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적으로 이뤄낸 태극마크의 영광, "자만보다는 발전의 계기로 삼을 것"

이태양이 아시안게임 대표팀에 극적으로 합류했다. 스포츠코리아 제공
[스포츠한국미디어 박대웅 기자] "초심을 항상 기억하겠습니다."

한화의 희망 이태양(24)이 지난 28일 인천 아시안게임 야구 대표팀 최종 엔트리 24명 명단에 최종 승선하는 기쁨을 누렸다.

당초 이태양의 발탁은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됐다. 그는 본격적인 선발로 나선 5월 이후 배짱 있는 모습을 통해 자신의 이름을 서서히 알렸고, 6월부터는 6경기 연속 퀄리티스타트를 달성하는 저력을 과시하며 한화의 에이스로 확실하게 자리 잡았다.

그러나 7월에는 평균자책점 7.40을 기록하는 부진 속에 페이스가 크게 떨어졌고, 명단 발표를 앞둔 23일 NC전 마지막 등판 때에도 5이닝 4실점(3자책점)으로 패전투수가 되고 말았다.

경기당 득점 지원이 2.29점에 불과할 만큼 운이 뒤따르지 않았고 최하위팀을 짊어져야하는 부담감도 있었으나 4승5패 평균자책점 4.42의 성적은 경쟁자들과 비교해 우위를 점하기 힘든 수치였다.

평소 이태양은 글러브에 조부모의 생년월일을 새겨넣을만큼 효심이 남다르다. 대표팀 발탁 소식이 전해진 이후 기쁨보다는 무덤덤한 감정을 주로 드러냈던 이태양이지만 할아버지로부터 축하 연락을 받은 사실을 털어놓을 때는 그 역시 해맑은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박대웅 기자
▲ 잠결에 전해들은 희소식 "온몸에 소름 돋았어요"

"이태양은 선발과 불펜을 모두 소화할 수 있기 때문에 대표팀에 포함시켰습니다. 중간에서 4이닝까지도 책임질 수 있는 선수라고 판단했습니다. 선수 선발에 있어 구단별 안배는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이태양 본인조차도 기대하지 않았던 희소식이 날아들었다. 대표팀 사령탑 류중일 감독은 활용 방안이 폭넓은 이태양의 강점을 언급하며 전날 엔트리 발표식에서 그의 이름 석 자를 호명했다. 이태양은 차우찬, 경우에 따라서는 이재학 등과 함께 대표팀의 롱릴리프 역할을 책임질 방침이다.

이태양은 대표팀 발표가 있던 당시 넥센과의 주중 3연전을 위해 서울로 향하던 구단 버스에서 잠이 들어 있었다며 수줍게 웃었다.

"뒷좌석에 있던 (윤)규진이 형이 자고 있던 저를 깨워서 대표팀 발탁 소식을 전해줬어요. 순간적으로 잠이 확 달아나면서 온몸에 소름이 돋았어요."

미필자임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다른 선수들과 달리 대표팀에 대한 욕심을 단 한 번도 드러낸 적이 없지만 NC와의 최종 리허설 당시에는 경기 초반 코피가 흘렀을 만큼 이태양이 그동안 받아온 압박감은 상상 이상이었다.

NC전 패전투수가 된 직후 그는 정민철 코치의 진심어린 조언 속에 대표팀에 대한 작은 미련마저 고이 접어두고 오직 개막전 목표였던 '선발진 합류'를 머릿속에 다시 되새기며 아쉬운 마음을 달랬다. 모든 것을 내려놓은 상황에서 전혀 기대하지 않던 소식을 접한 이태양으로서는 어안이 벙벙할 수밖에 없었다.

"예전부터 말해왔지만 애초 시즌 전에 세운 목표는 팀내 선발투수로 확실히 자리를 잡는 일이었어요. 하지만 2차 엔트리까지 합류하면서 커져가는 기대치 때문에 저 역시 사람이다보니 내심 부담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었어요."

대표팀 승선 소식이 전해진 직후 주변 지인들의 축하 인사가 쏟아지면서 이태양은 한동안 정신없는 시간을 보내야했다. 특히 글러브에 조부모의 생년월일을 새길 만큼 평소 효심이 지극하기로 소문난 이태양은 무엇보다 어린 시절부터 본인을 보살펴준 할아버지, 할머니의 축하 전화를 받게 된 사실을 소개하며 뿌듯한 마음을 드러냈다. 이 밖에 가족들과 지인, 팀 동료들의 축하 인사를 받으며 깊은 책임감을 느끼게 됐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 류중일 감독, 이태양을 눈여겨 본 과정은?

이태양의 대표팀 선발 과정에는 한 가지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다. 사실 1차 예비 엔트리가 발표된 6월 중순에는 이태양이 입지를 어느 정도 다져놓은 시기였지만 그 전까지만 하더라도 류중일 감독은 이태양의 대표팀 합류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었다.

한화와의 경기를 위해 6월6일 대전구장을 찾은 류중일 감독은 대표팀 우완투수 후보들의 연쇄적인 부진에 깊은 고민을 드러내면서도 머릿속에 구상하고 있는 선수들 중에서 이태양의 이름은 언급하지 않았다.

충분히 그럴 만도 했다. 5월9일 KIA전부터 6월1일 SK전까지 5경기에서 세 차례나 퀄리티스타트에 성공했지만 한 해에도 이처럼 반짝 활약을 펼치는 투수는 얼마든지 존재하기 때문. 심지어 류중일 감독은 5월15일 첫 맞대결에서 6이닝 2실점으로 호투했던 이태양의 투구 내용마저 착각하는 모습을 보였다.

