만 잘하는 유격수'라는 얘기를 들을 정도로 수비력을 일찌감치 인정을 받아왔다.

▶일본 최고 유격수들의 몰락… 쉽지 않은 유격수 수비

문제는 국내에서 정상급으로 평가 받은 어깨와 수비력이 빅리그에서 통할 수 있느냐다. 유격수는 공격보다 수비가 우선인 포지션. 특히 날고 긴다는 일본인 유격수들의 실패 사례를 보면 결코 빅리그 무대가 만만치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시아 출신 첫 유격수로 빅리그 무대를 밟았던 마쓰이 가즈오는 기본적인 포구 불안을 나타내며 2004시즌 규정이닝을 채운 유격수 중 수비율이 뒤에서 두 번째인 9할5푼6리에 그치며 무너졌다. 오죽하면 시즌 막판 뉴욕 메츠전 주전에서 제외된 뒤 2005시즌부터는 유격수가 아닌 2루수로 포지션을 완전히 전환해야만 했다.

가장 최근에 진출한 사례로는 니시오카 츠요시가 있다. 8년간 일본프로야구에서 활약했던 니시오카는 포스팅시스템을 통해 미네소타 트윈스로 2011시즌을 앞두고 진출했다.

하지만 그 역시 고작 60경기에서 실책 10개나 기록할 정도로 심각한 수비문제를 드러냈다. 결국 2년간 71경기 출전에 그치며 계약기간 1년이 남았음에도 자진방출을 요청, 다시 일본으로 도망치듯 돌아가고 말았다.

마쓰이는 일본에서 10년간 활약하며 4번의 골든글러브(최고 수비상)를 따낸 바 있고 니시오카 역시 8년간 골든글러브 3회를 따낼 정도로 일본에서 최고의 유격수로 꼽혔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수준미달로 평가 받을 정도로 빅리그의 벽은 높았다.

▶문제는 타구 질의 차이… 강정호도 예외는 아니다

일본 유격수들의 실패에는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타구의 질적인 차이가 가장 설득력이 있다. 빅리거 타자들의 파워가 강하다 보니 유격수 땅볼 타구의 속도가 굉장히 빨라 상대적으로 느린 타구만 상대했던 아시아 유격수들이 적응이 쉽지 않을 수도 있다.

이는 강정호에게도 충분히 적용되는 얘기다. 국내 타자들의 다소 약한 타구만 경험한 강정호가 과연 엄청난 속도로 날아오는 빅리그 타구들을 제대로 잡아낼 수 있을지 의문이다. 결국 강정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기본적인 포구를 메이저리그 유격수답게 해내느냐다.

현재 강정호의 플레이는 충분히 메이저리그에 도전할 수 있다. 물론 쉽지는 않다. 하지만 강정호가 아니라면 유격수로 빅리그에 도전할 수 있는 선수를 기대하기가 당분간 힘들 것으로 보이기에 그의 도전이 기대될 수밖에 없다.

*스탯볼은 기록(Statistic)의 준말인 스탯(Stat)과 볼(Ball)의 합성어로 '이재호의 스탯볼'은 경기를 통해 드러난 각종 기록을 분석한 칼럼입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성원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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