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11시. 프로야구 경기가 끝난 뒤부터 우리들만의 '전쟁'이 시작됩니다. 방송 3사 스포츠 채널들은 매일 비슷한 시간대에 야구 매거진 프로그램을 방송합니다. 시청률 경쟁은 말할 것도 없고, 프로그램의 간판이 되는 여성 아나운서들에게도 미묘한 경쟁심이 생깁니다.

최근에는 스포츠채널 3사 아나운서들을 비교한 기사들을 많이 접할 수 있습니다. 또한 야구팬들 사이에서도 아나운서 순위 매기는 것이 야구만큼이나 재미있는 일이 된 듯합니다. 그렇지만 경쟁자라고 하기엔 참 애틋한 사이입니다. 적어도 제게는 그렇습니다.

사실 특별한 친분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함께 일한 시간도 없고, 지난해 송년회에서 딱 한 번 만난 게 전부입니다. 사적으로 친한 사이도 아니고요. 같은 일을 하고 있지만 다른 자리에서 뛰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마주칠 기회는 극히 적습니다.

그렇지만 비슷한 마음으로 같은 곳을 향하고 있기 때문일까요. 늘 왠지 모르게 가깝게 느껴집니다. 누군가 실수를 하면 오히려 걱정이 되고 마음이 아픕니다. 마치 내 일인 것처럼 말입니다. 앞으로 나도 겪을 일인 것 같아 속이 상하지요.

타사 스포츠 아나운서가 더 큰 도전을 하고 그것을 이뤄가는 모습을 보면 마음속으로 뜨거운 응원을 보냅니다. 제가 하지 못한 일을 먼저 해내는 것에 대해서는 든든한 마음이 들기도 하고요. 어쩌면 여성 스포츠 아나운서의 비애를 그 누구보다도 잘 이해해줄 사람들이기에 이런 측은지심이 생기나 봅니다. 동지애라고 말하는 게 적절할 것 같습니다.

보통 방송을 마치고 잠자리에 드는 시간은 새벽 두 시 정도 됩니다. 자기 전에 저는 항상 트위터를 살펴봅니다. 같이 깨어있는 타사 스포츠 아나운서들의 글을 보며 저는 위안을 받고 용기를 얻습니다. 우리의 '전쟁'은 내일도 시작되겠지만, 그래도 같은 시간 함께 걸어갈 수 있는 그들이 있어서 정말로 든든하고 행복합니다.
(▶ 베이스볼그래피 전체보기) (▶ 아나운서의 비화 엿보기) (▶ 아나운서의 섹시 몸짓까지)

저작권자 © 스포츠한국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