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새집 줄게요
KBO, 불편해서…

박원순 서울시장
국내 야구계가 서울시 구로구의 고척 돔구장 문제로 뜨겁다. 새 집(돔구장)을 만든 주인(서울시)은 세입자(LGㆍ두산ㆍ넥센)에게 헌 집(잠실ㆍ목동구장)을 버리고 들어오란다. 반면 세입자는 어설픈 새 집보다 그 동안 편하게 살아온 헌 집이 좋다고 맞서고 있는 상황이다. 양측의 입장이 팽팽해 좀처럼 타협점을 찾기는 힘들어 보인다.

원할한 운영 위해 프로팀 유치 꼭 필요
구단 거부땐 '일부 경기라도…' 고려중

▲'집주인' 서울시 "들어와라"

서울시는 아마 야구의 성지였던 동대문구장을 허물고 2009년부터 고척동에 돔구장을 세우고 있다. 내년 12월이면 돔구장이 준공된다.

서울시는 지난 22일 '2020 체육정책 마스터플랜'을 발표했다. 이 중 고척 돔구장에 서울 연고 프로야구단의 이전을 추진하고, 잠실구장은 신축이 아닌 리모델링이 바람직하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서울시는 고척 돔구장을 원활하게 운영하기 위해 프로야구단 유치가 반드시 필요하다. 약 2,023억원 들여 짓고 있는 고척 돔구장은 연간 100억원 이상의 유지비가 필요할 전망이다. 프로구단과 아마 팀까지 돔구장을 사용한다 해도 매년 20억원 적자를 감수해야 한다. 만약 프로구단을 유치하지 못할 경우 사용료, 광고료 등을 제대로 받을 수가 없어 수익을 내기가 현실적으로 어렵다.

서울시는 고척 돔구장에서 프로야구 경기를 반드시 유치하겠다는 의지를 거듭 천명하고 있다. 서울 연고 세 팀이 이전을 거부한다면 잠실ㆍ목동구장 계약 때 일부 경기를 고척 돔구장에서 하도록 계약 조건에 포함시킬 계획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접근성 떨어지고 수익 보장 못해 꺼려
KBO "서울시, 사전 조율 없이 일방 추진"

▲'세입자' 서울연고 세 팀 "새 집이 더 불편해"

서울시의 '일방통행'에 한국야구위원회(KBO)와 LG, 두산, 넥센 등 서울연고 세 팀은 모두 반발하고 있다. 고척 돔구장으로 이전할 경우 생기는 문제점이 수없이 많기 때문이다.

먼저 고척 돔구장은 접근성이 떨어진다. 인근 지하철역은 1호선 구일역뿐인데 경기장까지 걸어서 15분이나 소요된다.

규모도 문제다. 고척 돔구장(2만2,000석)은 잠실구장(2만7,000석)에 비해 수용인원이 적다. 주차 공간도 500면으로 부족하다. 입장료, 기념품 판매 등으로 수익을 올려야 하는 야구단으로선 메리트가 없다.

돔구장의 비싼 관리비도 걱정이다.

KBO도 서울시의 프로야구단 유치에 대해 부정적이다. 서울시가 사전에 문의나 의견 교환 없이 일방적으로 추진 계획을 발표했고, 지난 6월 박원순 서울시장이 프로야구 관계자들과의 토론회에서 '9회말 2사 후에 만루홈런을 치겠다'고 한 말이 실언에 불과하다고 비판하고 있다.

고척 돔구장은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대한야구협회에 대체 구장으로 제시한 구장이다. 원래 하프돔으로 설계됐지만 야구의 인기가 늘어나자 돔구장으로 설계를 변경했다. KBO는 고척 돔구장의 경우 프로야구단을 위해 만든 것이 아니라 동대문구장을 대체하는 아마 야구를 위한 장소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런 와중에 서울시의 프로야구단 유치가 난관에 봉착할 조짐을 보이자 야구계 일각에선 넥센이 메리트가 없는 고척 돔구장 대신 프로야구 10구단 유치를 목적으로 각종 혜택을 제시한 수원구장으로 연고지를 이전하고, 10구단은 다른 지역으로 결정하는 것이 산적한 문제를 풀어갈 수 있는 해법이란 이야기까지 나올 정도다. 일부 기존 구단들이 거부감을 느끼고 있는 KT를 10구단 창단에서 자연스럽게 배제하면서 프로야구의 균형 발전은 물론 양적 팽창까지 노릴 수 있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이런 시나리오 역시 서울시가 안고 있는 고척 돔구장 활용법에 대한 대안 제시와는 동떨어진 일부 야구계의 희망 사항만을 '여론몰이'하고 있다는 부정적 눈길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상황이다.

이래저래 고척 돔구장은 시민들의 혈세를 전시 행정에 쏟아 부은 '골치거리 흉물'로 남을 가능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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