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장비가 많이 좋아져 그런 일이 별로 없지만, 10여 년 전만 해도 무척 흔한 일이었다. 특히 도루를 많이 하는 '발바리'의 경우 스파이크 밑창과 신발 부분이 갈라지거나, 벨트가 끊어지는 일을 자주 겪었다.

'바람의 아들' 이종범(38ㆍKIA)은 한참 도루를 많이 했던 93, 94년 한 달에 스파이크 3, 4개를 소비했다. 벨트도 한 경기에 두세 개가 끊어지는 게 예사였다. 당시만 해도 장비에 여유분량이 넉넉지 않았던 터라 스파이크나 벨트를 교환하는 것도 눈치를 봐야 했다.

이종범이 84도루를 기록했던 94년의 일이다. 경기 도중 도루를 하다가 이종범의 벨트가 끊어지는 일이 발생했다. 하필 여분이 없어 이종범은 공수교대 때 발만 동동 굴렀다.

"종범아, 없으면 내 것 차라." 김응용 감독(현 삼성 사장)이 허리춤에서 벨트를 풀어 이종범에게 내밀었다. 당시 이종범의 허리둘레는 28인치, 김 감독은 42인치였다. 도저히 이종범은 김 감독의 벨트를 찰 수 없었다. 다행히 이종범은 동료선수의 것을 빌려 경기에 나갔다.

19일 경기 전 특별타격훈련을 소화한 뒤 이종범은 벨트를 만지작거리며 잠시 14년 전으로 돌아갔다. "그때 동료의 벨트를 구하지 못했다면 어땠을까요. 감독님의 벨트를 잘라서라도 차고 나갔겠죠? 폼은 안 났겠지만."

저작권자 © 스포츠한국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