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직구장 앞 스케치

롯데와 삼성의 8년 만의 ‘가을 빅뱅’이 열린 8일 부산 사직구장. 뜨겁게 고조된 야구 열기 만큼이나 경기장 밖에서는 표 구하기 ‘대란’이 벌어졌다. 이른 오전 승객을 태우는 택시기사부터 식당 주인까지, 오직 야구가 몇 시에 시작되는지 확인하는 질문이 첫 인사였다. 성대하게 차려진 잔칫상을 앞두고 분주했던 사직구장의 풍경을 돌아봤다.

▲8년을 기다렸는데 24시간 쯤이야

4,000장밖에 남지 않은 현장 판매분을 차지하기 위한 팬들의 경쟁은 ‘사투’에 가까웠다. 8일 오후 3시부터 판매를 시작하는 표 구입을 위해 7일 오전 6시부터 돗자리를 깔고, 텐트를 치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삼삼 오오 모여 술잔을 기울이고, 고스톱과 포커판을 벌이기도 했다.

8일 정오. 매표소 맨 앞을 점령하고 있는 ‘텐트족’이 궁금했다. 야구를 보기 위해 서울 신촌에서 내려와 정확히 30시간째 기다리고 있다는 정해문(29)씨는 “인터넷 예매에 실패해 친구들 중 대표로 내려와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부산 해운대구 반여동에 사는 유병인(36)씨는 전날 오전 10시부터 자리를 잡았다. 유는 후배 두 명에게 ‘상금’을 걸고 PC방에서 인터넷 예매를 시도했지만 서버 폭주로 실패, 결국 ‘1박 2일’간 현장에서 기다리는 방법을 택했다.

▲상인은 울상, 홍보는 특수

그러나 앞 줄을 점령하고 있는 팬들 가운데 다수는 암표상이라는 게 경찰들과 롯데 관계자의 전언. 암표상조차 표를 구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동래경찰서 1개 중대를 비롯해 의무경찰과 사복경찰, 롯데 직원이 진을 치고 암표상을 단속했지만 경기 시간이 임박하자 2만5,000원짜리 지정석 입장권은 열 배에 달하는 25만원에 거래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사직구장 인근의 노점상들은 호황을 맞을 거라는 예상과 달리 우울한 표정이었다. 야구장 앞에서 10년째 먹거리를 팔고 있다는 한 상인은 “현장판매분 표가 얼마 되지 않아 팬들이 간식 등 다른 것에 신경 쓰지 못하고 표 구하는 데만 혈안이 돼 있다”며 예리한 분석을 내놓았다. 반면 대거 홍보를 나온 인근 나이트클럽과 술집 등은 ‘롯데 특수’를 톡톡히 누렸다.

▲너무 빨리 포기했나

이동식 멀티비전 차량이 사직구장 앞에 도착했다. 롯데는 현장판매분조차 구하지 못하는 팬들을 위해 약 400만원을 들여 200인치짜리 멀티비전 차량을 렌트했다.

월드컵과 베이징올림픽 때의 길거리 응원은 사직구장 앞 광장에서 재현됐다. 그런데 사직구장 앞에 자리를 잡기 시작하는 팬들이 늘고 있는 반면 경기 시작 1시간 전까지도 사직구장은 꽉 차지 않았다. 한국야구위원회(KBO) 이진형 홍보팀장은 “표를 구하기 위해 ‘노숙 팬’조차 등장하자 지레 겁먹고 발길을 돌린 것 같다”고 해석했다. 실제로 이날 경기는 예상을 깨고 시작 35분 만인 오후 6시35분이 돼서야 3만 석이 매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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