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실에서 유니폼도 벗지 못한 채 온갖 상념에 빠진 1시간 30여분

LG 김기태 감독(왼쪽)과 넥센 염경엽 감독은 충장중, 광주일고 동기동창이다. 둘도 없는 친구다. 염 감독은 23일 친구 김기태 감독이 성적 부진의 책임을 지고 전격 사퇴했다는 소식을 듣고 먹먹한 가슴앓이를 했다. 스포츠코리아 제공
2014년 4월 23일, 오후 10시 42분.

염경엽 감독은 아직 유니폼도 벗지 못한 채 목동구장 3루 덕아웃과 붙어 있는 자신의 방에 앉아 있었다. 안경은 탁자 위에 벗어 놓았고, 얼굴 전체엔 붉은 기운이 감돌았다. 조금은 상기된 표정으로 장정석 매니저와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충장중과 광주일고를 거치면서 사춘기를 함께 했고, 야구를 통해 함께 웃고 울었던 ‘절친’ 김기태 감독이 전격 사퇴했다는 보고를 받은 탓이었다.

“이제 겨우 17게임 밖에 하지 않았는데…”

“충동적으로 어떤 결정을 할 만큼 경솔한 친구가 절대 아닌데…”

염 감독은 중얼거리듯 한 두 마디를 던지곤 입을 닫았다. 다시 혼자 생각에 빠졌다.

짧지만 긴 침묵이 흐른 뒤 “그 친구를 잘 알지만 지금은 뭐라 할 말이 없습니다”라며 김기태 감독의 사퇴와 관련된 질문에 대해선 노코멘트 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또 침묵이 흐른 뒤 “10년 넘게 바라던 포스트시즌 진출을 이뤄냈는데…”, “소신껏 할 수 있도록 해줬으면 좋았을 텐데…”, “안팎에서 흔들지 말았어야 했는데…”라며 말을 끝맺지 못하고 툭툭 던졌다.

목동구장 조명탑의 불은 일찌감치 꺼졌다. 넥센 선수들과 코칭스태프는 이날 오후 9시19분 롯데에게 2-10으로 패한 뒤 3루 관중석의 홈 팬들에게 내일을 기약하는 인사를 하고 하나 둘 그라운드를 떠났다.

염 감독은 경기 이후 1시간 이상 소파에 앉아 줄담배를 피며 안타까운 마음을 정리하고 있었다. 그 사이 김기태 감독과 통화도 했단다. 그러나 내용을 밝히길 꺼려했다.

‘절친' LG 김기태 감독이 지휘봉을 놓던 날, 염 감독이 이끄는 넥센은 롯데에게 패해 연승 행진을 ’8‘에서 멈췄다.

염 감독과 김기태 감독은 각별하다. 어릴 때부터 함께 했기에 서로 아주 잘 안다. 일본프로야구 요미우리에서 지도자 생활을 하던 김기태를 LG로 불러들인 주인공이 바로 당시 LG 운영 팀에 있던 염경엽이었다.

김기태 감독은 2011년 가을, 박종훈 감독에 이어 사령탑에 오르면서 염경엽 당시 LG 운영팀장에게 “함께 선수들을 지도해보자”며 코치 제안을 할 정도였다. 염 감독은 친구의 배려를 완곡하게 거부한 뒤 LG를 떠나 넥센에서 지도자로서 새 길을 걸었다.

염 감독은 먹먹했다.

이제 시작인데, 친구는 왜 성적 부진의 모든 책임을 혼자 떠안고 떠나겠다고 했을까. 얼마나 혼자 스트레스가 심했으면 야구장에도 나오지 않았을까. 책임감이 누구보다 강한 친구인데 왜 지금 물러나려 했을까.

숱한 의문에 대한 답을 알 것도 같다. 자진 사퇴하는 김 감독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는 염 감독이기에 더 가슴이 쓰리다.

오후 10시 46분, 장정석 매니저가 다시 “감독님, 이젠 유니폼 내놓으셔야 할 것 같은데요”라며 어렵게 말을 건네자 그제야 옷 단추를 하나 둘 풀면서 긴 하루를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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