6월7일 두 번째 만남을 앞둔 상황에서 류 감독은 "지난 번(5월15일)에 대구에서도 한 번 무너뜨린 적이 있는 투수이기 때문에 오늘도 타자들이 잘 공략해줬으면 좋겠다"며 실제 경기 내용과는 다소 다른 기억을 꺼낸 뒤 이태양에 대한 별다른 경계심을 드러내지 않았다. 이태양의 대표팀 승선에 대한 질문에도 "기술위원회로부터 점수를 얻어낼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며 다소 부정적인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그러나 이날부터 이태양의 진정한 반전드라마가 시작됐다. 물론 이태양은 1회 박석민에게 3점포를 얻어맞았고, 7회에는 비어있는 베이스를 확인하지 못한 채 1루 송구를 하는 초보적인 실수를 범해 패전투수가 되고 말았다.

하지만 1회 2사 후부터 4회까지 총 10명의 타자를 연속으로 범타 처리하며 시즌 4번째 퀄리티스타트를 완성시켰고, 다음 등판인 13일 NC전에서 7이닝 2실점으로 '복수혈전' 승리를 따내는 등 차츰 이슈를 만들어내며 1차 엔트리에 극적으로 합류할 수 있었다.

또한 6경기 연속 퀄리티스타트를 통해서는 류중일 감독으로부터 어느덧 눈도장을 찍었으며, 6월27일 삼성과의 세 번째 대결에서는 8이닝 3실점으로 마침내 승리까지 따내는 등 삼성전에서 도합 1승1패 평균자책점 3.48(20.2이닝 8자책점)로 호투했다. 결국 7월의 부진에도 불구하고 이태양은 최종 엔트리까지 발탁되는 반전을 이뤄내는데 성공했다.

"사실 삼성전에 세 번 등판해서 모두 퀄리티스타트를 달성하기는 했는데 그런 영향도 있었을까요?(웃음) 류중일 감독님께서 좋게 생각해주셔서 그저 감사할 따름이에요. 구속을 끌어올리면서 자신감도 점차 찾아갔는데 이러한 모습을 나름 긍정적으로 평가해주신 것이 아닐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대표팀에서도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어요."

한 야구인은 아직도 한참이나 배울 것이 많은 이태양이 마땅한 롤모델 역할을 해줄 현역 선배없이 팀의 에이스 역할을 홀로 짊어지고 있는 현실에 대해 안타까움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러나 대표팀에서는 각 팀에서 모인 정상급 투수들로부터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을 뿐 아니라 공수에서 든든한 도우미 역할을 해줄 타자와 야수들도 버티고 있다. 당장의 활약 여부를 떠나서 많은 것을 보고 듣고 체험할 수 있는 기회의 장이 마련된 것은 분명하다. 이제는 대표팀 발탁을 통해 자신의 기량을 한 단계 높은 곳까지 끌어올리는 일이 이태양에게 남겨진 과제다.

▲ 빠른 성공? 뚜벅뚜벅 느리게 걸어온 초심!

이태양의 카카오톡 프로필 메시지에는 '꿈이 있는 거북이는 지치지 않는다'는 문구가 적혀있다. 이는 오랜 무명 시절을 딛고 최고의 개그맨으로 우뚝 선 '달인' 김병만의 에세이 제목이기도 하다.

이태양 역시 2010년 한화에 5라운드 전체 36순위로 지명을 받은 이후 무려 41경기, 선발로는 10번의 등판을 거치고서야 비로소 데뷔 첫 승의 기쁨을 누릴 수 있었다. 불과 반 년 만에 한화 최고의 히트상품으로 우뚝 서며 올스타와 대표팀 발탁의 영광을 누린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토끼의 빠른 걸음'이 아닌 '거북이의 느린 걸음'으로 오랜 인고의 시간을 걸어온 선수가 바로 이태양이다.

한화에서는 유일하게 대표팀에 합류하는 영광을 안았고, 올시즌 한화 선발진에 연착륙하겠다는 당초 목표보다 훨씬 큰 꿈을 일찌감치 이뤄냈으나 이태양은 이에 대한 기쁨보다도 스스로를 낮춘 뒤 초심을 잊지 않겠다는 다짐을 전했다.

"선배들이 축하의 인사를 전해줬을 때 한화라는 팀을 대표해서 출전한다는 마음도 있었지만 몸 관리를 비롯해 앞으로 여러 방면에서 더욱 노력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어요. 운 좋게 올스타와 대표팀에 차례로 선발됐지만 제가 처음 마운드에 섰던 그날의 초심을 절대 잊지 않을 생각입니다."

기쁨과 설렘의 감정을 뒤로한 채 이태양은 29일 목동 넥센전에서 선발투수로 나선다. 다소 부족한 성적으로 대표팀에 합류했다는 눈총이 아직까지는 존재할 수 있다. 이들을 향해 자신의 진가를 드러내는 것도 필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개막 전 자신에게 남긴 약속을 끝까지 지키는 일이다.

"아직은 보여줄 것이 한참이나 더 남았잖아요. 이번 대표팀 합류로 자만하기보다는 마음을 다잡아 앞으로 프로생활을 해나가면서 더욱 성장할 수 있는 계기로 삼고 싶어요. 한화의 선발로 자리 잡겠다던 약속을 시즌이 끝날 때까지도 지킬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지켜봐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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