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펜에서 힘껏 몸을 풀고 나온 투수가 마운드에 오르자마자 허망하게 볼넷을 남발한다.

박빙으로 흐르던 게임 양상은 졸지에 위기로 돌변하고 그대로 와르르 무너진다.

프로야구 LG 트윈스의 현 주소다.

마운드 집단 붕괴. 올해만 유독 그런 게 아니라 최근 3년간 되풀이돼 온 LG의 구조적인 문제다. 스카우트, 육성의 난맥상이 뒤죽박죽 얽혀 단시일 내 해답을 찾기어렵다는 점에서 심각성은 더하다.

LG는 19일 광주 KIA전에서 8명의 투수가 사4구 14개를 내주고 6-8로 졌다. 2-1로 전세를 역전한 6회말 수비 때 볼넷 5개로 5점을 헌납하고 그대로 끌려갔다.

3개만 보탰으면 1990년 자신들이 세운 한 경기 최다 사4구 허용 기록과 타이를 이룰 뻔 했다.

이날까지 LG 팀 방어율은 5.58로 선두 SK(3.48)와 무려 2점 이상 차이가 난 최하위. 볼넷은 303개를 허용해 단연 1위, 피홈런도 51개로 1위, 68경기에서 전체 투수들이 던진 공은 1만339개로 부동의 1위.

투수 기록 중 나쁜 건 죄다 LG가 으뜸이다. LG 투수들은 경기당 평균 152개나 뿌려 136개에 불과한 롯데보다 16개나 많다.

대부분 투수가 이닝당 평균 15개 정도를 뿌린다고 볼 때 LG는 롯데보다 항상 1이닝을 더 던지는 셈이다. 가뜩이나 부진한데 체력적인 부담마저 겹치면서 이중고에시달린다.

더욱 한심한 건 드넓은 잠실구장에서 성적. 홈런이 적게 나오고 파울 범위도 넓어 투수 친화적으로 알려진 잠실에서 LG의 팀 방어율은 5.75로 시즌 성적보다 나쁘다. 다른 팀은 방망이 싸움을 한다지만 마운드가 모래성 같은 LG는 실점을 최소화하기에도 벅차다. 마운드가 무너진 LG는 2005년과 2006년에도 팀 방어율 꼴찌였다. 2006년에는 8개 구단 평균 방어율이 3.58이었는데 유일한 4점대 방어율(4.22)로 평균을 높였다.

확실한 선발, 믿을만한 셋업맨, 승리를 부르는 수호신 등 세 가지 항목에서 LG는 기준에 미달한다. 정재복이 최강 셋업맨으로 맹활약했으나 거듭된 연투로 지금은 힘을 잃었다.

제이미 브라운이 삼성에서 버림 받은 선수였다는 점이 걸렸을 뿐 김재박 LG 감독이 외국인 선수 2명을 모두 투수로 채운 건 방향에서는 옳았다. 양적으로는 남부럽지 않았으나 질적으로 LG 마운드는 타 팀에 많이 떨어졌다.

김명제, 임태훈, 이용찬 등 최근 대어급 투수들을 서울 라이벌 두산에 다 빼앗겼고 장원삼(우리)보다 낫다는 평가를 받았던 사이드암 김기표와 좌완 서승화 등은 적응 실패와 부상 등으로 일찌감치 공익근무요원으로 갔다.

올해 뽑은 이형종은 팔꿈치 통증으로 올 시즌을 접는 등 주머니 속의 송곳처럼 튀어나오길 기대했던 1차 지명 신인들은 전혀 제 몫을 못했다. 4년간 40억원을 주고 잡은 자유계약선수(FA) 박명환의 수술, 최원호, 이승호 등기존 선수들의 부진은 설상가상의 상황을 연출했다. 눈에 띄는 신인은 없고 기존 선수들의 발전은 더딘 악순환이 발목을 잡는다.

2002년 이후 감독이 네 차례나 바뀌면서 운영 시스템과 육성책이 중심을 잃은 건 더욱 뼈아프다. 당장 성적에 치중해 육성에 힘을 쏟지 못한 점은 LG의 업보로 고스란히 돌아오고 있다.

어떤 LG 관계자들은 2군 훈련장 구리 챔피언스파크를 가득 채운 유망주들의 모습에서 희망을 느낀다고 했지만 2군에서도 거북이 걸음으로라도 발전하는 투수가 보이지 않는 지금으로서는 현재는 물론 미래도 어두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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