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가 싫을 때도 있었지만 결국 돌아왔네요.”…사회인야구 코치로 새 출발

타석에 등장할 땐 '터미네이터' 음악이 흘렀다. 팬들은 그를 메이저리거 라울 몬데시에 빗대 '문데시'라고 불렀다. 키 195㎝에 몸무게 110㎏으로 그라운드를 호령했던 문희성(38ㆍ전 두산). 2006년을 끝으로 야구와 작별한 그는 마을버스 운전대를 잡았다가 회사원으로 넥타이를 매보기도 했다.

"야구장을 떠나 평범한 삶을 원했다"는 문희성은 그러나 운명처럼 야구로 돌아왔다. 1, 2월 두 달을 고스란히 사회인야구 사업 준비에 바친 문희성은 최근 경기도 남양주시에 '사회인야구리그'를 열었다.

문희성은 "사회인야구의 인기가 폭발적이다"면서 "공동 운영과 함께 교습도 맡았다. 직함은 코치로 보면 된다"고 말했다.

▲'10년만 야구', 자신과의 약속 지킨 문데시

홍익대 시절 거포로 이름을 날렸던 문희성은 실업팀 현대 피닉스를 거쳐 1997년 OB(현 두산)에 입단했다. 어깨 수술 여파와 타격 정확성 부족으로 좀처럼 자리를 못 잡던 문희성은 그러나 2005년 타율 2할7푼3리에 10홈런 50타점으로 늦게나마 가능성을 확인했다. 이듬해까지 상승세를 이어가진 못했어도 은퇴를 선택하기엔 이른 감이 없지 않았다. 왜 떠나야만 했을까. 문희성은 "원래 '딱 10년만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다"고 했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야구에 대한 회의도 들었고 무엇보다 평범하게 살고픈 생각이 많았어요."

2006시즌 타율 1할9푼7리 1홈런 4타점 성적을 끝으로 문희성은 방망이를 놓았다. 간판타자 김동주가 시즌 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다치는 바람에 문희성에 대한 기대치가 높았다. 기회인 동시에 중압감이 컸다. 문희성은 "임시 주장까지 맡는 등 주위의 관심이 컸다. 반가웠지만 부담이 많았다"고 했다. "야구를 정말로 좋아했지만 어느 순간 팬들의 환호와 비난이 다 부담으로 다가왔어요."

▲돌고 돌아 다시 야구로

야구장 문밖을 나선 문희성은 무작정 부딪쳤다. 몇몇 팀에서 전화를 받았지만 거절했다. '제2의 인생'에 대한 욕구가 더 컸다. 배운 게 야구뿐이라 무에서 유를 찾아야 했다. 대형면허에 특수면허까지 땄다. 문희성은 면허 취득 후 분당에서 마을버스를 운행했다. "7개월 정도 운전했다"는 그는 "정말로 힘들다는 걸 절감했다. 당시 몸무게가 80㎏대까지 내려갔다. 그래도 다시 산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고 돌아봤다.

이후 문희성은 친척이 운영하는 병원에서 일했다가 최근까지 중소 제조업체에서 땀을 흘렸다. 야구를 그만둘 땐 막막했지만 "해보니까 또 되더라"고 했다. 그러던 중 문희성은 사회인야구 쪽에서 사업 제안을 받았고 또 다른 도전이라는 생각으로 뛰어들었다. 아내와 초등학생인 두 딸도 적극 찬성했다. 문희성은 "야구가 싫을 때도 있었지만 떠나니 그리움이 없지 않았다"면서 "야구관련 일을 준비하는 동안 피가 도는 느낌이었다"고 했다.

문희성의 인터넷 팬클럽엔 아직도 80여명의 팬들이 활동한다. "그분들과 이제 다시 만나려 한다"는 문희성은 "야구를 좋아하고 두산을 좋아하고 문희성을 아끼는 분들이다. 끝까지 간다는 생각으로 인연을 소중히 여길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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